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지만 뺨을 스치는 부드러워진 바람결에서 향긋한 봄 내음을 느낄 수 있다. 조금씩 다가오는 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요즘 자유로운 생명력이 느껴지는 봄과 잘 어울리는 파리의 미술관을 소개한다. 바로 낭만주의미술관(Musée de la Vie Romantique)이다.
낭만이라는 용어의 어원은 옛날 골(Gaule, 현재 프랑스 영토) 지방의 공용어이며 교양어로 사용되었던 언어인 roman(프랑스어: 이야기, 소설의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5세기까지 ‘로맨틱(romantic)’이란 단어는 ‘로망어’의 의미와 혼동되어 사용되어 오다 18세기 문학에서 좀 더 넓은 의미로 확대되어 ‘소설처럼’이란 의미로 확대되었고 그 후 ‘고전적’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된 뒤 일반화되었다. 낭만주의란 18세기 중반 유럽에서 계몽주의에 반대하여 발생한 예술사조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낭만주의란 세계나 현실을 이성으로 규정하지 않고 이성만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신비한 정신적 움직임을 일컫는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 유럽에서 유행한 이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와 계몽주의에 반대되는 감성의 해방, 무한에 대한 동경, 질서와 논리에 대한 반항을 추구하였다. 시간적으로는 매력적인 옛 시대를 동경하고 공간적으로는 이국적인 풍토를 그리워하며, 내면적으로는 깊은 명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낭만주의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형식보다는 내용을, 객관적인 것보다는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낭만주의는 문학뿐 아니라 철학, 음악, 미술 등 예술전반에 영향을 미치지만 절제를 잃고 비현실적인 환상의 세계로 치달으면서 낭만주의는 19세기 전반까지밖에 지속되지 못하였다.
낭만주의미술관은 누벨 아텐(Nouvelle Athènes) 지역인 오페라극장과 몽마르트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누벨 아텐은 프랑스혁명 후 부르주아 계급의 부동산 투기가 열풍이던 시기, 납세 구구장이었던 오구스텡(Augustin Lapeyrière)과 건축가 콩스탕탱(Constantin)에 의해 탄생된 예술가들을 위한 지역이었다. 생-조르쥬(Saint-Georges) 지역에 투자한 부동산회사에서 일하던 건축가 콩스탕탱이 오페라극장에 인접하고 수많은 극장들로 가득한 이 지역을 예술인들을 위한 새로운 아테네로 만들고자 했던 이 아이디어는 성공적이었다. 파리 시내 한 가운데에 조성된 이 예술촌은 네오클래식스타일의 저택과 건물, 작업실 등이 지어졌고 낭만주의가 꽃피우던 시기 활동하던 배우, 작가, 음악가, 화가들이 이 지역에 모여들어 자리를 잡고 왕성하게 활동을 하였다. 아리 세페르(Ary Scheffer),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조르쥬 상드(George Sand),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쇼팽(Frederic Chopin), 빅토르 위고(Victor Hugo), 피사로(Pissarro), 고갱(Paul Gauguin) 등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 예술적 교감을 나누었다.
낭만주의미술관은 네덜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화가 아리 세페르(1795-1858)와 그의 조카 르낭(Ernest Renan, 1823-1892)의 작업실이었다. 이 저택은 1983년 그의 후손들이 파리시에 기증하게 되면서 파리에서 빅토르 위고의 집, 발자크의 집과 함께 3대 문인박물관이 되었다. 1830년에 이탈리안 스타일로 지어진 이 저택은 누벨 아텐 지역에서도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집결지였다. 아리 세페르는 매주 금요일마다 자신의 저택을 열고 예술가들을 맞이하였다. 예술가들과 문인들은 이곳에 모여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며 예술가들의 소통의 장소로 이용하였다. 라마르틴(Alphonse de Lamartine)과 리스트(Franz Liszt), 앵그르(Ingres), 로시니(Gioachino Rossini), 디킨즈(Charles Dickens)가 그의 작업실에 자주 드나들곤 했으며 특히 이웃주민이었던 조르쥬 상드와 쇼팽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기 좋아했다. 아리 세페르의 집 바로 앞, 샵탈가 9번지와 11번지 사이에 자리 잡고 있던 판화출판사에서는 반 고흐와 동생인 테오가 점원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조용한 주택가의 큰길가에서 작은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낭만주의미술관은 개인의 집을 전시장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전시장의 느낌보다는 개인이 살던 조용하고 평화로운 주택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미술관 입구의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녹색의 건물외관과 주변의 장미넝쿨 그리고 라일락나무가 조화를 이루어 입구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로맨틱하고도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낭만주의미술관
ㅇ 주소 :16 rue Chaptal, 75009 Paris
ㅇ 웹사이트: http://www.paris.fr/pratique/musees-expos/musee-de-la-vie-romantique/p5851
※ 낭만주의미술관은 파리시에서 운영하여 입장료는 무료이며 단 특별전시실은 유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