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다양한 군상의 행복한 포옹으로 시작하는 영화 `러브액츄얼리'. 비록 영화에서처럼 따뜻하게 안아줄 사람이 없었지만 히드로 공항에 첫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38일간의 유럽 여행이 시작됐다.
지난 6월23~7월30일 영국·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스위스·오스트리아·체코·독일 유럽 8개국을 혼자 여행하고 돌아온 22살짜리 여자아이의 제멋대로 유럽여행기.
영국편 - 여유로운 유럽의 모습, 런던의 공원과 광장
빨간 이층버스, 중절모 신사, 변덕 심한 날씨, 타워브리지의 야경, 버버리 그리고 해리포터까지. 이외에도 `영국'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무수히 많다. 캠브리지에 갔던 하루를 제외하고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4일 동안 영국 런던에 머무르면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광경은 런던의 공원과 광장이다.
대부분의 배낭족이 빠듯?여행일정 때문에 각도시의 주요 명소만 찾아다니기도 벅찬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진다면 숨어있는 유럽 곳곳의 공원과 광장에서 또 다른 유럽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런던 중심부 대표적인 공원으로 하이드 파크, 그린 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 등이 있다. 런던의 주요 명소를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시내 곳곳에 위치한 공원과 마주할 수 있다.
영국 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버킹엄 궁전 앞에서 펼쳐지는 근위병 교대식. 매일 오전 11시쯤에 시작하는 근위병 교대식을 보고나서 버킹엄 궁전에 인접해 있는 그린파크나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들러보자. 그곳에서 느끼는 조용하고 나른한 오후의 느낌은 유럽 여행의 시작을 한층 더 여유있게 할 것이다.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공원 곳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런던 시민들을 보고 있자니 주말이나 특정 휴일에만 붐비는 서울 시내의 공원이 떠오른다. 특히 공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양복 입은 샐러리맨의 모습에서 같은 시각 일터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한국의 아버지들 모습이 오버랩돼 서글퍼지기도 한다. 비단 경제 선진국으로서 유럽의 모습뿐만 아니라 한낮의 공원에서 발견되는 여유로운 유럽의 모습 또한 앞으로 우리가 닮아야 할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유럽의 광장은 공원과 달리 더 동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과 함께 유럽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특히 유명 작가의 최고 작품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런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별다른 수고 없이 내셔널 갤러리 앞에 확트인 트라팔가 광장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내셔널 갤러리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계단에 앉아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사람보다 더 많은 비둘기의 움직임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피카딜리 서커스는 가운데 놓인 에로스 동상을 중심으로 항상 수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우리나라의 명동 같은 곳이다. 특히 피카딜리 서커스의 상징인 에로스 동상의 뒤편으로 보이는 우리나라 삼성의 거대 광고판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때마침 피카딜리 서커스를 갔던 6월 26일은 아테네 올림픽 성화가 런던에 도착하는 날로 그곳에 모인 런던 시민들과 함께 올림픽 성화의 런던 도착을 환영하며 한층 더 고조된 분위기의 피카딜리 서커스를 만끽했다.
피카딜리 서커스에서는 곳곳에서 펼쳐지는 길거리 공연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금전의 여유가 있다면 근처 레스터 스퀘어에서 세계적 수준의 런던 뮤지컬을 관람하는 것도 좋다. 레스터 스퀘어에서 본 뮤지컬 `맘마미아'와 `오페라의 유령'의 감동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프랑스편 -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하는 여행, 오베르 쉬르 우아즈
유럽여행 후 가진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묘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럽 국가에 관한 관심도가 단연 프랑스 그 중에서도 파리에 집중된다는 것.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그 원인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파리의 상징 에펠탑과 샹젤리제 거리, 파리지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소르본 대학 주변의 노천 까페, 문화대국 프랑스의 자존심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등 파리는 굳이 드라마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다.
그러나 파리의 신데렐라를 꿈꾸는 그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정작 나의 마음을 빼앗은 곳은 따로 있다. 파리의 화려함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파리 북쪽 근교의 조용한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가 바로 그 곳이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반나절이면 주요 볼거리를 다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마을이다. 특히 파리와 달리 북적이는 관광객이 적어 조용하고 평온한 프랑스 시골 마을 모습 그대로를 엿볼 수 있다.
또한 고흐를 비롯해 세잔, 도비니 등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이 작품 활동을 한 곳으로 미술에 관심이 많은 여행객이 찾는 곳이다. 고흐가 권총 자살로 불꽃같은 생을 마감한 곳으로도 유명한 이 곳은 그의 후기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를 그대로 만날 수 있어 고흐 애호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고흐의 작품 속 배경이 됐던 오베르 시청, 오베르 교회 등에는 그 앞에 실제 고흐 작품이 간판으로 세워져 있다. 작품과 실제 배경을 번갈아 보며 잠시 동안 고흐의 작품세계에 빠진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만큼 조용하다.
고흐의 마嗤?작품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그려진 장소이자 그가 권총 자살을 한 비극의 장소이기도 한 언덕 위의 밀밭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단연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때마침 부는 바람으로 물결치는 밀밭을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고흐가 당긴 권총 방아쇠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밀밭 맞은 편 공동묘지에는 우애가 남달랐던 동생 테오의 무덤과 고흐의 무덤이 나란히 안치돼 있다. 빈곤과 광기로 번민하던 고흐의 37년 간의 외로운 삶이 떠올라 한없이 숙연해지는 순간이다. 두 송이의 꽃을 들고 두 형제의 무덤 앞에서 오래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던 노부인의 모습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스페인편 - 세계인이 하나되는 정열의 소몰이, 팜플로냐 산 페르민 축제
`축제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스페인에는 200여개의 크고 작은 축제들이 많다. 매년 7월 6일부터 14일까지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열리는 산 페르민 축제 역시 그 중 하나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지 사흘째 되는 7월 7일. 풍부한 감수성과 정열로 뭉친 스페인 사람과 하나 되고자 팜플로냐행 야간 기차에 몸을 실었다.
팜플로냐 기차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 30분. 전날 축제를 즐기고 기차역 가득 노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산페르민 축제 기간에는 남녀노소 현지인, 관광객 할 것 없이 흰색 옷을 입고 목과 허리에 빨간 손수건과 띠를 두른다.
소몰이 축제라고도 불리는 축제는 13세기 팜플로냐의 수호성 산 페르민을 기리기 위해 시작돼 지금까지 매년 축제기간 동안 전 세계 50만명의 관광객을 팜플로냐로 불러 모으고 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축제 기간 중 매일 아침 8시부터 시작되는 소몰이다. 시내 한복판에서부터 투우가 열리는 경기장까지 축제 참가자들과 십여 마리의 소들이 뒤엉켜 정신없이 달린다.
소보다 빨리 달릴 자신이 없어 일찌감치 투우장 관중석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8시를 조금 넘기자 저만치서부터 들려오는 함성소리와 덩달아 커지는 관중석의 함성이 마음을 흥분시킨다. 드디어 시내 중심에서부터 정신없이 달려온 소들과 수백명의 사람들이 투우장을 가득 메우고 축제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이후 1시간 가량 투우장 안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은 마치 투우사라도 된 듯 소들을 자극하며 소들과 뒤엉켜 쫓고 쫓기며 축제를 즐긴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축제에 동화된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도중 한 사람이 달려오는 소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기절한 채 들것에 실려 나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관중석의 우려의 목소리도 잠시. 언제 사고가 있었냐는 듯 투우장 내에 소와 인간의 쫓고 쫓기는 광경은 계속된다.
해마다 많은 부상자를 내기 때문에 축제에 대한 경멸과 우려의 목소리도 크지만 산 페르민 축제는 여전히 스페인 최고의 축제로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투우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관중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 축제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풍부한 감수성과 정열로 뭉친 스페인 사람들과 스페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숙명여대 명예기자 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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