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대강절 셋째주간 목요일
말씀제목
모든 것을 맡깁니다
성경말씀 출애굽기 2장 3절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
묵상본문
소설 『난주』 에는 가슴 아픈 장면이 여럿 나옵니다. 명문가의 맏딸인 정명련은 17세에 장원급제를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황사영과 결혼하지만, 이후 황사영은 천주교도로 붙잡혀 능지처참되고 가족들은 모두 귀양을 가게 됩니다. 관노비가 되어 얻은 이름이 바로 난입니다.
두 살배기 아들을 등에 업고 제주까지 유배길에 오른 난주는 도중에 들른 추자도에서 어려운 결정을 합니다. 제주로 가면 평생을 관노비로 살아야 하는 아들을 그곳에 두고 가기로 한 것이지요. 난주는 손가락을 깨물어서 나온 피로 잠들어 있는 아이의 앞섶을 열어 '신년, 황경헌' 이라는 글자를 써넣습니다. 그러고는 나오지도 않는 젖을 마지막으로 물리며 기도하듯 중얼거립니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종국에는 흘러간다. 그늘도 음지도 해가 들면 다시 꽃을 피운다. 지금 우리가 이러하다고 본래 이렇고 훗날 이렇겠느냐. 어미와 떨어지거든 하늘이 찢어지도록 울 어라 울어서 네가 살아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네가 산다. 그 울음을 주께서 들으실 것이고 사람의 귀가 들을 것이고 종국에는 인정이 움직일 것이다. 어미는 잊기도 잊으려니와 그리워도 말거라. 사무치는 그리움은 너를 상하게 하니 차라리 그리움을 모르는 것이 나으리라. 극통한 아픔은 이 어미의 가슴에 묻고 피눈물도 어미가 흘릴 것이다. 너는 그저 울고 떼쓰고 입고 먹으며 숱한 세월을 한날같이 아이로 자라거라."
이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여인이 있습니다. 요게벳입니다. 성경에서 단 두 번(출 6:20, 민 26:59) 밖에는 이름을 찾을 수 없는 여인으로, 히브리 노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모세를 낳았을 때에는 바로의 엄명이 떨어진 때였습니다. 늘어나는 히브리인의 수를 중노동으로도 막을 수 없자, 태어나는 아기가 남자아이이면 죽이고 여자아이이면 살리라는 명이 산파들에게 내려집니다. 바로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 산파들의 용기로 모세가 태어났지만 석 달 이상은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갈대 상자를 준비한 요게벳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한 뒤 모세를 담아 나일강에 띄웁니다.
그 순간은 모세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넘실대는 강물과 악어의 입에서 모세를 지키신 분, 애굽 공주의 마음 속에 히브리인의 아기라는 것을 알고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신 분, 내 아들 삼겠다는 마음을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을 때, 그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 모두 맡기는 것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시간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그런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묵상기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할 때임을 알게 하소서.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모든 시간이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