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여, 젊을 때에, 젊은 날을 즐겨라. 네 마음과 눈이 원하는 길을 따라라. 다만, 네가 하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만은 알아라. 네 마음의 걱정과 육체의 고통을 없애라. 혈기왕성한 청춘은 덧없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고생스러운 날들이 오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할 나이가 되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먹구름이 곧 비를 몰고 오기 전에, 그렇게 하여라.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고 옥한음 목사님의 책 <문밖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이란 책에 로댕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로댕’하면 유명한 조각‘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납니다. 한국 덕수궁에서 열렸던 그의 작품전에서‘생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 중에 지옥편을 소재로 해서 지옥문 위에 만들어진 조각품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 작품을 보며 지옥문 위에 붙여진 제목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지옥문 앞에까지 갔다면 이미 끝난 것입니다. 지옥문 앞에서 무슨 생각이 필요하겠습니까? 때가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나 작품을 감상하면서 약간의 모순을 느꼈지만 우리에게 상당한 의미를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나,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 다가올 최후의 심판에 대해 마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우리도 생각하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깊이 머리를 숙이고 손으로 턱을 고이고 조용히 겸손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그런 곳이 있단 말인가?’, ‘내가 비록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지만 그곳에 가지 않는다는 확신이 나에게 있는 것일까?’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요, 또한 엄숙한 과제입니다.”단호한 목사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심판을 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 교회를 다닙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예배,봉사,헌신, 종교적 행동등)는 이유로 심판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목회자들에게는 더 큰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심판을 말합니다. 히9:27절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새번역) 심판은 두렵게 만들려는 협박용 멘트가 아니라, 우리가 마주할 현실입니다. 심판이란 우리가 살아온 삶에 대한 창조주의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평가가 존재합니다. 또한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학생은 시험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직장인들은 업무능력으로 승진,연봉인상에 대한 평가를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면 평가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이 세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과 돈과 힘(에너지)입니다. 어떻게 쓰는가는 우리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 썼는지 잘못 썼는지에 대해서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답을 찾아 헤매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답을 알고 살아갑니다. 주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정답입니다. 답을 헷갈립니까? 정답은 주의 뜻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말씀생활,기도생활,예배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항상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면 심판이 두렵지 않습니다. 잘못 살고 있기 때문에, 잘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숨기고 감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나라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로 나가지 못합니까?
지도자들이 부정직입니다. 재산과 명예와 지위를 잃을 것이 두려워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고, 법리적으로 유무죄를 판단하라고 요구합니다. 제가 요즘 가장 실망한 말 “좌파는 돈 벌면 안됩니까?”양심이 무력해지는 말입니다. 자기를 정죄하는 세력이 부정한 세력이기 때문에 자신은 늘 정의로운데 고통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던져버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청년들이 지도자를 통해서 배우고 도전받을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숨기고 감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 서는 그 날에는 아무 것도 감추지 못합니다. 우리가 행한 일을 스스로 자백해야 할 것입니다. 비로서 그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감신대 설교에서 두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The Day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그 날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날까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며 사는 것입니다. 또한 인생의 목적을 성공에 두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사십시오. 우리가 윤리와 도덕적인 훈련을 한다고 과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까요? 못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분명하면 심판받지 않을 것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즐기라고 해놓고 심판한다고 하나님 너무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행복하고 건강한 삶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언젠가 그날 아침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앞에 섰을 때 기쁨으로 주의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잘 살았다.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청춘은 짧습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생각만큼 길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주 짧습니다. 지금 청년기를 사는 여러분들의 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친구들을 만나 어린 시절 살았던 창신동 집에 갔을 때 주소는 남았으나 집은 이미 빌라로 변해있었습니다.
청춘은 추억을 먹고 살수 없습니다. 동시에 마냥 즐기며 살수도 없습니다. 저도 청년의 때를 질풍노도의 시절로 살았습니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먹고 살만한 영문과가 아닌 철학을 전공했고, 짧은 기간 술, 담배도 했습니다. 교회를 다녔으나 하나님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5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조직은 있고 사람이 없는 운동권의 실체를 보면서 당황했습니다.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말하지만 철저히 조직을 위한 희생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어머니의 기도가 주님앞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마음대로 살았던 시간이 나를 공격했습니다. 매학기 18-20학점(2/4학기에도)을 들어야 했고, 계절학기마다 추가로 돈을 내고 학점을 들었습니다. 철학과 학생이 공대과목인 대학수학 6학점을 채워 겨우 졸업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돈은 땀흘리면 벌 수 있게 하셨고, 에너지는 운동을 하면 늘릴 수 있게 하셨지만 시간은 인간이 손댈 수 없는 영역으로 두셨습니다. 짧은 청춘의 시간을 낭비하면 치명적인 시간의 공격을 받습니다.
1989년 개봉했던 제가 좋아하는 호주 영화감독 피터 위어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로 한국사회에 명문대 진학을 위한 교육제도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이 지금도 계속 유효하다는 사실에 절망스럽습니다. 존 키팅 선생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까르페 디엠”(seize the day) 시간을 붙잡으라는 라틴어입니다. 주어진 시간에 마음과 뜻과 열정을 다해 살라는 말입니다. 학교의 권유로 사퇴하는 날 아이들은 책상위에 올라가 학교를 떠나는 스승을 위해 유명한 “오 캡틴 오 캡틴”을 외쳤습니다. 성적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의 삶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갖고 살아가도록 , 자기를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살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스승이라는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저도 오늘 청년주일을 맞아 우리 청년들에게 권면하고 싶습니다. “까르페 디엠”저는 이 말을 두가지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도전하는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전 스탠포드 대학에서 했던 졸업식 연설은 지금도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그 연설에서 결론적으로 두가지를 당부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만족하지 말고 늘 갈망을 갖고 도전하는 인생을 살라는 것과 우직하게 그 길을 걸어가는 성실함으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룬 작은 성취에 만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결음 한 걸음 더 높은 목표를 위해서 성장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이웃을 복되게 하는 삶을 향해 도전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품고 기도하며 세상을 품는 청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하나는 말씀이 삶의 기준인 사람이 되십시오. 꾀를 부리지 마십시오. 영악한 사람이 되지 말고 바보처럼 답답한 사람이 되십시오. 요령을 부리고, 탁월한 적응력을 보여주기 보다 성경이 삶의 기준임을 보여주십시오. 짧은 청춘의 때에 무엇을 이룬 사람이 되기보다는 긴 인생에서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준비하십시오.
너희 창조주를 기억하라!
청년의 때는 스스로 삶의 기준과 원칙을 세워 자신을 훈련하는 때입니다. 이 훈련이 없으면 여러분의 삶은 보석처럼 반짝일 수 없습니다. 자신을 훈련하는 힘든 일을 해내야 자신의 인생을 보석으로 만들고, 자신이 하는 일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여러분의 미래를 더 밝게 만들고 싶다면 여러분이 원칙과 기준을 정하고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존경하는 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4가지 원칙을 지켜 살았습니다. 첫째, 후원받은 재정은 투명하게 사용한다. 둘째 성적인 부도덕함을 예방하기 위해 의심을 사거나 비윤리적으로 비쳐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셋째 동역자를 비방하지 않는다. 넷째 사역의 업적을 과장하지 않는다(집회 인원수).
이런 신앙적인 원칙과 기준을 정하고 사는 삶을 하나님앞에서 “Coram Deo”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앞에 살지 말고 하나님앞에 살아야 합니다.
‘기억하라’는 히브리어 자카르입니다. 자카르는 사람들이 보고 알 수 있는 표시를 의미합니다. 노예에게 문신으로 새겨 영원히 주인의 소유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처럼,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창조주를 기억하는 삶입니다. 창조주를 기억한다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피조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피조된 존재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부족함과 연약함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하나님께 연결되어 그분이 주시는 영혼의 양식을 받아 먹어야 합니다. 영혼이 살아야, 양심이 살아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을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생 자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도록 하나님은 디자인하셨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서로 돕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족들, 이웃들, 자연세계와 화평의 관계를 이루고 살아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서로를 돌봐야 합니다. 독불장군처럼 자기만의 성안에서 살 수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정직과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주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소중한 이웃들과 정직과 사랑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십시오.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두 번째 의미는 우리가 시작이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스스로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선택한 것도, 이 나라를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어 세상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끝이 있지 않겠습니까? 끝이라는 말은 허무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끝이라는 말은 정리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고, 많은 것을 소유해도 끝을 피할 수 없는 것이 피조물의 한계입니다. 이 사실을 잊어버리면 어리석은 결정을 하고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갑니다.
어떻게 시작하는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끝을 맺는가?는 더 중요합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은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영광과 행복을 누렸던 솔로몬은 자신의 지난 삶을 회고하면서 우리에게 간곡하게 당부했습니다.“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12:7)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주님을 만날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인생을 사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