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선종가람, 남원 실상사-천년의 여행 32회
실상사(實相寺)는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남원시에 속해 있으나 실제로는 경상남도 함양군과도 가까운 지역에 위치해 있다. 한국의 사찰이 대부분 산 속에 지어진데 반하여 남원시 산내면의 들판 가운데 자리잡은 것이 특이하다. 지리산에서 흘러나오는 만수천을 끼고 있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때 증각대사 홍척(洪陟)이 당나라에 유학했다가 귀국해서 세운 절이라고 전해진다. 흥덕왕이 태자와 함께 이 절에 귀의할 정도로 왕실의 관심을 받은 절이라 이후 선종이 크게 일어나 실상학파를 이룰 정도가 되었다. 신라말 구산선문(九山禪問)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워진 선종의 대표 사찰이다.
그러나 실상사는 조선 시대에 들어 차츰 쇠퇴하기 시작했다. 조선 초기 또는 중기의 어느 시점에 화재로 전소되어 사찰의 문을 닫았다가, 숙종과 순조, 고종 때 세 차례 걸쳐 중건해 다시 세워졌다. 다만 거대한 규모였던 예전의 모습을 다 찾지는 못했다.
한국 전쟁 중에는 지리산을 무대로 한 빨치산과 토벌군의 전투로 수난을 겪었으나 사찰과 문화재에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실상사가 조선 시대에 전소된 것은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한 것이라는 전설이 있는 등 왜구와 얽힌 설화가 많이 전해진다.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구전도 있다.
부속 암자로 백장암과 서진암, 약수암이 있다.
문화재[편집]
실상사에는 국보 제10호로 지정된 백장암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10점이 넘는 보물급 문화재 등 신라 시대의 문화 유산이 산재해 있다. 단일 사찰로는 최대 규모의 문화재이다. 약사전에 봉안된 신라 말기의 철제여래좌상은 길이가 3미터에 이르러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철불이기도 하다.
지리산 자락이 감싸 안은 듯 평화로운 지리산 실상사 [한국의 명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창건은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데서 비롯된다. 선종(禪宗)이 처음 전래된 것은 신라 제36대 혜공왕(惠恭王) 때인데, 발전을 못하다가 도의(道義:道儀)와 함께 입당(入唐), 수학하고 귀국한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이 흥덕왕의 초청으로 법을 강론함으로써 구산선문 중 으뜸 사찰로 발전하였다. 도의는 장흥(長興) 가지산(迦智山)에 들어가 보림사(寶林寺)를 세웠고, 홍척은 이곳에 실상사를 세워 많은 제자를 배출, 전국에 포교하였는데 이들을 실상사파(實相寺派)라 불렀다. 그의 제자로 수철(秀澈) ·편운(片雲) 두 대사가 나와 더욱 이 종산(宗山)을 크게 번창시켰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어 약 200년 동안 승려들은 부속암자인 백장암(百丈庵)에서 기거하다가, 조선 제19대 숙종대에 이르러 300여 명의 수도승들이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1700년(숙종 26)에 36동의 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1882년(고종 19) 사찰 건물이 소실되는 수난을 겪고, 다시 여러 승려들의 힘으로 중건되어 현재에 이른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석탑, 보물 제33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秀澈和尙楞伽寶月塔), 보물 제34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 보물 제36호인 부도(浮屠), 보물 제37호인 3층석탑 2기(基), 보물 제38호인 증각대사응료탑(凝寥塔), 보물 제39호인 증각대사응료탑비, 보물 제40호인 백장암 석등, 보물 제41호인 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 보물 제420호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靑銅銀入絲香爐), 보물 제421호인 약수암목조탱화(藥水庵木彫幀畵)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