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손진은
튤립 축제 외
풀밭,
뛰어가던 토끼의 두 귀가 잡힙니다
파닥이는 제비의 날개도
머릿수건 아낙들 호미, 굽어진 손가락에 의해
얼떨결에
잔디 무리 속에
흰 깃의 제비를 날리면 안되나
하늘의 구름 두어 송이 비치는 눈 가진
토끼를 뛰어놀게 하면 안되나
크낙한 바다가 잠들게 하면
질문들이 떨어진 잔디밭 곳곳
날지 못하는 제비와
뛰지 못하는 토끼의 신음이
포대 속에서 점차 희미해져 간다
허나 토끼 너머엔 토끼가 가득하고
제비 너머엔 제비가 깃을 치는 하늘
이제 곧 군악대 팡파르가 울리고
엄마 손잡은 아이 마음은 공원 분수대처럼 뿜어 오르고
시장市長과 일렬로 선 이들 흐뭇한 미소로 테이프를 끊을 테지만
축제는 깡총하게 다듬어진 잔디 날개 한가운데
노랑 분홍 등불로만 마땅한가요
불쑥불쑥
부신 빛 아래 돋아나는
흰, 보랏빛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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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의 마음-개작
경주군 산내면 우라 골짝
짐승 치는 벗의 산막에서 달포쯤 빈둥거릴 때
내 차지는 해질무렵 비탈,
풀어 논 염소 떼 우리로 몰아오는 일
하루는 뒤쳐진 놈 몇 앞세운 채
좁장한 나무다리 건너다 아뿔싸!
이편에 다 와 가는 이웃집 외론 녀석을 만났다
발밑은 아찔한 여울,
노려보는 고집 센 뿔들의 대치는
저쪽 편이 순순히 등 내주면서
싱겁게 끝났다
몇십 근은 족히 될 몸뚱이들이 조심, 밟고 건너간
제법 평평한 바닥을 내 맨발이 넘는데
한 톨 울음도 내보내지 않기로 작정한
뜨건 바닥의 마음이
내 발바닥에 천둥을 막 쳐 울리면서
고향집 아련한 어머니와 누이들,
여태껏 내 발이 밟아온 바닥의 등이며 눈동자를
불러오는 것이었다
엎드린 염소가 다시 일어나 다릴 건너가는 동안
놀 걸린 저편 능선 그늘 쪽에서
속죄, 속죄
소쩍새 울음 물들어오는 저녁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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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199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저 눈들을 밤의 창이라 부른다』,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외, 저서로는 『시 창작 교육론』, 『현대시의 지평과 맥락』 외 여러 권이 있다. 금복문화상, 시와경계문학상, 대구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했으며 경주대 문창과 교수를 거쳐 현 대구교대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