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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미국의 히틀러가 될 가능성은?
2025년 10월 27일 월요일
선경 정해균의 독서 노트.
◐바이마르공화국 거울에 비추어 본 오늘의 우리.
1930년 9월15일 한밤중에 히틀러는 뮌헨의 뷔르커브로이켈러 비어홀로 돌아왔다. 약7년전 그가 공화국에 대항해 쿠테타를 일으키려고 했던 곳이다. .. 자정이 되자 그들은 대단한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을 알았다. .. 나치는 18.3%의 표를 얻어 107석을 차지했다. 1928년에 2.6%의 득표율로 12석을 얻은 데 비하면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
국회의원 577명중 나치가 107명, 후겐베르크 파(후겐베르크가 이끄는 국가인민당 의원)가 49명 그리고 공산당 의원이 70명이 넘었다. (국가 인민당은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소수 엘리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었지만, 용감하게도 국가인민당이라는 이름처럼 포퓰리스트 보수주의를 만들려고 했다. 국가 인민당의 대표가 된 알프레드 후겐버르크는 집권하기 위해서는 당시 새롭고 역동적인 나치와 손을 잡아야 겠다 고 생각했다.)
220명 정도 의원이 당시 독일 정부를 철저히 거부했다. 독일은 공화국을 인정하거나 적어도 참아낼 수 있는 세력이 모두 힘을 합해야만 극복할 수 있는 위기를 맞았다. … 선거결과를 보고 불안해진 외국투자가들이 독일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하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 그래서 금리를 5%(뉴욕은 2%, 런던은 3%)로 올릴 수밖에 없었다. ..독일경제는 더 깊은 불황에 빠져 들었다. ….
1932년 7월 31일, 나치는 선거에서 이제까지 중 가장 놀라운 승리를 거뒀다. 국회에서 230석을 차지하여 독일의 최대 정당이 되었다. 1931년 이후 경제 상황이 너무 나빠졌고, 외국 세력에 휘둘리는 상황에 대한 독일 국민의 분노가 점점 더 치솟고 있는데다, 종교로 분열된 독일의 독특한 정치 구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놀랍지 지 않았다. …..
총리가 된 후 18개월 동안 히틀러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기성 보수 세력이었다. 그들 만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권력의 지렛대를 조절해서 히틀러를 총리자리에 앉힐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 만이 히틀러를 제거할 수도 있었다. 기성보수세력, 그리고 히틀러 모두 이 사실을 알았다.
괴벨스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생각을 거듭했다. … 괴벨스는 광고가 간단하면서도 어느정도 잠재의식에 파고 드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소비자에게 영향을 주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러면 귀에 쏙 들어오고 기억하기 쉬운 구호가 정말 중요했다. …. 히틀러가 괴벨스를 새로 만든 ‘국민계몽선전부’ 장관으로 임명하자 독일의 광고 전문가들은(일거리를 잃었다고 생각해서)어느정도 실망하기도 했지만,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다. 정부는 그들이 한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는 규모로 광고를 해서 광고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보여 줬다. …..
나치 추종자들은 계몽주의에서 말하는 합리성의 기준을 경멸하고, 실제로 반기를 들면서 비합리성을 숭배했다. … 1920년대 1930년대에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이성에 저항하는 게 민주주의의 고질병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히틀러는 의도적인 부정직성, 대중의 비합리성에 대한 걱정, 그러면서도 이러한 비 합리성에 빠져 들고 싶은 욕망 등이 모든 걸 모두 이용했다. 나치가 역사를 해석하는 열쇠로 인종을 강조하고, 모든 문제의 해답을 인종에서 찾았던 사고방식은 전쟁의 비합리성 그리고 전쟁때의 폭력에서 자랐다. 인종에 대한 나치의 사고방식은 대놓고 반 지성적이었다. “피 끓는 생각” 이 나치의 좌우명이었다.
… 당대 상황을 예리하게 관찰한 사람들은 나치가 비합리성에 호소하면서 어떻게 이득을 얻었는지 잘 알았다. 훗날 미국에서 경영관리 전문가로 유명해진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도 예리한 관찰자였다. 1930년대에 그는 독일에서 전문기자로 일하면서 법학을 공부했다. 드러커는 빈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오스트리아 지식인들과 잘 알고 지냈다.
드러커는 역사학자들이 수십년이 지난 다음에도 계속알아 내려고 애쓰는 몇몇 나치 요소를 직감으로 알아 차렸다. 그는 나치와 파시즘의 주장이 자본주의뿐 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신념도 잃어버린 분위기에서 자랐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회문제에도 건설적인 해답을 찾을 수 없어서 나치사상은 그저 모든 것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상반되는 모든것을 모두 반대하기까지 했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반대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자를 모두반대하고 무엇보다 유대주의를 반대했다. ……
드러커는 나치 선동가의 말을 듣고는 그 말이 나치 사상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농민들이 모여서 열광적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곳에서 그가 선언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우리는 빵 값이 내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빵 값이 오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빵 값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는 민족사회주의(나치)의 빵 값을 바란다’ 라고 선언했다.” 논리적 일관성이 없는 분노와 증오가 만족서로운 사회 발전을 결코 이뤄질 수 없었기 때문에, 나치는 이러한 식의 비합리성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치즘은 “기적을 통해서만 과제를 이룰 수” 있었다. 높은 빵 값, 낮은 빵 값, 변하지 않는 빵 값”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유일한 희망은 이것들 과도 다르고 아무도 본적이 없고, 이성을 벗어나는 빵 값에 있었다”라 고 드러커는 말했다. … …
히틀러는 자신의 정부가 4년동안 모든 입법권을 행사하는 ‘수권법을 국회가 통과시키기를 원했다.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이 법안이 통과되려면 국회의원 2/3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다. 히틀러는 다른 정당들을 위협하거나 회유해서 찬성표를 던지게 했다.
그날 늦게(1933년 3월23일) 투표했고 사회민주당 외의 모든 정당은 수권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14년동안 공화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중앙당 그리고 오랜 자유주의 정당인 독일 인민당과 독일 민주당이 모두 나치의 기세와 위협 앞에서 그들의 원칙을 버렸다….
수권법의 진짜 의미는 국회가 히틀러의 정부에 4년 동안 입법권을 준다는 것보다는, 히틀러가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뜻과 상관없이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보수주의자들이 히틀러를 견제하던 보장책 중 하나가 단번에 사라졌다. 이후 넉 달 동안 법치주의와 자유와 같은 다른 모든 보장책들도 대부분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히틀러의 권력은 거침없이 강화되었다. …
나치는 이 과정을 “글라이히샬퉁(Gleichschaltung)이라고 불렀다. 전자 공학에서 쓰는 용어로, 모든 스위치가 같은 회로에 있다는 뜻이다. ‘획일 화’ 라는 뜻으로 쓰인다. 히틀러정부의 인기가 치솟을 때 나치는 연방제도를 공격해서 각각의 주정부를 재빨리 획일 화 했다. .... 어떤 전문가 단체든 장악해서 나치화 했다. 라디오 방송국과 신문들은 요제프 괴벨스가 이끄는 ‘국민계몽 선전 부 ’의 감독 아래 획일화 할 계획이 었다…..
바이마르 민주주의 종말은 갈수록 배타적인 음모론과 비합리성에 치우치는 문화속에서, 거대한 반정부 운동이 엘리트 들의 복잡한 이기주의 와 결합한 결과였다. ….
바이마르 시대 독일 정치가들은 대체로 교활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순진한 면이 있었다. …
히틀러가 총리가 되자 수백만명의 독일들은 그의 재임기간이 짧고, 힘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독일은 법을 잘 지키는데 유명한데다 문화적인 나라였다. … 유대계 독일인은 독일에 깊이 동화되었고, 애국심이 넘쳤다.
트레블링카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바비야르 학살이나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전 마지막 몇 달 동안 이루어진 죽음의 행진을 1933년에 상상조차 할 수 있었던 독일인은 거의 없었다. … 그러나 순진해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도통 몰랐기 때문에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
나중에 태여 난 우리에게는 당시 독일인보다 유리한 점이 한가지 있다. 그들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The Death of Democracy)”중에서 발췌인용 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역사학 교수 벤자민 카터 헷(Benjamin Carter Hett)이고, 한국어 번역자는 이선주 씨입니다. 번역본의 출판사는 ㈜ 눌와 입니다.
◐선동의 작동 방법.
☞선동의 정의.
선동은 내집단의 현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집단을 희생양으로 삼는 정도의 수단의 관점에서 공공 정책을 구조화 하여 안정감과 확실성 레토릭적 책임 회피를 약속하는 담론이다.
☞선동의 작동 방법.
선동이 작동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선동은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우리와 그들로 나눠 양극화 한다.
2. 선동은 정책 자체가 아닌 집단 정체성과 동기에 대해 논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선동은 우리편과 상대편에게 똑 같은 기준을 사용하는 것은 불필요하거나 우리편에게 안 좋은 것으로 취급한다.
4. 선동은 진짜 진실은 인식하기 쉬운 반면, 현실의 복잡한 사정이나 애매 모호 함은 비겁하고 우유부단하다고 평가한다. 또한 지나친 숙고는 행동으로 이어 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5. 선동은 허수아비 논쟁의 오류(상대편의 주장을 지나치게 단수화 하는 것), 투사, 비일관적인 전제에 대한 호소, 개인적 신념으로부터의 주장 등의 논리적인 오류를 자주 저지른다.
6. 선동은 그 표현이 반드시 감정적이거나 격렬하지 않아도 우리편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암묵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위협한다.
☞선동의 (전형적) 사례.
1942년 봄 태평양 전쟁의 전황이 좋지 않았을 때 (미국의 사회분위기가) 반 일본 선동이 수년째 지속되는 상황에서 캘리포니아 주 의원 존 톨런(John Tolan)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시민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당시 캘리포니아 주 검찰 총장인 얼 워런은 “일본인은 사실 태생적으로 위험하며 사보타주 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공청회에서 증언했다. 워런이 주장한 여러가지 이유 중에는 일본계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 공장, 항만, 수력 발전소, 철도, 고속도로, 송전선로 그리고 라디오 방송국 등 사보타지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지도를 보여 주었고, 일본이 진주만 공격이 (일본 계 미국시민) 사보타주의 성공사례라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펼쳤다. 그는 또 그동안 캘리포니아에 일본인 사보타주가 없었던 것은 사보타주가 임박했다는 증거라고 강변했다.
(공청회에서) 일본인을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워런은 독일인이나 이탈리아 인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른 여러 부류로 구분하고, 일본인은 모두 본질적으로 동일하고 집단적 사고(hive mind)를 하기 쉽다고 인식했다. 워런의 증언은 후일 “민간인 강제 이주 및 수용에 과한 위원회(Commission on Wartime Relocation and Internment of Civilians)”에서 “선동 그 자체” 였다고 판단했다.
나중에 워런은 강제수용소에 (일본인을 수용하는데)찬성하는 활동을 한 것을 후회했다. 미국정부 역시 그러했고 결국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워런은 자서전에서 강제수용을 지지했던 것에 대해 깊은 후회를 표했고 “가정, 학교 친구들, 친숙한 환경으로부터 강제로 분리된 (일본계 미국인)어린 아이들을 생각 할 때 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페트리샤 로버츠 밀러(Patricia Roberts-Miller) 저자의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Demagoguery and Democracy)” 중에서 (한국어 번역 김선) 발췌 인용했습니다.
◆선경의 도서 노트◆
오늘날 대표적인 포퓰리스트 정치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히틀러가 될 수 있는가? 라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재조명해 보았다. 나치의 인종주의 와 탈 세계화는 트럼프의 백인우월주의 그리고 신 고립주의 와 외양이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비합리주의를 숭배하는 나치와 탈진실에 입각한 애매하고 과장된 트럼프의 수사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고 때려잡는 폐쇄적인 접근 법에서 나치방식과 형식적인 상호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사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김봉중 교수는 자신의 최근 저서 “위험한 미국 사”에서 트럼프가 미국의 히틀러가 될 가능성에 여부에 대해서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다.
“트럼프의 독선적인 행보와 정책들로 인해 미국내에서는 민주주의가 돌이킬 수 없는 퇴보를 겪고 있다는 우려가 널리 퍼지고 있다. 나아가 그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적지 않다. 과연 트럼프가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이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트럼프가 히틀러와 같이 독재자가 될 수 없는 이유를 김교수는 다음과 같이 꼽고 있다.
첫째,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언론과 개인이 정부 정책이나 지도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예를 들어,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언론의 끈질긴 보도는 닉슨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폭로하며 결국 사임으로 이끌었다.
둘째, 건국 초기부터 확립된 ‘견제와 균형’ 의 원칙은 의회, 행정부, 사법부가 서로의 권한을 감시하고 제한함 으로서 어느 권력기관도 과도하게 힘을 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대법원의 판결이나 의회의 탄핵권 행사는 이러한 제도의 구체적인 사례이다.
마지막 미국내부에는 고발자가 조직의 부패나 불법 행위를 폭로하는 전통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를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라 한다.
이와 함께 미국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시민의식도 독재를 막는 중요한 힘이다. 선거를 통한 권력교체가 정기적으로 이루어 지고, 주정부와 중앙정부가 독립적으로 권한을 행사 하면서 중앙정부의 권력 집중을 방지하는 구조 역시 견고 하다는 것이 김교수의 견해이다.
그래도 우려와 걱정은 남는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나치의 추종자들은 계몽주의에서 말하는 합리성의 기준을 경멸하고 실제로 (폭력적수단을 동원하여)반기를 들면서 비합리성을 숭배하고 획일화를 감행했다.
트럼프 같은 정치적 이단 아의 무모한 전횡으로 비록 일시적이지만 제도와 기관이 헌법에 설계된 견제와 균형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마비될 때 단지 법과 규칙만으로 독재적 흐름을 막기 역부족이다.
특히 권위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지도자에게는 합리성과 상식에 입각한 깨여 있는 시민의 참여와 감시 그리고 저항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임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체재(우리편)를 지키기 위해 비합리와 몰상식을 저지르는 줄 알면서도 체재의 성향에 따라 자기편을 숭배하는 예외가 대세를 이룰 경우 그 사회는 권위주의 정치가를 키우는 토양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의 정치인들이 몰입하고 있는 흑색선전과 근거 없는 음모론이 우려를 자아 내고 있다.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에서 비슷한 취지의 다른 표현으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시민들이 사회문제를 상대편이 더 많이 얻을수록 우리편이 잃게 되고, 우리편에 반대하면 어떤 주장 에라 도 분노해야 하고, 상대 편에 반대하면 어떤 주장이라도 응원해야 한다는 의미의 제로 섬 게임으로 간주한다면, 민주주의는 실패한다.”
“선동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악용할 수 있는 손쉬운 도구이다. 그러나 정치문화에서 선동의 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시민에게 달려 있다. 정치인들의 선동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어떻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투표하는가에 달려 있다.”
결론적으로 트럼프가 미국의 히틀러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은 미국시민의 몫이다. 트럼프의 히틀러화를 제지하는 확실한 해결책은 2026년 11월 미국 중간 선거결과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권자들은 항상 정치적 불만을 투표로 나타낸다. 대중영합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인 트럼프는 투표속에 숨은 대중의 불만에 민감 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회와 민주주의에는 일정한 분열에 씨앗을 품고 있다. 인종, 지역, 계층, 성별, 종교, 이념 등의 다원적 요소가 분열의 씨앗이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국가 인민당은 국익을 위해 1920년대에 몇 차례 국회에서 자신들의 이념과 정반대인 정책을 지지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국가 인민당의 대승적 시야를 칭찬하기 보다 “등뼈가 부러졌다” 라고 조롱했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편견이 사회에 팽배하면 정당들이 자신의 경계를 뛰어 넘는 의욕이나 능력을 키우려는 의지를 좌절 시키 기 마련이다.
오늘날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제로섬 게임이 팽배하는 이유를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가 인민당이 1920년대에 겪은 타협을 막는 당시 문화적인 편견에 비유하면 어떨까 싶다. 정당이 이익집단의 지배를 받아 타협을 하려고 하지 않는 한 어떤 민주주의도 길게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구조하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이나 압력 단체가 없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집단은 공화국내 고립무원의 이방인의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
만의 하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미국의 히틀러의 지위를 굳히면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고 이방인의 나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1920-30년대 독일에서 벌어 진 일이 오늘을 동행하는 우리 세대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할 거리”를 공유하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