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 베르나(La Verna) 프란치스코 수도원(오상 경당-보나벤뚜라 경당)
프란치스코회의 갈바리아(Calvaria,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묻히신 해골이란 뜻의 골고타의 라틴어역) 산으로 불리는 라 베르나는 아펜니노(Apennino) 산맥의 한 부분인 고립된 하나의 둔덕이다. 최고 높이는 1,283m에 이르나 성지는 해발 1,128m에 있다. 성지 주변에는 작은 계곡을 중심으로 깎아지른 듯한 암벽들과 가운데 일부가 균열을 보이고 있는 바위들이 있는데, 아마도 오래 전에 있었던 지진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 산은 13세기 초에 키우시의 오를란도 카타니(Orlando Catani) 백작의 소유였다. 조상들로부터 이 산을 물려받은 오를란도 백작은 그 지방의 지주였으며 군사적 정치적인 수완보다는 성 프란치스코와의 우정을 통해 역사에 알려진 인물이다. 1213년 성 프란치스코는 레오 형제와 함께 모로코로 가던 중에 로마냐(Romagna)의 몬테펠트로(Montefeltro)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곳에서는 새 기사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는 광장에서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고, 이에 감명을 받은 오를란도 백작이 사적으로 자신의 영신 사정에 대해 성인과 함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후 백작은 라 베르나 산을 성 프란치스코에게 선물할 뜻을 밝혔고, 성인은 그곳을 속죄와 기도 생활에 적합한 산이라면 백작의 호의를 기꺼이 받겠다고 응답하였다.
몇 달 뒤 프란치스코 성인에 의해 파견된 두 형제가 이 산을 답사하고, 형제들의 기도와 관상 생활에 적합한 봉우리를 찾아 그곳에 자신들과 성인의 거처를 만들게 되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라 베르나에 처음 올라간 것은 1214년으로 보고 있고, 그 뒤 다섯 차례 즉 1215년, 1216년, 1217년, 1221년 그리고 1224년에 그곳에 간 것이 확실하다. 1224년의 마지막 방문은 좀 더 길었던 것 같고 그해 9월 14일경 성인은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오상을 받았다.
성 프란치스코는 9월30일 오를란도 백작이 보낸 나귀를 타고 보르고 산세폴크로, 몬테카살레, 치타 디 카스텔로를 거쳐 포르치운쿨라로 돌아왔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역시 1230년경 이곳에 머물렀었다. 1250년경에 수도자들의 지속적인 체류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그때는 이미 견고한 건축물들이 있었다. 1259년 성 보나벤투라는 이곳에 머물면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혼의 여정”과 “삼중도”(三重道)를 저술하였다. 1260년 성 보나벤투라와 인근지역의 주교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 축성식이 있었다. 그 뒤 2, 3년 후 오를란도 백작이 세상을 떠났고 후에 이 성당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