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국제도서전 선정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 40'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
주요 언론사 선정 '2024 올해의 책'
강지나 선생님의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2023년 11월에 나온 이후 1년여간, 다양한 곳에서 주목을 받았다. 조금만 검색해 봐도 수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사실, '가난'은 이제 사람들에게 식상한 주제일 거라 생각했다. '빈곤 포르노'처럼 자극적으로, 때로 감상적으로 가난을 소비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가난을 쉽게 외면할 거라 믿었다.
그래서일까, 처음엔 이 책의 성공이 의아했다. 책을 다 읽었을 때까지도 마음 한구석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강의를 기획하고, 작가를 섭외하고, 실제 강의를 듣고, 마지막으로 북토크를 거치면서 조금씩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12월 18일, 밤 9시. 줌 화면 안에 모인 20여 명의 독자 혹은 등대지기학교 수강생들. 나성훈 공동대표의 사회로 강지나 작가와 온라인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그는 ‘24년차 현직교사’와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사람’, 이 두 가지 정체성으로 본인을 간단히 소개했다.
함께 모인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고, 환영하고, 분위기가 조금 훈훈해졌을 때,
"타인의 힘든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주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이 나왔다. 오랜 시간 가난한 아이들을 만나온 강지나 작가는, 뜻밖에도 '이야기를 듣는 이의 ‘자기보호’'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야기를 내내 들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40분은 듣고 10분을 정리하며 마무리해야 하고, 내담자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매뉴얼을 지킬 때만 더 잘 듣고 지속적으로 도울 수 있다고 했다. 또, 아이들을 돕는 어른에게도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는 곧 '우리 모두 불완전한 존재'라는 뜻으로 다가왔다. 기대하지 못했던 위로가 느껴졌다.
한 청년 교사가 질문을 던졌다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교사로 일하는 자신이 지역아동센터 출신이며,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센터 아이들을 만나 자원봉사를 한다고 했다. 아무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 ‘납쪽이’라 불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물었다. ‘금’을 붙이기가 아깝다고 ‘납’쪽이가 되어불리는 아이들이라니.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계급이 대물림 되는 세상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해야 할지, 꿈을 찾으라 해야 할지, 현재를 즐기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백이자 증언 같은 질문. 무언가 희망이 담긴 이야기를 하지 못하겠다고,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 외에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그리고 자신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묻는 것 같았다.
강지나 작가는 우리가 흔히 '가난'을 생각할 때 갖는 오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난한 조손가정은 아마도 백 년 이상의 시간동안 사회적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지원금을 받아 도박을 하는 이들도 있단다. 그들은 어쩌면 노름꾼들 외에는 접할 이웃이 없을 거라고 했다. 쉽게 판단하고 수치화하여 답을 내리기 전, 한 아이의 삶의 맥락을 전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해줄 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는 대화를 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며 정체성을 갖도록 지원하는 것 역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번 등대지기학교 강의에서 강지나 작가는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제도적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 구조의 변화를 만드는 개인의 마음가짐과 공동체에 관하여도 이야기했다. 그래서일까, 북토크를 마칠 때 즈음 책 한 권, 강의 한 편이 아닌 종합적인 세계관이 완성된 듯 했다. 그는 광장에서 반갑게 만나자며 미소지었다. 따뜻하면서도 힘 있는 인사다.
문득,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끼친 영향력, 청년 교사가 이 캄캄한 밤에 우리 마음에 불을 밝힌 것은 '질문'에서 왔음을 깨달았다. 마치 등대지기학교 1강에서 김민섭 작가가 삶의 끝자락에 선 홍세화 선생님에게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라고 물었듯, 열등감에 빠졌던 구범준 PD(6강)가 스스로에게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라고 물었듯, 물음은 힘이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하자'고 결의한 신소영 대표(3강)의 선언도 떠올랐다. 미래를 기억한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라는 질문을 넘어 '내가 누구일 수 있는지'까지 묻는 것임을. 수강생 모두가 등대지기학교에서 만나는 강의 6편이 밝히는 불빛을 바라보면서 이 질문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각자의 대답을 써 내려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