지성의 진실
집단지성이 한 사람의 지성을 능가할 수 없는 때도 있다. 물론 집단지성이 한 사람의 지성보다 더 뛰어난 견해일 수도 있다. 사실 이런 판단은 진실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문제이며, 지혜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이처럼 아느냐 모르냐와 지혜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다수와 소수의 세력 유무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동의해서 바른 것이고, 소수가 동의해서 바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세속에서는 다수의 의견으로 옳고 그름을 따진다. 출세간에서는 다수와 소수가 아닌 진실 여부로 옳고 그름을 따진다. 세력이 커서 옳고, 세력이 작아서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다. 이처럼 옳고 그름에는 다수와 소수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다수와 소수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불가피 차선의 방법으로 결정하는 것이므로 이것 자체는 진실을 밝히는 것과는 무관하다. 그래서 이런 문제는 세간의 견해인가, 아니면 출세간의 견해인가로 나누어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리는 보고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의 차이로 드러난다. 이때 보고 아는 것은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지혜로 보느냐,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해서 어리석음으로 보느냐의 차이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개인의 의도가 작용하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을 때는 개인의 의도가 작용하여 바르게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진실을 알려면 다수나 소수로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았는가,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는가 하는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다수의 의견이 집단지성이라고 해도 개인의 이기적 욕망이 결집한 판단이라면 바르지 못한 것이다.
이때는 집단지성이 동질성과 연대하면 난폭한 광기로 바뀔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현대의 문명사회에서도 일어나는 일로 집단지성이 아닌 집단적 광기일 뿐이다. 소수의 한정된 지성이라도 개인의 이기적 욕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본 판단이라면 바르게 아는 것이다. 이렇게 판단하지 않으면 보고 아는 견해가 될 수 없다.
보고 아는 것은 반드시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주관적 견해를 배제할 때만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 내 고정관념으로 보면 거기에는 자기 이익이 우선한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바른 견해가 아니다. 설령 한 사람의 외침이라도 그것이 진실을 향한 외침이라면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집단적 이익에 어긋난다고 해서 그것을 잘못된 견해라고 판단하면 진리를 알려는 자의 자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