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 外編 13篇 天道篇 第3章(장자 외편 12편 천도편 제3장)
천지의 덕을 분명히 아는 것, 이것을 일러 큰 근본[大本]이라 하고 큰 종주[大宗]라 하니 하늘과 조화된 자이고, 천하를 고르게 다스리는 것은 사람들과 조화된 자이다. 사람들과 조화된 것을 사람의 즐거움이라 하고 하늘과 조화된 것을 하늘의 즐거움이라 한다.
장자가 말했다. “나의 스승이시여, 나의 스승이시여, 만물을 산산이 조각내면서도 스스로 사납다고 여기지 않으며, 은택이 만세萬世에 미쳐도 스스로 어질다 여기지 않으며, 아득히 먼 상고上古보다도 더 오래 되었으면서도 스스로 장수長壽했다고 여기지 않으며, 하늘과 땅을 덮어 주고 실어 주며 뭇 사물의 모양을 새기고서도 스스로 기술이 뛰어나다고 여기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자연의 즐거움[天樂]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자연의 즐거움[天樂]을 아는 사람은 살아 있을 적에는 자연[天]과 함께 움직이고, 죽어서는 사물과 동화되며, 고요할 적에는 음기陰氣와 덕德을 함께하고, 움직일 때에는 양기陽氣와 파동을 함께한다. 그 때문에 자연의 즐거움[天樂]을 아는 사람은 하늘의 원망을 받지도 않고 사람의 비난을 받지도 않고 사물의 얽매임도 받지 않고 귀신의 책망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천지의 덕德을 밝게 아는 사람은〉 움직일 때에는 하늘과 같고 고요히 머물 때에는 땅과 같은지라 그 한 사람의 마음이 안정되어 천하를 왕으로 다스릴 수 있다. 그 정신精神(귀鬼와 혼魂)은 핑계를 대지 아니하고 게으르지 않은지라 그 한 사람의 마음이 안정되어 만물이 복종한다.”고 하니, 이것은 자기의 무심하고 고요한 마음을 하늘과 땅에까지 미루어 나가며 만물에 통하게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자연의 즐거움[天樂]이라고 하는 것이니, 천락天樂이란 성인의 마음으로 천하 만물을 기르는 것이다.
夫明白於天地之德者 此之謂大本大宗 與天和者也
所以均調天下 與人和者也
與人和者 謂之人樂 與天和者 謂之天樂
(부명백어천지지덕자는 차지위대본대종이니 여천화자야요
소이균조천하는 여인화자야라
여인화자를 위지인락이요 여천화자를 위지천락이니라)
천지의 덕을 분명히 아는 것, 이것을 일러 큰 근본[大本]이라 하고 큰 종주[大宗]라 하니 하늘과 조화된 자이고,
천하를 고르게 다스리는 것은 사람들과 조화된 자이다.
사람들과 조화된 것을 사람의 즐거움이라 하고 하늘과 조화된 것을 하늘의 즐거움이라 한다.
☞ 대본대종大本大宗 : 대본大本, 대종大宗, 만물지본萬物之本, 자본자근自本自根 등의 표현은 모두 궁극적인 근거라는 점에서 도의 근원성을 나타내는 말.
☞ 여천화與天和, 여인화與人和는 인간세人間世편 제1장과 대종사大宗師편 제1장의 ‘여천위도與天爲徒’와 ‘여인위도與人爲徒’와 유사한 의미. 균均은 평平으로 ‘고르게 다스린다.’는 뜻. 여천하與天和와 여인화與人和의 관계에서는 “하늘을 따르는 것이 사람들에게 호응하는 방법이다. 그 때문에 천화가 지극해지면 인화 또한 극진해진다.”(郭象)
子曰吾師乎吾師乎 䪠萬物而不爲戾
澤及萬世而不爲仁 長於上古而不爲壽
覆載天地 刻彫衆形而不爲巧 此之謂天樂
(장자왈 오사호여 오사호여 제만물이불위려하며
택급만세이불위인하며 장어상고이불위수하며
복재천지하며 각조중형이불위교하니 차지위천락이니라)
장자가 말했다. “나의 스승이시여, 나의 스승이시여, 만물을 산산이 조각내면서도 스스로 사납다고 여기지 않으며,
은택이 萬世에 미쳐도 스스로 어질다 여기지 않으며, 아득히 먼 上古보다도 더 오래 되었으면서도 스스로 長壽했다고 여기지 않으며,
하늘과 땅을 덮어 주고 실어 주며 뭇 사물의 모양을 새기고서도 스스로 기술이 뛰어나다고 여기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자연의 즐거움[天樂]이라고 한다.”
☞ 제만물이불위려䪠萬物而不爲戾 : 만물을 산산이 조각내어 차별差別 지우면서도 스스로를 포학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뜻. 려戾를 사나움[포暴]이나 인仁의 반대개념으로 풀이,
故曰 知天樂者 其生也天行 其死也物化
靜而與陰同德 動而與陽同波
故知天樂者 無天怨 無人非 無物累 無鬼責
(고로 왈 지천락자는 기생야에 천행이오 기사야에 물화하며
정이여음으로 동덕하고 동이여양으로 동파니
고로 지천락자는 무천원하며 무인비하며 무물루하며 무귀책이니)
그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자연의 즐거움[天樂]을 아는 사람은 살아 있을 적에는 자연[天]과 함께 움직이고, 죽어서는 사물과 동화되며,
고요할 적에는 음기陰氣와 덕德을 함께하고, 움직일 때에는 양기陽氣와 파동을 함께한다.
그 때문에 자연의 즐거움[天樂]을 아는 사람은 하늘의 원망을 받지도 않고 사람의 비난을 받지도 않고 사물의 얽매임도 받지 않고 귀신의 책망도 받지 않는다.”
☞ 기사야물화其死也物化(죽어서 사물과 동화한다)의 물화物化는 만물의 하나로서 생성변화生成變化의 리법理法에 그대로 맡긴다는 뜻이 되고 물체전생物體轉生에 그대로 따른다는 뜻. 제물론齊物論편 제6장의 내용과 같다.
☞ 여양동파與陽同波는 밖으로 작용하여 움직일 때에는 동動과 강剛의 원리인 양陽의 기氣와 그 물결, 그 파동을 함께한다는 뜻.
☞ 무천원無天怨 무인비無人非’는 ‘하늘’과 ‘다른 사람’이 원망하고 비난하는 주체이다.
☞ 무귀책無鬼責은 천지天地편 제1장에 “무심無心의 경지에 도달하면 귀신鬼神들까지도 감복感服한다.”라고 한 것과 유사하다.
故曰 其動也天 其靜也地 一心定而王天下
其鬼不祟 其魂不疲 一心定而萬物服
言以虛靜 推於天地 通於萬物
此之謂天樂 天樂者 聖人之心 以畜天下也
(고로 왈 기동야는 천이오 기정야는 지라 일심이 정이왕천하하며
기귀 불수하고 기혼이 불피라 일심이 정이만물이 복이라하니
언이허정으로 추어천지하며 통어만물이니
차지위천락이니 천락자는 성인지심에 이축천하야니라)
그래서 말하기를 “〈천지의 덕德을 밝게 아는 사람은〉 움직일 때에는 하늘과 같고 고요히 머물 때에는 땅과 같은지라 그 한 사람의 마음이 안정되어 천하를 왕으로 다스릴 수 있다.
그 정신精神(귀鬼와 혼魂)은 핑계를 대지 아니하고 게으르지 않은지라 그 한 사람의 마음이 안정되어 만물이 복종한다.”고 하니
이것은 자기의 무심하고 고요한 마음을 하늘과 땅에까지 미루어 나가며 만물에 통하게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자연의 즐거움[天樂]이라고 하는 것이니, 천락天樂이란 성인의 마음으로 천하 만물을 기르는 것이다.
☞ 王天下는 以王治天下의 줄임. 곧 왕으로 천하를 다스린다, 천하에 왕 노릇 한다는 뜻.
☞ 기귀불수其鬼不祟 기혼불피其魂不疲 : 수祟(빌미 수)는 핑계. 피疲자와 함께 정신적 나태함을 드러내는 표현. 귀鬼와 혼魂은 모두 성인聖人의 정신精神을 말하는 것.
☞ 天樂者 聖人之心 以畜天下也 : 天樂이란 성인의 마음으로 천하 만물을 기르는 것임. ‘畜’은 ‘기르다’는 뜻으로 養과 같다.
※ 이상의 내용에 관해서는 장자의 사상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고래로 많았다. “이 편의 주장은 장자의 지향과 서로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고, 단지 노자가 고요함을 지킨다고 한 말을 따라 부연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노자와 다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진한 시기의 황로술을 가지고 군주에게 알아주기를 구한 자가 저술한 것 같다. 무위無爲를 군도君道라 하고 유위有爲를 신도臣道라 한 것은 도道를 둘로 쪼갠 것이다. 또 이미 유위를 신도라 해 놓고 다시 ‘이것을 분명히 알아서 남쪽을 바라보며 천하를 다스린 것이 요의 임금 노릇이었고 이것을 분명히 알아서 북쪽을 바라보고 임금을 섬긴 것이 순의 신하 노릇이었다.’고 했으니 스스로 모순된다. …… 절대 장자의 글이 아닐 뿐만 아니라, 또 장자를 잘 배운 자가 모방해서 지은 것도 아니니, 독자들은 마땅히 구분해야 할 것이다. 그 뜻은 병형, 법도, 예악은 아랫사람에게 맡겨서 분수에 편안하고, 명법을 지켜서 공과를 자세하게 고찰하는 것이니, 이것은 형명가의 말이자 호해와 독이의 술책이니, 이런 뜻을 본받는 것은 장자의 뜻이 아니다”(王夫之, 莊子解)라고 했는데 일찍부터 이편의 저작자에 대한 설득력 있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의론이 자못 한비자, 신도의 근본 취지와 비슷하다.”(胡文英, 莊子獨見)라고 했고, “이는 말세의 유생들이 한 말일 뿐이니 어찌 참으로 장자의 말이겠는가.”(錢穆, 莊子纂箋), “여기에 표현된 사상은 윤문자와 완전하게 일치한다. …… 이것은 이미 노자나 장자 일파의 주장이 아니며 또한 유가의 주장도 아니다.”(關鋒, 莊子外篇初探), “존비와 선후를 따지는 말은 자못 노장의 뜻과 비슷하지 않다.”(李勉, 莊子總篇及分篇評注), 라고 하였고, 심지어 陳鼓應은 이 아래의 ‘夫帝王之德’에서부터 ‘非上之所以畜下也’까지는 莊子학파의 사상에 어긋나므로 이 몇 문단은 삭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까지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