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The Holl)/ 저자: 편혜영/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작성자 :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최경영
사람은 삶의 마지막 순간이 어떠하길 바랄까?
누구나 건강히 살다가 잠자듯 조용히 숨을 거두길 바랄 것이다.
내가 살던, 내가 누리던 공간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시들기를 말이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 바라는 대로, 예측한 대로만 흘러가던가?
이 책의 주인공 역시 대학교수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인생이었으나, 여행길에 생긴 교통사고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삶을 맞이한다.
자신과 다른 성격의 아내였지만, 바빠서 좀처럼 시간을 못 내었을 뿐 이 남자는 아내를 사랑했다. 소원해진 관계회복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아내는 죽고 본인은 눈을 깜빡여 의사를 전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몸뚱이가 되어 깨어났다.
몇 달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장모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엄마는 자신이 어려서, 아빠는 성인이 되어서 돌아가신 터라 혼자였던 이 남자에겐 이런 몸을 맡길 사람이 평소 자신을 못 마땅해했던 장모밖에 없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었다.
갑자기 사랑하는 딸을 잃은 장모는 홀로 된 사위를 위해 입주 간병인과 출장 물리치료사를 불러 회복을 도왔으나, 딸이 생전에 썼던 글들(남편의 외도 의심)을 본 뒤로 사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입주 간병인을 쫓아냈고, 출장 물리치료사도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 이제야 몸의 통증을 느낄 수 있고 누운 채 다리를 살짝 옆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누구에게도 어떤 돌봄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장모는 죽은 아내처럼 집 마당 정원을 가꾸는 일에만 열중했다.
이대로 방치된 채 죽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남자는 장모가 외출한 틈을 타 바닥을 힘겹게 기어서 집안을 탈출하기에 이르는데...
여기서부터는 책을 놓지 않고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탈출의 성공을 기원하며 말이다.
사실 책의 화자가 이 남자였기 때문에 아내의 마음까지 들여다 볼 수는 없었지만, 남편의 외도를 의심한 순간부터 아내는 이미 지옥이었을 것이고, 오해하고 사과하고 또 오해하고 미안해한들 부부 사이가 예전 같지 못했을 것이다. 딸의 그런 글들을 읽은 장모 역시 사위가 이쁠 턱이 없지 않았을까?
책에서 이 남자는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실제상황이라면 되돌아 갈 순 없지만, 소설이니 남자를 원하는 순간으로 데려다 놓아주고 싶다.
대화를 하다보면 사람들은 가끔 어느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지를 묻곤 한다. 지나간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걸 알면서도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저렇게 할 텐데 하고 후회한다. 나 역시 설거지를 하거나 샤워를 하는 시간에 내가 했던 말실수나 행동이 떠오르면 “아이고~”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허나 지난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지난 행동도 없던 것이 되는 게 아니니 그저 스스로 부끄러울 뿐이다. 다만, 계속 지난 일만 생각하며 살 수는 없으니, 내일 후회하지 않을 오늘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책표지에 이끌려서 읽게 되었는데, 책제목은 마지막에 가서야 제 이름값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