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30. 서른한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1장)
신앙고백
찬송 28 복의 근원 강림하사
기도 임성례 권사(549)
성경말씀 빌립보서 1:18~26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나무 같은 사람
찬송 82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가족방문 김복순 권사 대전 딸, 이정석 집사 아들, 박연순 집사 서울 딸
이순희 집사 딸, 최연희 건사 아들 부부, 정귀자 권사 딸 외, 박희열 집사 가족
찬송 188 만세 반석 열리니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나무 같은 사람 만나면 나도 나무가 되어
그의 곁에 서고 싶다
그가 푸른 이파리로 흔들리면 나도 그의 이파리에 잠시 맺는
이슬이 되고 싶다
그 둥치 땅 위에 세우고
그 잎새 하늘에 피워 놓고도
제 모습 땅속에 감추고 있는
뿌리 같은 사람 만나면
그의 안 보이는 마음속에
놀 같은 방 한 칸 지어
그와 하룻밤 자고 싶다
햇빛 밝은 날 저자에 나가
비둘기처럼 어깨 여린 사람 만나면
수박색 속옷 한 벌 그에게 사주고
그의 버드나무 잎 같은 미소 한번 바라보고 싶다 ~
/ 나무 같은 사람, 이기철
18절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9절,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절,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절,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러게 하고 싶으나
24절,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절,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지루하고 질척거리는 장마가 지나갔습니다.
이제 땡볕에 목이 탑니다.
그래서 그런지 목사님도 지난 한 주 동안
어지럼증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이제 목을 축이고 한숨을 돌려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합니다.
어제는
p부산 p판문점 p평양 십자가 대행진(통일) 일행이 선유도를 방문했습니다.
아침 7시에 서울 출발하여 11시 30분에 선유도에 도착했습니다.
일행 모두가 기쁨이었습니다.
목사님도
우리 박영숙 집사, 박영수 집사, 이정석 집사님과 함께
선유도까지 마중 나갔습니다.
선유도 맛집에서
소머리 만 한 수박 두 개를 사다가 식사 후에 나누어 먹었습니다.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느꼈던 것은
지금도
아직까지도
이렇게 순수하신 신앙인들이 계시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순수하면 이것저것 따지지도 않고
열정적으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18절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ppp 십자가 대행진, 일행은
그렇게 작렬하는 땡볕 아래에서
버스킹을 하고
피켓을 들고 외칩니다.
그것도 벌건 대낮에
누가 알아주기나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기독교 명예가 땅에 떨어져
주워 담지도 못할 만큼 더러워지지 않았습니까?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TV에서 전광훈 목사만 나오면
저 놈의 목사들 때문에 나라 망하겠어!
그러면 밥 먹다 말고 식당에서 뒤쳐 나오기도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
겉치레만 알아주는 요즘 세상에서
장동건처럼 외모가 출중해야 인기 짱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가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됩니다.
대형교회만 교회인줄 압니다.
대형교회 목사만 목사인 것입니다.
이것이 다 헬라적 사고방식입니다.
외모, 겉치레 지상주의입니다.
제가 노숙자들과 함께 먹고 자고 할 때에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서
도망 나온 女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키도 크고 잘생겨서 결혼했더니
남편이 화를 전혀 못 참는 분노 조절 장애자였습니다.
그래 허구한 날 남편에 맞고 사는 게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겉 보고는 모르니 살아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
이때 사도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무슨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반대하는 놈들은 사도바울을 일컬어서
감옥에 있는 놈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비아냥거리지 않았겠습니까?
목사님도 살아오면서
수도 없는 오해와 편견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정치를 한다고 꼴값을 떨고 다녔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을 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9절입니다.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목사님이 요양원을 건축할 때에
어느 장로님 소개로 강보영이란 집사 놈이 찾아와서
익산에 천광교회 교육관도 건축해 주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요양원도 지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고서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기초공사를 하다 말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1년여 건축이 방치되어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무슨 정신이 있었겠습니까?
정말 1년여를 눈물로 살았습니다.
노숙자들과 새벽 예배를 마치면 산속으로 가서 쓰러진 나무를 하다가
통나무 보일러 예배당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래야 노숙자들이 얼어 죽지 않고 살지 않겠습니까?
눈이 많이 내리는 새벽이면 무릎까지 푹푹 빠지면서 나무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나무를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톱질하세! 톱질하세!
주님 도와주소! 주님 도와주소!
이렇게 나무를 하다가 아킬레스건이 끊어졌습니다.
제가 언제 나무를 해 봤겠습니까?
아들 차로 전주 한방병원 응급실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응급실 의사께서 오래갈 겁니다.
그리고 다음 날 주일 예배인데 전혀 발을 딛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아침,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다리를 질질 끌고 교회 단상에 올라섰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쳤더니 끊어진 아킬레스건이 붙어버린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도망간 건축업자 놈은 1원도 대지 않았고
하청업자가 다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청업자 손홍균 사장을 만났습니다.
나무꾼 모습을 한 초라한 목사 모습을 보더니
두말하지도 않고
목사님 제가 지어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4층 선교비전센터가 건립되었습니다.
그때 바로 이 믿음이었습니다.
19절입니다.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전혀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21절입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절,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참 사도바울이 변했어도 이렇게 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울의 삶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죽음 따위가 두려웠겠습니까?
바울의 삶 자체가 복음이었고 선교였습니다.
23절입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러게 하고 싶으나
24절,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서 삶의 의미는 이타적인 삶,
남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있음의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사님은
어제 ppp 십자가 대행진, 일행에게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 박영숙 집사님, 박영수 집사님, 이정석 집사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넓고 넓은 바다 구경을 시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넓은 바닷가에서
맛있는 매운탕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목사님의 오랜 생활 습관입니다.
바다가 왜? 바다이겠습니까?
가장 낮은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무 같은 사람 만나면 나도 나무가 되어
그의 곁에 서고 싶다
그가 푸른 이파리로 흔들리면 나도 그의 이파리에 잠시 맺는
이슬이 되고 싶다
그 둥치 땅 위에 세우고
그 잎새 하늘에 피워 놓고도
제 모습 땅속에 감추고 있는
뿌리 같은 사람 만나면
그의 안 보이는 마음속에
놀 같은 방 한 칸 지어
그와 하룻밤 자고 싶다
햇빛 밝은 날 저자에 나가
비둘기처럼 어깨 여린 사람 만나면
수박색 속옷 한 벌 그에게 사주고
그의 버드나무 잎 같은 미소 한번 바라보고 싶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