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의 한 복판 2011년 1월 28일
오늘도 아침은 영하
노약자들은 집에 계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기상 캐스터의 충고를 무시하고 노약자임을 거부하는 다섯 7순들이 산을 오르다.
5명
숫자가 작다고 ?
그래도 부산 각구의 대표선수들이다.
남구를 대표하여 춘성
북구를 대표하여 혜종
사하구를 대표하여 태화
진구를 대표하여 연암
동래구를 대표하여 남계 류근모
면면을 보라!
부산 광역시의 대표 노강자들이 아닌가.
7시 20분에 동아대 병원앞을 출발, 얼어붙은 동아호수를 통과하여 단숨에 약수터에 도착.
한겨울에도 따뜻한 약수 한 바가지를 마셔서 기름을 채운다.
이어서 원형 산길다방에 들어가 아가씨가 따라주는 커피 한 잔.
남계는 어묵 한 꼬쟁이에 어묵 국물을 한 그릇 마신다.
이런 것을 주선하는 것은 늘 춘성이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적어 우리끼리 마음껏 소리지르고 얘기 꽃을 피운다.
치매 예방은 여러 가지 방도가 있겠지만
많이 걷고
노래하고
유머 나누며 많이 웃고
대화를 많이 하는 것
그러니 쓰잘 데 없는 이야기라도 쉴새 없이 얘기하는 것이 좋다.
다만 젊은이들에게는 과묵하고 우리 끼리만.
겨울 산에는 상록수들과 낙엽수들이 공존한다.
대신 공원에는 편백과 쓰기다테, 소나무등 상록수들이 겨울 강풍을 비웃으며 푸르름을 뿜고 있고 조금 위로 올라 엄광산 중턱으로 가면 참나무등 낙엽수들이 나목으로 서 있는 지대가 나온다.
나목 (裸木) ~ 하니 며칠 전 타계한 박완서 작가 생각이 난다.
작가는 1931년 생인가. 향년 80.
전쟁통에 다니던 서울 대도 중퇴하고 일찍 결혼하여 4녀 1남을 기르며 고생하다가
40이 되어서야 그 동안의 인생 경험을 농축시켜
"나목" 이라는 작품으로 등단, 죽을 때까지 40 년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토지의 박경리 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한국의 대표 여자 작가였다.
자식 농사를 잘 지어 작가로 의사로 만들었고 따라서 사위들도 정말 잘 봤다.
교수 둘, 기업체 사장, 대학 병원 원장.
그런 그녀에게도 시련이 왔다.
1988 년 남편을 잃고 이어서 서울 의대 다니는 아들을 교통 사고로 잃었으니
언어의 달인인 작가도 할 말을 잃고 하늘을 원망하며 울부짖을 일 밖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부산의 이 해인 수녀 시인이 부산의 수녀원으로 모셔 와서 지극 정성으로 달래어 아픔을 신앙으로 덜어주었다.
그 아픔을 극복한 마음의 기록이 "한 말씀만 하소서" 라는 신앙 고백서.
서너달을 밥도 못 먹고 생의 의욕을 잃고 있었는데 수녀원의 담장 너머로 풍겨오는 구수한 된장 찌개 냄새에 구미가 동하여 밥을 먹고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이렇게 사는 모습을 하늘에서 아들과 남편이 내려다 보고 좋아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그래 살아야지.
그리고 (이건 혜종이 첨가한 이야기 - 혜종도 문학에 조예가 깊다) 누군가가
그런 아픔이 당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는 그래도 좋은 딸이 넷이나 있고 글 쓸 여력이 아직도 남아 있지 않은가.
작가는 다시 마음 다잡고 더욱 좋은 작품을 양산하였다.
그녀의 대표작들은 아들과 남편 사후 10 년동안 생산되었고 한국의 대표 문학상들을 휩쓸었다.
작가는 담낭암인가로 고생하면서도 죽기 전 까지 글 농사를 놓지 않았다.
작가의 마지막을 장식한 문장이 제일 걸작이다.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고 잘 대접하여 보내라.
이야기들에 빠져선지 다리 힘이 좋아선지 11시 반에 내원 정사 근처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연암이 늘 가져 오는 노란 매실주를 꺼내고 남계가 안주감으로 전병을 냈다.
5명이라 두 세잔 씩
속이 훈훈해진다.
매번 정말 고마운 친구다.
여기서 꽃동네 할매 보리밥집까지 20 분도 안 걸리는데 점심이 너무 빠르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 쪽으로 가지 말고 여기서 좌회전하여 서대신동 할매 복국집에 가서 먹자.
춘성의 제안에 이견이 있을 리 없다.
구덕산 청소년 수련원을 거쳐 얼음 호수를 지난다.
가운데를 제하고 호수는 꽝꽝 얼어있다.
지구 온난화로 평균 기온은 자꾸 상승한다는데도 근래에 겨울은 유달리 춥다.
특히 올해 부산은 영하의 날씨가 계속된다.
태화의 설명
TV 프로 디스카버리를 보니까 수십년 후면 지구 온난화로 남북극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겨울에는 추위에 더 심해져서
각국의 중요 항구도시들이 반쯤 물에 잠기고 바닷물이 얼어 항구의 기능을 상실할 지경이 된다고 한다.
겨울 뉴욕항이 얼어 배들이 꼼짝 못하는 상황이 예측된다고 하니
우리야 죽고 난 뒤겠지만 지구의 미래가 그리 밝지마는 않은 것 같다.
한낮이 되어 기온도 슬슬 오르고 술 한 잔씩들 하고 숲속을 걸으니 추운줄은 모른다.
서대신동 할매 복국집에 도착한 것이 12시 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 하필 노는 날이다.
그래서 도로 올라가서 마산 돼지 국밥집에 들어갔다.
50 년 전통의 인근에서는 가장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돼지 국밥의 명문가.
그런데 놀라지 마소.
돼지 국밥이 7000원이다.
구제역으로 대한민국의 돼지 소가 300 만마리 가까이 살처분 되어 값이 올랐겠지만 해도 너무 한다.
들어왔는데 나갈 수 없어 비싼 국밥을 먹었다.
지난 번 대연동의 쇠고기 국밥 4000 원이 얼마나 맛있고 싼 것인가 새삼 느낀 순간이다.
다음에 한 번 더 거기 가야지. 거긴 국밥 나오기 전에 생선도 구워 주지 않던가.
좌우튼 비싸긴해도 역사와 전통이 있어선지 맛은 있다.
집을 나서기 전이 춥지 일단 챙겨 입고 나오면 추위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고 알맞은 운동과 즐거운 대화와 맛있는 점심이 있는 산행이다.
다음 2월 4일은 설 뒷날이라 쉬고 11일 온천장 역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기상예보는 설날엔 많이 따뜻하다고 하니까 탁 털고 일어납시다.
설 잘 쇠십시오.
첫댓글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안녕들 하시죠? 매일 들마루 열어보고 있습니다. 올해는 카페가 좀 붐볐으면 합니다.
버드나무님, 추위야 물렀거라! 당당한 그 기상이 너무나 자랑스럽소. 좋은 친구들은 또한 부럽기 그지없소. 용기를 북돋우는 힘찬 글에 감동 먹었다오. 다음달 탁우회 모일때 대연동 국밥집 안내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