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군 폭격에 창자 터진 중국여자와 천진난만한 아기를 보며 독립군이 되기로 결심한 지복영 애국지사.
“중경에서 있었던 일이었어요. 비행기가 밤새도록 폭격을 해대는데 몇 번이고 방공호를 드나들었지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하도 지겨워서 죽어도 그냥 여기서 죽는다고 방공호에 안 가고 누워있었죠. 그런데 청사를 지키던 분이 허겁지겁 달려와 빨리 피하라고 소리를 치더군요. 얼떨결에 몸을 피했는데 그 순간 임시정부 숙소 가까이에 폭격이 가해져 화약냄새가 진동하는 거예요. 자세히 보니 중국여자가 아기를 안고 폭격을 맞아 죽었는데 창자가 삐져나오고 다리도 잘라지고…. 그런데 아기는 살아서 엄마 가슴을 기어오르는 거예요. 당시의 기억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일주일 동안 잠도 못자고 먹지도 못했어요. 나중에는 학업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배워서 학사 박사가 된들 뭣하겠느냐. 이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나게 하는 것이 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3·1여성, 지복영선생 인터뷰, 박용옥, 189쪽)
지복영 여사는 ‘한국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강인한 독립투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중일전쟁의 처참함을 몸소 겪고 아버지 지청천 장군에게 “저라도 필요하면 써주십시오”라는 말을 건네었고, 아버지는 이에 “잘 생각했다. 조국 독립하는 데 남자 여자 가리겠느냐 한국의 잔다르크가 되거라”라고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