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이 머무르던 곳 영월 청령포(淸泠浦) #1
2024.11.4(월) 09:40~11:00 약 1시간 20여분 동안 영월 고씨동굴(고씨굴) 문화탐방후
11:00 두번째 일정 장소인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로 이동한다.
청령포(淸泠浦) 남쪽은 기암절벽으로 막혀 있고 동.북.서쪽은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곡류하고 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특수한 지형이다.
또한 이곳은 1457년(세조 3) 세조(世祖)에 의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의 유배지로
그 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처소를 영월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기기 전까지 단종이 머물던 곳이다.
청령포는 영월의 서강 건너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은 육육봉이 험준한 층암절벽으로 솟아 있고 주위에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마치 섬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내륙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이 유형(流刑)의 땅은 배를 타고 서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곳이다.
바로 1457년(세조 3)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던 청령포다.
청령포는 서강이 굽이쳐 흐르면서 만들어진 요새와 같은 곳이다.
말굽처럼 휘돌아 나가는 서강의 물줄기는 오랜 세월 동안 산을 깎아 동쪽, 남쪽, 북쪽이 모두 강물로 감싸인 아주 특이한 지형을 만들었다.
슬픈 역사를 지닌 서강의 청령포는 처연하리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청령포로 들어가는 나루에서 바라보면 푸른 강물로 둘러싸인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물 건너로는 깨끗한 자갈과 흰 모래밭이 강굽이를 따라 펼쳐지고 위로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가로로 길게 조성되어 푸르른 빛을 발하고 있다.
솔숲 뒤로는 험준한 지세의 육육봉이 기암괴석으로 배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비경을 보여준다.
청령포에는 단종어가, 단묘유지비, 노산대, 망향탑, 금표비 등 단종과 관련된 여러 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단종어가는 소나무 숲과 연접하여 건립되어 있다.
2004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기록을 토대로 하여 당시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내부에는 인형으로 단종이 만들어져 있어 역사적 장소성을 잘 보여준다.
마당에는 1763년(영조 39) 영조의 친필을 각자하여 세운 단묘유지비가 서 있다.
높이 162cm의 크기로 화강암 비좌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웠다.
비석의 전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단종이 청령포에 살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1457년 여름에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잠기고 말았다.
그래서 단종은 두어 달 만에 영월부사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는데 10월에 이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았다.
청령포 강 건너 나루 옆에는 단종의 유배길과 사형길에 금부도사로 왔던 왕방연의 시비가 서 있다.
그는 왕명을 수행하는 관리였기 때문에 단종에게 내려진 형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은 한없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왕방연의 심정을 담은 그의 시 〈회단종이작시조(懷端宗而作時調)〉는 비석에 이렇게 남아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 千里遠遠道
고운님 여의옵고 / 美人別離秋
내 마음 둘 데 없어 / 此心未所着
냇가에 앉았으니 / 下馬臨川流
저 물도 내 안과 같아서/ 川流亦如我
울면서 밤길을 가더라 /鳴咽去不休
가수 심수경씨가 부른 영월군민의 애창곡 '두견새 우는 청령포' 노래비
왕관을 벗어놓고 영월땅이 웬말이냐
두견새 벗을 삼아 슬픈 노래 부르며
한양 천리 바라보며 원한으로 삼년 세월
아, 애달픈 어린 임금 장릉에 잠들었네.`
단종에게 머루를 올리는 추익한
멍멍이 포토존
17세 단종과 정순왕후의 사랑 - 천상 재회,
정순왕후는 82세에 돌아가셨다고 하니 더 슬픈 마음이 든다.
단종은 어린 시절 자기를 업어주던 할아버지 세종의 인자한 모습과 집현전 학사들에게 세자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요절한 아버지 문종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을 낳고 3일 만에 돌아가신 어머니, 왕위 회복을 위해 충정을 다한 사육신의 죽음,
그리고 생이별한 아내 정순왕후의 비통한 모습이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 어른거렸다.
어린 나이에 육지 속의 고도 청령포로 유배된 단종은 한없는 슬픔에 잠겼다.
영월의 서강 건너에 위치한 청령포의 서쪽은 육육봉이 험준한 층암절벽으로 솟아 있고 주위에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마치 섬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내륙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이 유형(流刑)의 땅은 배를 타고 서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곳이다.
바로 1457년(세조 3)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던 청령포다.
청령포 전망대
청령포 관람료
성인 3,000원, 청소년/군인 2,500원, 경로 1,000원
배타는 곳은 매표소 바로 아래에[ 있다.
국가지질공원으로 서강이라는 하천이 곡류로 발달하여 말발굽 모양의 물길이 지나가는 특성이 있다.
<영월 청령포를 설명하는 동판>
울창한 송림과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육지 속의 작은 섬으로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2008년 국가지정 명승 제 5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6대 왕으로 15세 때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17세에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 암벽이 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섬이다.
청령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한다.
배는 타는데 3분, 건너는데 1분, 내리는데 1분, 5분 정도 걸린 듯 하다.
전망대, 망향탑, 노산대, 단종어소, 관음송, 금표비의 청령포 안내도
아름다운 숲, 청령포, 종합안내도가 서 있다.
이곳은 세조3년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의 유배지로 유배되던 해 여름 홍수가 염려되어 처소를 영월객사인 관풍헌으로 옮기기 전까지 단종이 머물던 곳이다.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망향탑 돌무더기 등 슬픈 역사가 남아있다.
영조가 금표비를 세웠고, 단묘재본부시유지 라는 비문을 써서 단종이 살던 집터에 비와 비각을 세워 기렸다고 한다.
단종어소, 단묘재본부시유지비, 금표비, 관음송, 노산대, 망향탑 등을 안내하고 있고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단묘재본부시유지 북쪽에 있는 소나무 숲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금표비
영조 2년(1726)에 세워진 것으로 청령포의 동서 방향으로 300척, 남북으로는 490척 안에서 소나무의 벌목을 금하고
퇴적된 흙을 파가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