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풀 소고>
그렇다.
몇 년만인가.
마라톤 연풀을 뛰며 펜데믹 이후 평소 멍했던 심정을 강하게 달래보고 싶었다.
500회라는 횟수를 채우기라면 다음주에 달려도 되겠지만, 연풀이 주된 목적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연풀을 뛴 기록들을 보면, 첫째날보다 둘째날 기록이 더 좋았던 것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2016년12월3일,4일 연풀을 뛴 이후, 약7년만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지만 무모하게 무식하게 무리하게 현금의 나 육신에 도전하고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지난 기록들을 보니 2011년1월에는 4주연속으로 연풀을 뛰어 1개월에 8회 완주한 적도 있었다. 그것도 평균기록은 섭4였던데....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지? 하지만 이제 연풀 평균기록330은 힘들겠지..
누구나 늙는거니까...막상 도전해 놓으니 머리가 복잡해 졌다.
금요일 정시퇴근, 집에서 코다리와 고등어찜으로 저녁을 먹고 신경주역에 이동, 하루 6천원인 공영주차장에 주차후 KTX에 몸을 뉘인다.
지난 월요일부터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희얀하게 운동하지 않고 에너지를 비축하고 싶었던 게으름 때문이었다.
창 밖은 짙은 어둠으로 꽉차 있었지만, 손살같이 달리는 속도의 위력은 약간의 쾌감도 느끼게 된다. 눈을 감는데..보철 김명종회장님의 전화..송년회 일정이 12월1일 저녁...앗차, 차표를 수정해야 했다. 오랜만에 경주3개클럽이 연합하여 모인다니 반가운 일이므로, 12월2일 여의도에 대회 참가를 위한 12월1일 이른 저녁5시55분발로 예매해 뒀던 기차표를 늦은 밤10시4분발로 변경하였다....다시 자세를 잡고 하루 일과의 피로를 좌석밑바닥에 깔고 한숨 곤하게 잤더니, 밤10시가 넘어 서울역에 도착한다.
내가 있는 연희동은 연남동과 이웃하여 늘 젊음으로 북새통이다. 언제나 이곳은 세월 가는 줄 모르는 곳인데 나만 세월이 가나 싶었다.
야식은 생략하고 그대로 취침. 새벽4시에 기상하여 샤워 후 숭늉과 김.김치로 간단히 식사하고 가슴에 대일밴드. 발바닥과 발가락에 물집방지용 테이핑, 사타구니에 바셀린, 오늘 영하권날씨라 타이즈와 숏에 바람막이착용, 그리고 트레일런 조끼 베낭에 아미노파워젤2개와 스프레이파스, 바셀린과 물1병을 배낭에 넣고 홍대입구역에서 2호선으로 신도림역에 도착한다. 라때는 이런 영하권에도 숏과 민소매였는데...처음 출전하는 터라, 이곳 대회장 출발지점을 찾는데 30분을 헤매었다. 신도림역이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1호선 처음 생겼을 때 1970년대 후반, 80년대랑 다르지, 흐른 세월이 얼만데.. 또 라때가 떠 올랐다...ㅋ..
출발지와 100미터 정도 떨어진 한양빌딩 B1 주최측 사무실에 들러 칲과 배번호를 수령하고, 마치고 갈아입을 뽀송한 옷들은 가방에 넣어 맡겨두고, 7시30분 정각에 트레일 배낭을 메고 스타트~~. 공원사랑마라톤은 누구나 정해진 날, 06시부터 08시 사이에 참가비3만원을 내고, 칲과 배번호를 받아 정해진 코스로 42.195를 달리는 정규마라톤 대회이다. 출발선에 보급소가 있고, 출발하여 2키로에 무인급수대 1곳이 있고, 6키로에 유인 보급소1곳이 있다. 예전 금호강 마라톤과 비슷했는데, 그곳은 4회전이었는데, 이곳은 2회전이었다. 처음 칠마회분과 2키로 쯤 동반주 했으나, 내 페이스를 찾고 나홀로 레이스를 한다. 달린다는 것은 혼자만의 침잠된 상념에 빠져 만끽할 수 있고, 마음껏 사색할 수 있어 좋다. 그러면서, 복잡한 일상의 업무와 주변 관계 정리도 할 수 있어 좋다. 약간의 페이스를 올려 보았다. 바람은 생각보다 더욱 차가웠고, 버퍼를 벗을 수 없었다. 오늘과 내일 5시간 언더가 목표이므로, 페이스 조절에 각별한 신경을 쓰며 이대로 편안하게 정주행 하기로 한다.. 주로에서 만난 ‘적토마’님 정말 오랜만...반갑게 인사하고, 예전에 같이 연풀도 많이 뛰었는데....음지와 양지, 터널과 밖을 번갈아 가며 인고하니, 어느듯 완주를 하였다. 내일도 이렇게만 하자...지금 몸 상태는 물집하나 없이 양호하였고, 멘탈도 가볍고 상쾌하였으며, 몸속의 불순물 찌꺼기가 다 빠져 나간 느낌이었다. 혹시 이상한 런너스하이인가?? 이제 반은 성공한 셈...현장기록증을 받아 사무실에 들리니, 컵라면에 막걸리를 준다. 그곳에 어마어마한 분들이 진을 치고 계셨다. 평균연령75세. 평균기록4시간대.평균마라톤 횟수1,000회...존경스럽습니다. 그곳 사무실에는 오로지 마라톤세상으로 가득하였다.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서만 500회 넘게 달리신 분..사방의 벽에 걸린 메달들...해외 대회..섬 대회...풍경들...오대산 한국자생식물원에 있는 제1탑부터 3탑에 새겨진 명단도 벽에 붙어 있었다. 반가웠다. 한국에서 마라톤풀코스 100회 완주자 최초100명의 이름을 탑에 새겨 놓은 것이 오대산 1탑인데...제1탑 80번째 내 이름도 있다 하니..주최측 아주머니가 벽에 가서 찾아 본다. 여기 있네...와~하신다.. 낯선 그곳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니 반가웠고, 나는 그분들 앞에서 내세울 것 없었으나 그것 덕분에 그 분들의 대화에 약간 끼일 수 있었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즐기고 있자니, 하 세월...내일을 위하여 적토마님과 인사후 헤어진다.
다시 전철로 이동하여 집으로 돌아와 샤워 후 꼼짝 않고 누워만 있다가 저녁으로 파스타 먹고, 또 잤다. 다음날, 8시30분 출발이라, 5시에 기상하여 혈액순환 배려, 따뜻한 물로 샤워후 5시30분에 숭늉,밥,김치로 식사후, 어제와 똑 같은 복장으로 채비를 하고, 트레일런 베낭에 어제와 똑 같이 넣고, 카카오티로 상암월드컵 평화광장으로 도착한다. 집에서 가까워 너무 일찍 와 버렸다. 어제와 달리 이곳은 2만여명의 인파..5키로부터 풀까지....넓은 광장에 젊음으로 가득가득..이게 무슨 열기인지..요즘 마라톤과 트레일런과 철인3종 모두 대세는 젊음이다. 아주 세대교체가 확 된 느낌...라때 타령 그만하고 은퇴 해야지...요란한 북소리와 출발 세레모니와 손기정재단,서울시장,의장 등의 짧은 응원으로 풀부터 출발...어제 보다 덜 추웠으나, 이대로 진행하기로 한다. 약간 흥분되고 긴장된 느낌으로 5키로 가양대교를 올라서니 여의도쪽으로 한강뷰를 한눈에 감상하면서...이 넓은 도로를 점령한 뿌듯함에 기분이 상쾌했으나, 다리는 무겁기 한량없다. 선두는 젊음의 타잔처럼 잘도 뛰어 온다. 벌써 첫 번째 반환하여 오고 있는 모습이 나에게도 신선한 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있다. 제1반환 이후, 5키로와 10키로 개미군단과 겹치면서 도저히 페이스 맞추어 뛸 수 없었다. 심지어 어린이 선수들도 부모 손잡고 아주 많았다. 어찌어찌 헤쳐나가 풀 주자들만 있는 한강주변 하늘공원으로 나오니, 맞은편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하프 주자들이 반환 후 골인지점으로 달려 오고 있었다.
하프 주자들과 끝없이 마주하며 월드컵 공원을 돌고 돌아 행주대교를 지나서 고양시까지 진입하여 제2반환에 다다르니 하프 주자들은 보이지 않고 풀코스 주자들과 대면하며, 다시 오던길 유턴하여...25키로 지점에서 멘탈을 부여 잡고....30키로 이후 수시로 시간을 계산하며 7분7초와 사투를 벌인다. 컷오프5시간을 넘기지 말것! 강한 압박에 스트레스가 젖산과 함께 쌓여 다리에 느껴지는 부하와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진다.. 35키로 지나니 키로당 10분에 뛰어도 된다는 계산과 함께 여유로움으로 한결 부드럽게,,,맥두걸님의 말씀..“허리를 곧게 세우고, 무릎을 구부리고 앞으로 전진..뒤꿈치를 가볍게 스치며, 팔을 편하게 스위칭...물고기처럼..”ㅎㅎㅎ말이 그렇지..자세가 엉망으로 흐트러 졋지만, 마지막5키로 남겨 놓고는 전력 질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칭찬 할만 했다. 기록이 참으로 다행스러웁게 체력안배를 잘 했다고 미화한다. 골인하는 순간 나에게 내가 칭찬하면서 기분이 안정되었고 우울증이 강하게 해소되었다.
날씨가 차가우므로 재빨리 물품을 찾아 여분의 따뜻한 옷으로 갈아 입고..만나기로 했던 마마클님들과 노루감독님, 천사님 모두 12월2일 시합후 만나기로 하고 집으로 싱. 연풀뛰었다 하면 놀랄 것 같다. 모두 손기정 응원 열심히 해 주셨는데...
이번 나의 연풀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기록 첫째날 4시간50분41초/둘째날 4시간50분46초), 달린후 첫째날은 이상이 없었는데 둘째날 달린 후 왼쪽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있었고 허벅지가 뻐근하다. 이래가사 3연풀은 택도 없겠다. 4연풀 뛰던 라때가 그립다. 집에 돌아와 샤워후 순대에 편육에 맥주한캔 마시고 푹 자고, KTX로 이동, 경주의 밤바람은 시원했다.
이렇게 주말 이틀의 시간이 지나갔다. 가지 않은 길들은 잘 있을까......내년에도 내가 나를 칭찬하는 일을 만들어야 겠다. 2023.11.18.-19.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