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3 주일설교
본문: 눅 14:25-33
제목: 제자 되는 조건 3
주님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말씀 중 가장 귀한 산상수훈도,
제자를 향해 하신 말씀이지, 일반 사람들을 향해서 한 말씀이 아니다.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아5:1)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제자’는 사도 같은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레를 베풀고”(마28:20)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은 참 그리스도인 제자 모두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제자는 구원과 직결된다. 제자가 되지 못하면 구원도 없는 것이다.
제자 수준 따로 있고, 평신도 수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자는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고, 구원만 받을래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숫자 늘리는 데 급급하여 세례도 쉽게 주고 구원도 쉽게 보장하고 있다.
교회 다니고 직분 받고 세례 받으면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 되는 조건을 세 가지로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으니
육체는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어도 영혼은 구원을 받았을까요?
하나님이 그 다수를 기뻐하지 아니하여, 광야에서 멸망 받았다는 말씀이, 겁만 준 걸까요?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면, 구원도 못 받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확실히 알아야 한다.
제자 수준과 구원의 수준이 다르다고 주님 말씀하신 적 없다.
구원 받은 자가 적으니이까? 물음에 주님 대답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이셨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과 길도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도 적다고 하셨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도 넓어 그리로 가는 자들이 많다고 하셨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하셨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재물이 있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셨다.
결국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능히 되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자기 가족과 내 옛 사람과 소유에 집착하는 데 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구원의 문과 천국의 문을 한없이 넓혀 놓고 안심시키고 있다.
그 미혹에 예로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하나님의 백성이란 사람들이 넘어가서 안심하고 있다.
1. 자기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는 조건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 자매가 누구인가?
자기 가족이요 자기 가정 아닌가?
자기의 소속이요 혈연이요 분리할 수 없는 관계요 자기의 연장이다.
자기 목숨과도 연결되어 있는 관계요 밀착되어 있다.
그런데, 주님은 서로 밀착되어 있는 이 가족 관계는 물론,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신다.
가정 중심 가족 중심 부부 중심 자녀 중심을 노래하는 상담학 심리학이 보면
기절하고 절망하고 분노할 일이다.
이 관계까지도, 내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다른 것의 제자가 이미 되어 있는 사람은 그 다른 것을 끊어내지 않고서는
주님의 제자가 능히 될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맞는 말이다.
한 공간을 다른 둘이 차지할 수 없는 것이 물리학의 기본 법칙이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가족과 자기 목숨의 제자가 되어 있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가 동시에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물리학적으로 너무도 당연한 이치를 왜 거부하고 놀라는가?
둘 다 갖고 싶은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재물도 하나님도 다 갖고 싶고, 세상의 것도 하나님 나라도 다 갖고 싶고,
가족과 자기 목숨의 제자도, 주님의 제자도 다 되고 싶은 것이다.
모든 것 움직이는 ‘마음의 자리’는 공간처럼 하나가 차지하면 다른 것은 들어갈 수가 없다.
둘 다 가질려고 하는 것은 이중인격이요, 겉과 속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너희 의가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바리새인의 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돈과 재물을 사랑하고,
근채와 회향의 십일조는 드리면서도 의와 인과 신은 버리고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세상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탐한다.
사실은,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자기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자기 목숨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자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것과 같다.
2.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조건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27)
자기 십자가가 무엇인가?
주님의 십자가에는 주님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자기 십자가에는 당연히 자기의 목숨이 달려 있어야 한다.
자기 목숨이 죽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의대로 살려고 할 것이니,
주님의 제자가 능히 될 수가 없다. 자기의 제자가 될 뿐이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눅17:33)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이 역설이 참 기독교이고, 참 신앙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 제자들이 초대교회였고, 발도인교회였다.
핍박자들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하지 않았고, 어떤 고문에도 배교하지 않았고,
학살도, 화형도 의젓하게 받아들였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었으니까요.
그 광대한 광야 불뱀과 전갈이 있고 간조한 땅을 통과하게 하는 것은 자기 십자가 지는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은 주님의 제자가 능히 되는 과정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이 고난이 많고 극심한 것은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생 여정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면서 홍해로 광야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다.
소중한 관계와 자기 목숨까지도 버리는 과정을 통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신다.
왜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많은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기 위함이다.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목숨을 얻고, 자기 목숨을 보전하려고 하는 자는 잃게 하신다.
주님부터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고 그 자취를 따르게 하셨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3.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조건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33)
‘이와 같이’는 망대 하나 세우는 것도 자기의 가진 모든 것으로 세워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할 것이다.
전쟁도 내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이길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하신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너희 중의 누구든지’는 한 사람의 예외도 없다는 것이다.
버릴 것은 ‘자기의 모든 소유’이다.
부분적으로 버리고, 흉내만 내어서는, 겉으로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모든 소유를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창12:1,4)
모세도 모든 소유를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
요셉도 자기 가족을 떠나 모든 소유를 버리게 하셨다.
다윗도 적국에 망명생활하고 시글락 위기를 거치며 모든 소유를 버리게 하셨다.
욥도 자기 모든 소유와 목숨까지도 위태로운 과정을 거치게 하셨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다 그물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주님의 제자가 능히 될려면 자기가 의지하고 소유하던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
그런 과정을, 주님은 통과하게 하신 다음, 능히 당신의 제자가 되게 하신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
자기 가족과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는 것, 이 세 가지 요건은
주님의 제자가 능히 되는 절대적 요건이요 필수적 요건이다.
이 요건은 인간의 의지와 결심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성령의 역사로 회개와 회심이 터져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이 있어야 한다.
옛 사람을 벗고 의와 진리로 지으심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는, 교리로 신조로는, 결코 될 수 없다.
성령을 구하고 사모하고 구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