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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1 농성 259일차 이어말하기
영상 보기 : https://www.youtube.com/watch?v=eTwIhgxj_L4&index=35&list=PL68l6l0ykxTXlpDY1-wm7S4KrudfG9ydu
손님: 수습노무사 모임 노동자의 벗 15기
△김유경(사회) △김명성 △이이진아 △신정인 △이근탁
김유경: 수습 노무사 모임인 노동자의 벗 15기입니다. 지난 3월부터 반올림 농성장에 왔습니다. 6월 말이 되면 저희는 수습이 끝나고 정식 노무사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와 함께 ‘노동자의 벗’ 모임도 공식적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번 이어말하기에서는 반올림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노벗 활동이 끝나더라도 반올림에 잊지 않고 들르겠다는 다짐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편하게 나눠보겠습니다.
반올림 활동에 15기 노벗 회원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30명에 가까운 노벗이 농성장에 와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솟대를 제작했습니다. 고무신 화분에 꽃도 심었고요. 소리소문 없이 와서 주무시고 간 분들이 있더군요. 반올림 농성장은 노벗에게 굉장히 뜻깊은 장소입니다.
3월 초 고 황유미씨 추모제가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후엔 자연스럽게 농성장에 많이 들러줬다. 노무사 직업 특성상 반올림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중에도 노무사 되기 전에는 반올림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노벗을 통해 반올림을 알게 된 신정인 노무사, 반올림 농성장에 와서 느낀 점 말씀해주시겠어요?
신정인: 노동조합에 관심이 많아서 그 쪽 프로그램을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반올림은 산재 관련 운동을 하고 있죠. 산재에 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어요. 고 황유미씨 추모제에 왔다간 뒤로 ‘먼지 없는 방’, ‘사람냄새’를 읽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조금 더 알게 됐습니다.
◆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김유경: 저희가 반올림에 와서 많은 것들을 느꼈지만, 3월 초에 고 황유미 추모제가 가장 컸죠. 추모제 끝나고 나서 삼성본관 한 바퀴 돌면서 삼성반도체·LCD공장에서 일했던 분들의 이름을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제 바로 앞에 앉아 있던 김명성 노무사가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못 들더라고요. 엄청 울고 있더라고요.
김명성: 9주기 추모제였죠. 잘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런 가슴 아픈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하는 책임감도 느꼈어요. 눈물이 터진 지점은 세월호 유가족 합창단의 공연이었습니다. 너무 담담하게 노래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모습에서 아픔을 느꼈습니다.
연대는 공감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유가족 합창단원들께서 입고 오신 후드티에 보면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어요. 그 문구를 보고 눈물샘이 터져서 많이 울었어요. 어린 자녀를 잃은 슬픔을 가지신 분들이 여기에 와서 연대해주시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꼈고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사회: 피켓 들고 서초사옥을 돌 때는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요?
김명성: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과 한 마디와 제대로 된 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너무나 큰 건물이 우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다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저들에게 우리의 외침이 제대로 들렸을까요? 주기적으로 끊임없이 요구를 하다보면 언젠가 우리의 말도 저기 계신 분들께 잘 전해지지 않을까요?
◆ “강남 5성급 호텔이 정말 5성급호텔인 줄 알았다”
김유경: 많은 분들이 우셨죠. 세월호 유가족분들도 함께 울어 주셨고요.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공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세월호 유가족과 반올림 유가족,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 비슷한 슬픔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추모제 왔다가 농성장에서 매일 밤을 지새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희 중에도 자발적으로 1박2일 농성에 참여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노벗 동기들 중엔 강남 5성급 호텔이라는 말이 진짜 5성급 호텔인지 알고 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이진아 노무사가 그랬습니다.
이진아: 강남 5성급 호텔에서 묵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해서 곧바로 가겠다고 말을 했죠. 그랬는데 농성장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내뱉은 말을 지키자는 마음으로 김명성 노무사와 함께 와서 이종란 노무사님과 한 밤을 지키게 됐어요.
반올림은 사실 또하나의 약속에서 접하고 쭉 지켜봐온 단체였어요. 하지만 반올림 활동을 일일이 다 알지는 못했죠. 추모식 당일 처음으로 가장 가까이에 와서 이종란 노무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간 싸움에 대해 알게 됐어요.
잠을 청하는데, 힘들더라고요. ‘바닥에서 자보니 울림이 심하구나, 지나가는 차 소리가 엄청 크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큰 것을 위해 싸우더라도 사실 당장 맞서야 하는 건 사소한 순간 순간이라는 점을 알게 됐어요. 시끄러움, 귀찮음의 싸움이더군요.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와중에 뜬금없이 송곳을 꺼내 읽는 명성 오빠, 곤히 주무시는 김유경 노무사님. 연대는 순간순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거라는 점을 배웠어요.
◆ 올 여름 농성장 첫 수박의 추억
사회: 강남 5성급 호텔에서 저도 1박을 해봤어요. 그런데 최근 10번 출구 앞에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죠. 농성하는 분들이 걱정됐어요. 누군가 해코지하거나 술 취한 분들이 갑자기 들이닥치지 않을까하는 고민도 많았어요. 밤새 잠이 안 왔는데, 지금 벌써 259일째 농성을 하고 있고요. 걱정되는 부분은 더운 것도 덥지만, 장마도 오고 그 이후에 태풍이 오는 여름 날씨가 걱정됩니다.
신정인 노무사와 함께 더운 날 큰 수박을 사서 번개 방문을 한 적이 있어요. 들고 온 이상곤 노무사도 이 자리에 계십니다. 그날 느낌 어떠셨나요? 저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농성장 안에 수박 향이 가득 차면서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받았어요.
신정인: 오성급 호텔 숙박을 하지 못했는데, 숙박 하루와 버금가는 수박이었나요? 참가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안 났어요. 뭔가 알고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불쑥 찾아가는 건 그렇지 않았나 싶네요. 그날이 엄청 더웠던 날이었어요. 천막에 딱 들어가는 순간 덥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본격적으로 무더위 시작되기 전이었는데도 참 더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지내실는지 걱정이 앞섰어요. 계시던 분들이 올해 첫 수박이라고 하셔서, 사실 수박은 쉽게 먹을 수 있는 건데 너무 좋아해주시니까 그 모습이 더 감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황유미 씨 판결문을 나눠 읽었다”
김유경: 노벗이 10명 정도 황유미 판결문을 나눠서 다 한 번씩 읽어봤어요. 소장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이게 한 줄의 판결문이지만 이걸 얻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싸움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반지모 세미나에 참석한 분 가운데 가장 열심히 참여하신 김대현 노무사. 발제했을 때 느낀 점이 인상 깊었는데, 자리로 한 번 모셔보겠습니다.
김대현: 피사체가 되는 걸 굉장히 싫어해서요.(^^) 그 사건만 가지고 한 얘기는 아니고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법원이나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도 그날 소감에 양념이 됐습니다. 판결문 내용 자체도 당사자 분들이나 관심 있게 바라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법관이 한 고민의 무게가 떨어져 보였어요. 당사자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반올림에서 주로 다루는 게 화학물질이죠. 쟁점은 그게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겠고요. 그런 것들을 깊게 고려하지 않은 상태로 보였습니다. 법원이 미웠고, 삼성이 미웠어요. 잘났고 떳떳하고 깨끗하면 속 시원하게 자료 다 공개하면 되지 않을까요? 사법제도까지 끌고 들어가서 할 필요 없지 않을까요?. 결국은 ‘구라’치느라 바빠서 이렇게 된 것 같아요.
김유경: 15기 노벗에서 김대헌 노무사는 직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농담이고요 역학조사 담당입니다. 역학조사가 무성의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어요. 저희는 불만스런 부분도 많았지만 판결문 사이사이에 반올림이 주장하는 바를 인정해주는 문장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려고 노력했어요. 이 지점에서 법을 가지고 싸우는 것 말고도 실천적으로 할 일이 많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 소소한 일상의 변화가 농성·연대·투쟁이었다
김명성: 따사로운 봄날. 꼬마숙녀. 카메라 좋아하는 꼬마. 솟대 만들기, 고무신 화분 만들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걸 하면서 좋은 날씨에 삭막한 빌딩 숲 속에서 저희만의 소풍을 온 것 같았어요. 앉아서 도시락 먹고 협업하면서 만들고 물주고 심으면서 우리가 하는 일들이 농성·연대·투쟁을 비롯해서 표현이 과격해서 그렇지 일상생활의 소소한 부분을 변화시키고 찾는 과정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날은 너무 좋은 기분. 너무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었어요.
김유경: 고무신 화분에 흙이 얼마 안 되는데 잘 자라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이 화분들이 농성장에서 농성하는 분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 이후에 강남역 8번 출구 지날 때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와서 사진 찍고 얘기도 하고 음료수도 한잔 마시고 간 분들이 많더라고요.
공교롭게 수습 기간에 반올림 왔다갔다하는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산재 사고가 굉장히 많이 일어났어요. 메탄올 실명사건부터 시작해서 스티로폼 파쇄기 압착 사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있었죠. 그런 일들 있을 때 추모제 현장에 가고 그랬는데 과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반올림에서 싸우고 있는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산재 피해자 역시 저희가 보기에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었고요. 밝혀지지 않은 죽음도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산재 관련해서 고민할 수 있는 단초를 반올림에서 제공했어요.
신정인: 삼성하면 반올림, 삼성 직업병 피해자가 이제 먼저 떠오르는데요, 8년 전 어느 날 뉴스, 언론 매체에서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당시만 해도 기업이 이미지 광고를 많이 하던 시절이었죠. ‘최첨단 반도체, 첨단 산업, IT’가 키워드로 홍보영상에는 방진복을 입은 한 분이 반도체 칩을 끌어올리는 장면이 나왔어요. 전자동인 줄 알았는데 거기서 일한 사람이 죽어나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광고에 혹해서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 때문에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었어요.
노무사가 되고 나서 한 번 더 관심을 갖고 봤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문제에 대해 보도되는 것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노무사 업무 영역에 속해 있으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니까 조금 더 현장에서 직접 참여해야 하는 게 기본적인 것 같습니다.
이진아: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경비 서시는 분을 보면서 저분은 자기가 하는 일에서 어떤 보람을 느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돈이 있는 사람들은 왜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일을 하게 만들까라는 의문도 생겼고요. 오늘 선배 노무사의 페이스북에서 ‘노동자의 자살은 산재입니다’라는 문구를 봤어요.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이나 자살로 생을 마감하죠. 이런 것들이 사회적 타살로 불리지만 노동자의 산재로 구분되지는 못하고 있어요. 이 지점에서도 제 역할을 하고 싶고요,
반지모 세미나 때 이종란 노무사님 얘기가 기억에 남아요. 실제로 황유미 씨의 작업 환경에서 나온 수치들이 통계적으로 위험한 수치까지 올라오진 않았죠. 그래서 질문을 했어요. “의미 없는 수치 아닌가요?” 했더니 “위험하지 않은 수치지만 위험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고 화학물질을 작업환경에서 쓸 때 위험하지 않다고 판명이 난 물질을 사용해야지 위험한지 아닌지 모르는 물질을 쓰는 것 자체가 옳지 않은 것 아닐까요?”라고 하시더라고요. 노동자의 작업환경에 인간다움을 불어넣는 일을 밖에서 계속 주장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명성: 저는 사후문제보다는 산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초적으로 예방하는 산업 안전에 대한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산업재해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근로자의 질병은 직업병이고 근로자의 사망은 산재다’라는 말이 있죠. 근로자가 사업장에서 근로를 하다가 얻는 질병은 업무상 질병이고 근로자 사망은 산재로 봐야 하잖아요. 산재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것보다 근로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사업주의 역할이라고 봐요. 전체적인 산업 전반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구의역 사건만 봐도 어린 친구가 사망한 사건을 가지고 잘잘못을 따지고 있어요.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구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인식 자체의 변화가 먼저 아닌가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김유경: 방금 오신 이근탁 노무사님, 1박 농성하면서 이종란 노무사님과 얘기 많이 나누시고 강남역 8번 출구 앞 오가는 분들에게 선전전도 열심히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느낀 점 있으면 얘기해주시고 삼성을 향한 일침, ‘정신차리라’는 얘기까지 포함해서 한 마디 해주시겠어요?
이근탁: 강남역 가끔씩 지나오면서 삼성전자 건물을 본 적은 많았어요. 그런데 본관 앞에 이런 천막이 있고 사람들이 이곳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농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노무사 된 뒤에 알게 됐어요. 뒤늦게 알아서 아쉽기도 하고 농성장에 처음 방문하게 돼서 숙박까지 하게 됐는데, 모든 게 처음이었습니다. 신기했어요.
다음 날 선전전 할 때는 저도 저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던 시절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목소리 내는 것에 대해서 조금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어요.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고 아무 관심 없고 어떤 분들은 얼마 안 지나가서 버리는 분들도 있었고요. 그런 걸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이 됐구나’라는 자부심을 느꼈고요. 삼성에 하고픈 말은 많지만 험한 말까지는 못하겠고요. 사람이 살면서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있을 수 있는데, 좀 깨끗한 돈을 벌었으면 좋겠어요. 기업 하면서 항상 착하게만 살 수는 없겠지만, 남들에게 떳떳하게 돈 버는 기업이 좋은 기업 아닐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 기업은 머지않아 망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망하라고는 저 혼자 열심히 빌도록 하겠습니다.
사회: 15기 노벗은 앞으로 노무사 된 뒤에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반올림 활동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힘을 보태도록 하겠다. 오늘 참여해준 모든 분들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반올림 농성장 들리겠다는 약속 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