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9 / 68세
꼬우면 일찍 오지!
내가 군대 생활을 했던 중대는 아마 육군에서 병력이 가장 많은 중대였을 것이다. 중대원이 무려 120명 정도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 중대의 정식 명칭은 ‘608경장비중대’였다. 이름은 경장비중대였지만 실제로는 중장비중대였다.
중대원들은 군번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1’로 시작하는 군번, 나이가 차서 징집으로 입대한 병사들이었다. 내 군번은 13080850이었다.
다른 하나는 ‘7’로 시작하는 군번,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장비 학원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뒤 지원해서 들어온 병사들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스무 살 무렵 입대한 병사가 있는가 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마치거나 결혼까지 한 뒤 서른 살 가까운 나이에 입대한 병사도 있었다.
나이는 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더라도 동기가 될 수 있었다.
우리 중대는 두 달 단위로 동기를 묶었다. 1월과 2월이 동기, 3월과 4월이 동기인 식이었다.
나는 1980년 8월에 입대해서 7월에 들어온 병사들과 함께 동기였다. 모두 열두 명이었다.
그중 나와 입대 날짜가 거의 같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이준권이었다.
그는 중대의 용접실에서 근무했다. 한 동기는 그를 이렇게 평했다. '성실'.
군대에서는 같은 일을 하면서 먼저 들어온 병사를 사수라 하고, 뒤에 들어와 배우는 병사를 조수라고 부른다.
이준권은 1957년생이었다. 그런데 그의 사수인 조병장은 그보다 4살 정도 어렸다.
사회에서 만났다면 형님뻘인 사람이 조수가 되고, 동생뻘인 사람이 사수가 된 것이다.
우리 중대는 가끔 막걸리를 가져다 놓고 회식을 하곤 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면 평소에는 얌전하던 사람들도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고참들이 술에 취하면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나는 총기 관리 업무도 맡고 있었는데, 수송부의 한 고참은 얼굴이 우락부락했다. 그는 술만 마시면 싸우는 병사들을 향해 충혈된 커다란 눈을 치켜뜨며 소리를 질렀다.
“야! 병기계, 실탄 가져와! 다 쏴 죽여 버리게!”
물론 술김에 하는 소리였지만, 총기와 실탄을 관리하던 쫄병인 나는 무서웠다.
어떤 고참은 대검을 뽑아 들고 휘두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조병장은 조금 달랐다. 그는 평소 조용한 편이었다. 후임들에게 특별히 모질게 굴거나 괴롭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술이 들어가면 혀꼬부라진 목소리로 자주 하는 말이 하나 있었다.
“꼬우면 일찍 오지! 꺽.” (말로 하면 정말 잘 흉내 낼 수 있는데…)
누구를 향해 하는 말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스운 말이었다.
태어난 순서는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군대에 들어오는 날짜 역시 여러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그것을 두고 일찍 오지 그랬느냐고 하니 말이다.
그곳이 군대였다.
그때 스물두 살이던 나도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으니, 그 병장도 이제는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겠다.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시절 나이 어린 병장도, 나이 많은 이등병도 이제는 서로 만나면 그저 반가울 것이다.
언젠가 그 병장을 다시 만난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 조병장님, 그때 그렇게 군대에 일찍 와서 지금은 뭐가 좋습니까?”
아마 그도 껄껄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고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꼬우면 일찍 오지!”
첫댓글 수필방에 올린 글을 군두더기를 덜어내었습니다.
ㅎㅎ군대생활
남자들에겐 빼놓을수 없는 이야기들
나역시 조금늦게 입대를 78년 여름
우리중대는 150
충청도 사투리에 그런말이 있어요.
"그리바쁘면 어제오지그랬슈"
군대는 꼬운게 한두가지가 아니지요.ㅎㅎ
저는 군생활중 T/S훈련때 내가 탄 선발대 트럭이 전복되어
3명이 현장에서 순직하고 4명은 후송됐는데 살아남아 33개월
만기제대했습니다. 제대후 국립묘지에 몇번 갔지만 보기싫은
놈이 있어 그후론 안갔습니다
그곳도 작은 사회지요 규격에 맞춰 살아가는 사회
잘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