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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탄 창현이
유 여 촌
비오는 날이었습니다. 창현이는 날비를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눈앞을 많은 버스가 지나갔지만 창현이가 기다리는 대신동으로 가는 버스는 냉
큼 나타나지 않았읍니다. 이마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닦으며 사람들 틈에 끼어
있는 창현이 앞으로 시골 옷차림의 한 할아버지가 우산을 받쳐들고 다가오셨읍니다. 정말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읍니다. 할아버지의 우산 속에 큼직한 고무풍선 한 개가 떠 있잖아요. 창현이뿐 아니라 여러 사람의 눈이 그 고무풍선에 쏠렸지만 할아버지는 태연하였읍니다.
창현이는 풍선을 발견한 순간 할아버지가 풍선을 달고 있는 참뜻을 모르겠지
만 어쩐지 풍선 할아버지에게 친근감을 느꼈읍니다.
--할아버지께 한차례 말이라도 건네봤으면!
그런 생각을 하자 이제까지 답답하기만 했던 창현이의 가슴이 조금 후련해졌
읍니다.
그러나 창현이의 그런 마음의 변화와는 달리 네거리의 풍경이 차츰 정말 볼품없이 우중충해왔읍니다. 창현이는 거리의 풍경이 그렇게 어두워진 것은 날씨 때문이란 생각을 했읍니다. 구질구질한 장마 날씨가 여러 날 계속되었으니 사람의 마음씨도 거리의 모습도 다 그럴싸 싶은 것입니다. 평소 같으면 검붉기만 한 KBS방송국의 건물도 오늘 따라 완전히 비안개 속에 묻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뿐만도 아니었읍니다. 낡아빠진 대구 역사의 건물 꼭대기에 달려 있는 벽시계도 어느새 그렇게 멍청해졌는지 제대로 시간을 지키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런 장마 날씨의 모습은 풍선을 우산 속에 달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습니다.
칠경 칠경 칠경---
엿장수 아저씨가 빗속을 가위소리를 내며 지나갑니다. 엿판 위에는 번쩍거리는 비닐이 푹 덮어씌워져 있읍니다. 창현이는 엿장수 아저씨의 이마를 타고 내
리는 빗물을 바라봤읍니다. 그러는 동안 엿장수 아저씨의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우산에 가린 풍선 할아버지의 푹 불거진 머리의 뒤통수가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겹쳐 얼른거립니다.
창현이는 그럴수록 사람들 사이를 헤쳤읍니다. 몇 발자국 앞으로 할아버지 가까이 다가섰읍니다. 그때 갑자기 할아버지의 뒤통수가 오색찬란한 풍선으로 변해버린 것 같았읍니다. 순간 오색 풍선 사이로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나타났읍니다. 그 눈동자가 비안개 속에 어리어 잘은 안 보이지만 어쩐지 수심에 가복 차 보였읍니다.
“……?”
창현이는 예상 밖의 할아버지의 표정에 조금 실망이 되었읍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할아버지를 지켜보고 싶지 않았읍니다.
창현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읍니다.
다시 이마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문질렀읍니다.
그 빗물 속에 엿장수의 가위소리가 그냥 남아 있는 것 같았읍니다.
사라져가는 엿장수 가위소리 사이로 KBS방송국이 지그시 눈을 감으며 땅 속
로 기어들어가듯 높이가 낮아지기 시작했읍니다. 그 언저리를 짙게 둘러싸고 있던 비안개도 낮아지는 방송국 건물 사이로 무럭무럭 말려들어갑니다.
“풍선 할아버지요!”
창현이는 아무리 주위의 풍경이 볼품없이 구질구질해졌지만 풍선 할아버지를 놓치고 싶지 않았읍니다. 풍선 할아버지가 창현이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창현이 쪽으로 얼굴을 돌렸읍니다. 그때 비로소 창현이는 풍선 할아버지의 어두운 표정은 장판에서 채소 장수를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라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어머니는 지금쯤 나를 몹시 기다리고 계실 텐데!
창현이의 가슴이 확 달아을랐읍니다. 어머니께 빨리 우산을 갖다드려야 합니다. 어머니를 날비를 맞으시게 해놓고는 할 일 없이 풍선 할아버지의 뒤만 쫓고 있는 자기의 짓이 얼마나 어머니께 죄송스런 노릇인지 후회가 되었읍니다. 그러나 대신동으로 가는 버스는 냉큼 나타나지 않았읍니다. 대신동 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창현이뿐만도 아니었읍니다. 웅성웅성 모두 몰려서서 멋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마침내 할아버지의 풍선이 되레 사람의 머리 위에 붕 떠을랐읍니다.
“앗, 저 풍션!”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풍선에 쏠렸읍니다. 더욱 놀라운 일이 생겼읍니다.
할아버지가 풍선에 매달렸읍니다. 창현이는 풍선의 끈을 잡고 공중에 떠 있는 할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읍니다. 어쩐지 풍선 할아버지를
놓치기나 하면 평소 건강이 나쁘신 어머니를 영영 만나볼 수 없다는 생각이 앞을 가렸읍니다. 자기도 풍선의 끈만 잡으면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하늘 높이 떠오를 것이 뻔합니다. 이래저래 마음을 가눌 수 없게 된 창현이는 새삼 사방을 돌아봤읍니다. 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의 표정은 너무나 담담합니다. 풍선에 매달려 할아버지가 하늘을 날으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입니다.
스르르 바람이 일기 시작했읍니다. 오색 풍선이 바람을 받고 빙글빙글 돌기 시l작했읍니다. 풍선이 돌자 할아버지도 우산대를 꽁 잡고 빙글빙글 돌았읍니다.
조금 후 풍선에 우주정거장이란 표식이 뚜렷하게 수놓아 졌읍니다. 우주정거장의 표식이 차츰 푸른 빛깔로 물들어지자 할아버지의 눈동자도 푸른빛이 되어버렸읍니다. 그 언저리의 풍경도 푸른빛이 되었습니다. 창현이는 자기의 눈동자마저 푸르게 변해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읍니다. 어머니께서 변해버린 자기의 눈동자를 보시기나 하면 퍽으나 실망을 하실 것이 뻔합니다.
-----멀리 떨어져서 구경이나 하자.
창현이는 사람들 어깨 사이를 파고들었읍니다.
“얘가?”
“왜 이러지?”
귀부인 차림의 한 아주머니가 창현이를 밀쳤읍니다. 그 곁에 서 있던 한 아저씨도 얼굴을 찡그렸읍니다. 비에 젖은 후춤추름한 창현이의 모습이 못마땅한 것이 틀림이 없읍니다.
“잘못했어요, 아줌마.”
창현이는 사과를 했읍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창현이를 본체 만체 했읍니다.
KBS방송국이 비켜서는 창현이를 지켜봤읍니다. 비켜서는 창현이에게 우주정
거장의 풍선을 든 할아버지가 부드러운 눈길을 보냈읍니다.
“……?”
창현이 눈이 크다마졌읍니다.
“앗, 선생님!”
이제까지 풍선 할아버지로만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학교 담임 선생님이 아니 겠어요.
창현이는 미친듯이 담임 선생님 앞으로 달려갔읍니다. 선생님 손을 꽉 잡았읍
니다. 담임 선생님도,
“여기서 창현군을 만나니 반갑군.”
하시며 비에 젖은 창현이의 어깨를 툭툭 쳤읍니다.
하지만, 조금 후 창현이는 담임 선생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읍니다. 5일 동안이나 학교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창현이는 시장에서 건강이 나쁘신 어머니를 도와드렸던 것입니다.
“학교를 쉬어서 죄송해요, 선생님.”
하고, 담임 선생님께 사과를 드리고 싶었지만 어쩐지 말이 입밖에 나오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은 창현이의 그런 눈치를 벌써 알아차리고 계셨읍니다.
그것은 그렇고 담임 선생님이 자기가 보는 앞에서 풍선 할아버지와 같은 우주인으로 변장하신 것은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융니다.
전번 자연시간에 학교 파학관에서 창현이는 동무들과 함게 가을 하늘의 별자리를 공부했읍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마치 자신이 우주인이 되시다시피 창현이들을 모조리 우주여행 열차에 태워놓은 수업을 하신 것입니다.
담임 선생님 앞에 선 창현이가 쩔쩔매고 있는 것과는 달리,
“창현군.”
하고, 담엄 선생님이 참으로 다정스런 음성으로 창현이를 다시 불러주셨읍니다.
“네?”
창현이 대답을 하자,
“이 풍선은 창현이가 가지도록.”
하셨읍니다.
창현이는 어찌나 싶었읍니다. 비내리는 하늘을 담임 선생님과 함께 우주여행을 하는 것도 신나지만 시장에서 어머니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리고 아무리 곤란한 일이 있더라도 남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집이 가난하긴 하지만 학우들의 동정은 받고 싶지 않은 창현이었읍니다. 노트나 연필 따위를 공짜로 얻어쓰고 싶은 창현이가 아니었읍니다. 아버지가 안 계시는 창현이의 가정이지만 장판에서 채소 행상을 하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아무리 곤란한 일이 생겨도 꾹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선생님, 저는 싫어요.”
창현이는 또록하게 담임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읍니다. 순간 비에는 젖었지만
창현이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읍니다.
“사양할 것 없다, 창현군!”
담임 선생님이 사양하는 창현이 손에 우주정거장을 쥐어주셨읍니다.
“저보다 더 불쌍한 동무에게 주셔요. 저는 받지 않겠어요.”
창현이는 이렇게 우주정거장을 거절했읍니다.
“정 그렇다면 할 수 없군.”
담임 선생님이 몹시 낙심한 듯한 표정을 지으셨읍니다.
“창현군, 곧 학교에 나오도록.”
“네.”
담임 선생님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다시금 풍선을 우산에 달고 그곳을 떠나셨읍니다.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담임 선생님이 뒤를 돌아보시며 밝은 표정을 지으셨읍니다. 창현이도 따라서 밝은 얼굴이 되었읍니다. 비에 젖은 손을 높이 들고 쩔레쩔레 흔들어드렸읍니다.
그때서야 기다리던 대신동으로 가는 버스가 와 닿았읍니다.
창현이는 허둥지둥 사람들 틈에 끼어 버스에 올랐읍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읍니다. 육중한 KBS방송국 건물도 버스에 오르겠다는 것입
니다.
“아쿠쿠쿠!”
버스 차장이 기겁을 하고 버스 문에 매달렸읍니다.
“이걸 어쩌지!”
그런 줄을 알자 버스 안의 손님들도 눈이 휘둥그래져서 와글와글 떠들기 시작했읍니다.
--야단났군!
창현이 짐작에도 방송국 건물이 버스에 오르기만 하면 버스는 단번에 찌그러지고 안에 탄 손님들도 큰 봉변을 당할 것이 뻔합니다.
----이럴 때 담임 선생님이 계시기나 했으면.
창현이는 안절부절 눈길을 비에 젖은 하늘 쪽으로 돌렸읍니다.
---방송국 건물을 풍선에 달아버린다면?
창현이가 그런 생각을 하자 버스 안이 조용해졌읍니다. 버스 문이 열려 있어도 방송국 건물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읍니다. 그 대신 풍선 할아버지가 어느새 창현이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읍니다. 풍선 할아버지는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창현이의 눈길을 쫓아 비에 젖은 거리를 내다보고 계셨읍니다.
버스가 움직였읍니다. 차장이 문을 닫으며 방송국 건물을 힐끗 넘겨다 봤읍니다.
“오라잇.”
할아버지의 눈길이 이번에는 버스·안으로 쏠렸읍니다. 마치 셈하듯 손님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창현이는 조금 전부터 풍선 할아버지의 그런 행동을 조섬스레 지켜봤읍니다.
---이상타!
창현이의 눈이 부시었읍니다. 풍선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마치 대신동 네거리 번화가의 금은 보석상의 쇼윈도의 보석반지 빛깔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보고 있는 동안 할아버지의 눈동자의 수와 고무풍선의 수가 무럭무럭 늘어났읍니다.
그 늘어난 눈동자와 고무풍선이 번쩍번쩍 휘황찬란한 쇼윈도의 형광등의 불빛이 되었읍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읍니다. 몇몇 사람들의 웅성대는 말소리가 어렴풋이 창현이의 귓전에 들려왔읍니다.
“얘!”
정신 차려!
“너 이름이 뭐지?”
창현이는 눈을 떴읍나다. 낯선 아저씨가 자기 손을 잡고 있었읍니다.
“김 창현이입니다.”
창현이는 사방을 살펴봤읍니다.
“집은?”
“저의 집요?”
“그래.”
점점 정신이 차려졌읍니다. 눈에 익은 대신동의 금은상이 늘어선 네거리입니다. 창현이는 언제부터인지 그 가게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읍니다.
이마가 축축했읍니다.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읍니다. 비에 젖은 이마이지만 진땀이 번져 있었읍니다. r
“너 허기증이 난 거 아냐?”
한 젊은 아저씨가 창현이에게 물었읍니다.
“아니요.”
창현이의 발음이 비로소 또록해졌읍니다.
“그럼 어째서 기절을 했지?”
“쯧쯧 가없어라. 얼굴이 초지장 같이 파랗군 그래. 영양실조가 틀림없지 뭐야.”
할머니 한분도 곁에서 창현이를 지켜보셨읍니다.
창현이는 좀 창피한 생각이 들었읍니다.
“아니얘요. 그렇찮아요.”
하고, 억지로 피식 웃어 보였읍니다.
조금 후 창현이는 힘을 냈읍니다. 서둘러 집으로 달려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읍니다.
낡아빠진 비닐우산이지만 재빨리 어머니께 갖다드려야 합니다.
비에 젖은 대신동 거리는 어수선하기만 합니다. 사람이고 자동차고 빗속을 미친듯이 지나갑니다.
하지만 창현이는 차근차근 걸어야 했읍니다. 두번 다시 골목길에 쓰러져서는 너무나 어머니께 죄송스런 노릇입니다.
풍선 할아버지의 풍선이 아무리 우주정거장 표식을 달고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일이 있더라도 정신을 똑바로 가져야 합니다. 대학에 다니는 형의 등록금을 마련해 보내는 날 핏기없는 어머니의 얼굴이 활짝 피어오르던 그런 어머니의 얼굴을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싶은 창현이입니다. 그럴수록 창현이는 정신이 또록해 졌읍니 다.
---어서 우산을 갖다드리 자.
그는 주먹 을 꼭 쥐 었읍니 다. 그리고 비 오는 대 신동 거리를 차근차근 걸어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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