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금도
목포항에서 54km 떨어진 비금도는 유인도 3개와 무인도 79개로 이루어진 섬이다. 해안선 길이는 약 132km 에 이르며, 지난 1996년에는 연도교가 개통되어 이웃 섬인 도초도와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있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섬. 해안의 절경 뿐만아니라 내륙의 산들도 절경을 자랑하는 몇 안되는 섬 중 하나다. 세바위가 바다를 향해 다리를 뻗고 있는 모습이나 바위위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줄사다리, 색조화가 오묘한 바위들이 홍도의 비경에 버금간다. 인근 무인도 낚시터의 주변경관이 뛰어나며, 용암, 용혈, 효자암 등 기암괴석은 해송림과 잘 어울려 있고 섬 주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새가 날아오른 형상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 비금도(飛禽島). 한때는 소금 장사가 잘되어서 飛金島라 하기도 했다는 섬이다. 비금도는 섬자체의 절경으로도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천일염전을 제일 먼저 시작한 섬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비금도의 해안절경과 더불어 원평항 너머로 지는 일몰의 모습은 지는 해를 보고 바다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을 느낀다 할 정도. 이외에도 비금도에는 용이 살다가 사람들의 등살에 못이겨 승천했다는 용소와 몸섬 내부에 있는 기린봉,떡메봉 등도 볼만한 구경거리이다.
특히 요즈음의 비금도여행은 비금과 도초도를 함께 오갈 수 있다는데서 더 큰 매력을 지닌다. 도초도에는 비금도 명사십리와 함께 신안 4대 해수욕장에 꼽히는 시목해수욕장이 있다.
비금도 남단에서 연도교(서남문대교)로 이어져 있는 섬이 도초도다.도초도엔 모래사장이 반달 모양으로 펼쳐진 시목(枾木)해수욕장,부속섬인 우이도 등이 가볼 만하다.
도초면 엄목리의 시목해수욕장은 이름에서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주변에 감나무가 많다고 해 ‘시목’이란 이름이 붙었다.경사가 완만해 아늑한 느낌을 주고,특히 백사장이 주변 산들과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다워 화가들이 스케치를 위해 많이 찾는곳이기도하다.
해변 앞엔 농간암(弄奸岩)이란 바위가 있다.운무가 낀 날엔 바위가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신기한 현상을 볼 수 있다고.해수욕장 주변에 민박시설이 있고,백사장 뒤쪽으로 수려한 소나무숲이 자리잡고 있어 텐트를 치기에도 좋다.선착장에서 해수욕장까지 버스와 택시가 수시로 다닌다.
시금치의 섬
비금도 주민들은 시금치를 엄청나게 많이 재배하고 있다. 비금도에서 나는 시금치만 해도 서울 사람들이 석 달은 족히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온 들판을 파랗게 메우고 있는 천연 무공해 작물인 이것은 전혀 농약을 쓰지 않아 몸에도 좋고 그 맛도 일픔이다. 바다바람과 게르마늄 토양에서 재배된 시금치는 비타민 성분이 많으며 잎이 두텁고 신선도가 좋아 특허청 제2174호로 등록,판매하고 있다.
호남지방 최초의 천일염전
비금도에 내리면 맨 먼저 해안가를 가득 메운 염전이 눈에 들어온다. 소금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비금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천일염을 생산해 낸 곳이다.
비금도에 염전이 생긴 것은 1946년의 일이다.본래 강우량이 많은 신안은 일제때부터 천일염을 만들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평안남도 용강군 주을염전으로 징용갔던 박삼만씨가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개펄을 막아 '구림염전'을 개척한 것이 시초이다. 그 이전까지 주을염전등지에서는 바닷물을 커다란 솥에 끓이는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었기 때문에 '구림염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림염전에 의한 소금제조방법은 주변 신안군 다른 섬까지 전해졌다. 비금도에서는 그 이듬해인 1948년 4백 50세대의 주민들이 '대동염전조합'을 결성하고 보리개떡과 나물죽을 먹으며 1백여 ha가 넘는 광활한 염전을 조성해 냈다. 5.16쿠테타 직후에는 화폐개혁과 더불어 소금값이 한가마에 8백원까지 뛰어 염전 인부들까지 돈지갑 실밥이 터질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외국 소금이 수입되고 화학 소금이 쏟아져 나와 옛 경기는 다 잃었지만 한때는 "돈이 날아다닌다"라는 뜻의'飛金島'라고 불릴 정도로 염전사업이 호황을 누렸다.
첫댓글 아하기렇습네까 기대 기대...
바둑기사 '이세돌' 고향으로도 유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