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너무나 익숙해서 막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이순신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다.
1. 왕이 말했다.
“이순신은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므로 죽어 마땅하다. 이순신이 가등청정의 머리를 베어온다 한들 그 죄를 어찌 갚을 수 있겠는가.”
이순신이 말했다.
“해가 캄캄하게 보인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빨리 죽기만 기다릴 뿐이다.”
이 소설 《왕이 버린 역적 이순신》은 유치원생도 아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는 참담하게 버려진 인간 이순신의 이야기다. 그는 버려진 인물이고, 임진왜란에 관한 가장 솔직한 기록인 《징비록(懲毖錄)》마저도 조선조 내내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였다.
2022년 오늘의 이순신은 국민이 구름같이 모여드는 드넓은 광화문 광장을 차지한 채 태평로를 내려다보지만, 임진·정유 당시의 이순신은 왕으로부터 버림받고, 조정으로부터 비난받고, 어머니와 아들과 동지가 죽어 나가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었다.
2. “이순신은 영웅이 아니라 역적이었다”, 서인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는 국왕 이균에게 망궐례를 하지 않은 반역자이자 삼도 수군을 몰고 한강으로 쳐들어와 조선 사직을 뒤엎으려는 역모자였다. 그의 조부 이백록 역시 역적 조광조를 따르던 패거리로 한때 삭탈관직된 바 있다.
“파직해라! 잡아들여라! 죽여라!”
서인들은 소리 높여 외쳤다.
그래서 파직되고, 좌천되고, 고문받고, 두 번이나 삭탈관직 되어 말단 병사로 백의종군했다. 이것이 바로 선조 이균이 생각하는 이순신이고, 서인당이 보던 이순신이다.
3. 이순신은 죽어서도 삼도수군을 궤멸시킨 원균과 동급이 되고, 한산대첩에 앞장서고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녹도만호 겸 우부장 정운은 공신록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국왕의 신발이나 챙기고 매화틀 들고 종종걸음한 내관 40명이 공신이 될 때 이순신의 명령을 받고 싸우다 죽은 장수들은 철저히 버려졌다.
수없는 사람들이 이순신을 헐뜯었다.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그를 비난했다. 이순신이라는 이름은, 서인들의 혓바닥을 구르는 완롱거리였다. 임금조차 이순신을 죽이려 들고, 서인 당수 윤두수의 동생 윤근수는 그를 고문했다. 판의금부사 윤근수는 보름만에 궁성 잃고 강토를 버린 선조 이균에게 아첨하여 그런 왕에게는 차마 줄 수 없는 묘호 祖를 바쳐 이 무능한 혼군암군을 그만 ‘宣祖’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부르게 한 자다. 윤근수는 그 입으로 원균은 고금에 없는 명장이고, 이순신은 역적이라고 말했다.
4. 그래서 이순신이 피를 토하며 말한다
이 소설 끝에 가면 이순신의 울분이 절절이 배어나는 편지 한 장이 나온다. 우리 국민이 알아야 할 이순신의 의미를 짧고 강렬하게 표현하였다.
- 나라고 왜 기치창검이 눈부신 수백 척의 적선 앞에서 무섭지 않았으랴. 속절없이 식은땀을 흘리고, 벌떡거리는 심장 박동에 숨쉬기도 벅찼다. 전선 겨우 열한 척밖에 줄 수 없는 나라가 왜 내게 수백 척 적선과 싸워 이기기를 바라는가. 난들 왜 안 무섭고, 내 목숨인들 왜 아깝지 않겠으며, 눈앞에서 부하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 어찌 목석처럼 의연할 수 있겠는가.
- 그대들은 나라에 환난이 닥칠 때마다, 겨우 아픈 기억 묻고 어둠에 갇혀 있는 호국영령을 왜 자꾸만 부르고 또 부르느냐.
그렇지 않아도 피를 토하며 죽거나 적의 칼에 베이어 죽거나 총탄에 맞아 죽은 영령들을 자꾸만 환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 두 번, 세 번 죽게 하느냐. 저희는 한 점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현충원은 왜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열심하느냐.
행복은 왜 혓바닥이나 놀리는 당신들의 몫이고, 희생은 왜 이미 죽은 영령들의 몫이냐.
-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였지만 그 자신은 적들에게 잡혀 컥컥 목 매달린 안중근 의사를 불러 또다시 목매달고 죽으라 요구하지 말라. 금산성에서 1만5천 명의 왜군에 맞서 마지막 한 명까지 모조리 전사한 1천5백 명 의병과 승군더러 그 지옥에서 다시 돌아와 우리 대신 칼 맞아 또 죽으라 하지 말라. 난들 왜 내 가슴에 총탄이 다시 박히기를 바라겠느냐. 난들, 우린들 왜 살기를 바라지 않겠으며, 처자식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았겠느냐.
이제는 너희가 이순신이 되고, 너희가 김윤후가 되고, 너희가 안중근이 되어라. 너희가 금산벌 1천5백 의병이 되어라.
아, 죽어서나마 편히 쉬고 싶다. 우리는 쉬고 싶다. 쉬게 좀 두어라.
휘몰아치는 매서운 북풍 같고 쏟아지는 소낙비 같던 우리 호국영령들의 시뻘겋고 시커먼 인생, 이제는 쉬고 싶다. 우리를 부르지 말라. 제발이지 우리를 향해 기도하지 말라.
5. 한편 소설가 이재운은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작품을 여러 권 썼다.
1991년에 출간한 《소설 토정비결》(전3권)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토정 이지함을 비롯한 선사, 도사, 술사, 승려들이 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 내용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이어 1998년에 경향신문에 연재한 《당취(黨聚)》(전5권)는, 《소설 토정비결 2부》로, 임진왜란이 일어나 끝날 때까지 육지와 바다에서 피 흘리며 싸운 육군, 승군, 수군, 의병의 숨막히는 결전을 그린 대하소설이다.
또한 2015년에 출간된 《소설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바라본 사대부들의 시각을 따라가면서 당시 조정이 어떻게 분열되어 왜군의 침략에 속절없이 무너졌는가를 전쟁사 관점에서 바라본다. 유성룡의 《징비록》과 함께 저자의 직계 조상의 참전 기록물인 <호종일기>가 간간이 소개되는 실록 성격의 소설이다.
이 소설 《왕이 버린 역적 이순신》은 대하소설 《당취》 중 수군 부분만 떼어 이순신을 집중조명한 작품이다. 임진왜란 소재를 거듭 다룬 이유에 대해 소설가 이재운은 “아픈 역사를 자꾸만 들추는 것은, 그런 고통을 다시는 겪지 말자는 뜻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역사를 보면 적이 물러나는 즉시 간신, 역적들이 도로 기어나와 다시 조정을 차지한다. 지금도 그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왕이 버린 역적 이순신을 구해낸 것은 오직 백성이다. 백성이 깨어 있지 않았더라면 이순신은 여전히 역적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이순신을 구해낸 국민이 저 숱한 간신 역적들의 미친 짓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단 보름만에 궁성을 빼앗긴 그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 당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임진왜란 중 두 번이나 백의종군 당한 이순신이 목숨 바쳐가며 겨우 구해낸 나라를, 국왕과 대신, 이 역적 간신들은 3백년 만에 기어이 일본에 갖다 바치고, 저희들은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이 되고, 고종 이명복은 일제로부터 ‘이왕(李王)’ 작위를 얻어 해마다 180만 엔의 세비를 받아 저희끼리 호화롭게 살던 일제시대, 이순신 묘소와 이 묘소를 관리하는 비용을 대던 위토(位土)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민초인 국민들이 일어나 그 빚을 대신 갚아 기어이 묘소를 되찾았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왕이 버린 역적 이순신을 영웅으로 되살려낸 것도 백성이요, 백의종군하던 미관말직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살려내 명량 앞바다로 함께 달려가 싸운 이도 백성이다. 하지만 백성이 버린 왕은 아무리 악써도 영원히 그 오명을 벗지 못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국민이 버리고 정의의 펜에 찔려죽은 사람은, 그게 대통령이든 누구든 결코 되살아나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목차>
—— <왕이 버린 역적, 이순신> 이야기를 시작하며 • 5
1. 이순신을 죽여라 • 13
2. 맹자여, 큰일을 견뎌내려면 이런 시련을 당해야 합니까 • 38
3. 조선을 구한 게 나의 죄이런가 • 49
4. 한양성이 무너지던 날 — 한산도대첩 • 59
5. 나이 들수록 삶이 구차해지누나 • 90
6. 이순신, 당신은 동인이다 • 104
7. 모함, 시기, 음해가 나의 동무였다 • 118
8. 전라좌수사가 되다 • 132
9. 전쟁의 시작 — 옥포해전, 사천해전 • 158
10.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 — 당포, 당항포(당목개), 율포, 견내량, 안골포 • 201
11. 부산을 수복하라 • 233
12. 삼도수군통제사 • 254
13. 이순신, 텃밭을 가꾸다 — 칠천량 해전 • 283
14. 전선 열두 척에 걸린 조선의 운명 • 329
15. 죽으면 죽고 살면 살리라 — 명량대첩 • 357
16. 대장기를 경상우수사 이순신의 장선에 꽂아라 — 노량대첩 • 393
—— 이순신 편지• 421
<저자> - 이재운
소설가, 사전편찬자, 바이오코드 개발자.
1958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 3학년 때 쓴 장편소설 《아드반-사막을 건너는 사람은 별을 사랑해야 한다》를 문장사에서 출간하고,
4학년 때 쓴 《목불을 태워 사리나 얻어볼까》를 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1년 11월에 첫 출간한 《소설 토정비결》은 350만 부 이상 팔린 밀리언셀러로, 토정 이지함 선생의 민족사적 운명과 예언적 인생관, 한국인만의 독특한 해학성을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창작 활동을 펼쳐 많은 저작물을 발표, 지금까지 여러 장르의 작품 150여 권을 출간했다. (주)영국전자가 소설가 이재운을 후원하고 있다.
1994년부터 우리말 어휘 연구를 시작하여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잡학사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어원사전》,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 한자어 사전》 등의 우리말 시리즈를 펴냈다.
성격분석프로그램 바이오코드를 개발했으며, 관련 연구서로 《바이오코드 개론》, 《바이오코드 응용》, 《인연의 힘》, 《브레인워킹》 등이 있다.
소설로는 《소설 토정비결》(전3권)을 비롯하여 《황금별자리》, 《천년영웅 칭기즈 칸》(전8권), 《당취黨聚》(전5권), 《하늘북》(전2권), 《청사홍사》, 《바우덕이》, 《갑부》(전2권), 《징비록》, 《정도전》, 《사도세자》, 《가짜화가 이중섭》, 《김정호 대동여지도》, 《황금부적》,《장영실》, 《상왕商王 여불위》(전6권) 등의 작품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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