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게 하신 유다와 베냐민지파
에스라 2장 21절-28절 2024년 5월 12일 주일 오전 말씀지
에스라서는 말씀(복음과 진리)없는 북이스라엘과 말씀이 있건만 교만한 유다의 잘못된 신앙생활로 인해서 바벨론 큰 나라에 사로잡혀가는 포로 생활로 징치하신 후에 50년 만에 고레스 왕을 들어서 고통 중에 깨달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신 역사입니다. 지금도 복음을 통하여 삼위로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1.애굽 같은 세상에서 종처럼 세상에 얽매여 고통스럽게 살게 되고 2.고통 중에 억지로 나왔지만 새벽마다 내려주신 만나를 받지 않으면 광야같은 세상에서 아버지 집을 찾지 못하여 방황하며 영적 기쁨이 없어 고통 중에 불평하며 살게 되고 3.오랜 세월 믿었다 하나 바리새인, 시두개인, 헤롯당처럼 복음으로 영적 생명으로 살아나 진리로 자라지 못하면 결국 괴롬과 고통이 극심한 포로 생활을 한평생 하게 됩니다. (시107편) 아버지되신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여러 가지 고통까지 주신 것은 괴롭게 하사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심입니다. 렘10:18-
이제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성령의 감화로 부르사 고통 중에 나오게 하사 복음이 믿어지게 하사 돌아오게 하시는데 앞선 자 11명과 족장들과 그 후손의 수를 한 명까지 다 나타내주시고 오늘은 베들레헴 사람과 베냐민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신 역사인데 어버이 주일에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은 먼저 나오게 하사 복음이 믿어지게 하신 부모들 중 그 후손과 함께 영적 생활을 하는 귀한 분들을 나타내주시고 그러한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고 부모와 함께 영광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복된가?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1.영의 아버지 하나님 (히12:9) 2.복음의 아비와 어미 (고전4:15, 롬16:3) 3.육신의 부모가 있는데 자녀들은 그 부모를 주안에서 공경함으로 복을 주사 사는 날이 헛되지 않게 하십니다. 엡6:1-
21절 베들레헴 사람이 일백 이십 삼명이요 돌아오게 하신 자들 중에 유다 사람들이 어디서 살다가 포로 되었는지 그 지역까지 나타내주시는데 베들레헴은 ‘떡집’ 이라는 뜻으로 고통 중에 누가 영적 삶을 빨리 회복하느냐? 속에 받아먹은 양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룻기에 나오미의 가정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내려간 것이 영적 양식이 하나도 없는 곳으로 갔다는 것이요 (룻1:1)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간 자가 강도를 만난 것도 생명 양식인 떡을 받지 않고 육을앞세워 세상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요 눅10:30-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오신 것도 그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다 생명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마2:1) 하나님은 왜 이렇게까지 어느 지역에서 살던 자들이 돌아온 것을 일일이 한명까지 기록하게 하였을까요? 성경 전체를 통해서 그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12지파가 있는데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앞장서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은 고통 중에 자신들의 잘못을 크게 깨닫고 겸손한 자세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먼저 조상 유다는 며느리와 관계하여 자식을 낳았고 (창39:24) 베냐민은 사사 시대 때에 11 지파와 싸워서 멸절 위기에 처했던 부끄러운 지파였습니다. 삿21:6-
그러나 포로 생활로 인하여 왜? 택하셨는지? 왜? 성자로 구원하셨고,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두셨는가? 왜? 가죽옷을 두셨는가? 왜? 십자가로 우리들을 구원하셨는가? 를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에는 왕손 스룹바벨(세스바살)이 레위 지파에는 예수아 제사장이 베냐민 지파에는 모르드개가 앞장 서서 족장들을 이끌게 하신 것입니다. 지역은 오늘날 어느 지역 예배당에서 어느 앞선 자를 통하여 복음이 믿어졌는가? 계속해서 얼마나 진리로 자라났는가? 그들은 고통과 괴롬뿐인 영적 포로 생활에서 먼저 놓임 받고 이제 마음껏 풍성한 영의 양식을 받고 마리아처럼 고넬료처럼 루디아처럼 기쁨과 감사로 영적으로 왕노릇 영적 생활을 하는 자들이 된다는 것이요 그들은 생명의 떡이 풍성한 베들레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미5:2-
22절 느도바 사람이 오십 륙명이요 느도바는 유대에 한 지방으로 ‘물방울’ 이라는 뜻입니다. 물은 생수로 그 기쁨을 맛본 자요 포로 생활 중에도 신령한 기쁨을 잃지 않은 자라는 것입니다. 성령 시대에 누구라도 수가성 여인처럼 하나님의 비밀(가죽옷)과 그리스도(성령 충만으로 영광에)의 비밀을 모르면 영적으로 이루신 일을 보지 못함으로 야곱의 우물에서 물깃는 자요 계속 목마를 뿐이요 헛된 신앙생활입니다. 수가성 여인이 만난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이요 비밀인데 영광을 입혀 주실 때에 겸손하게 찬송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골1:27-
느도바는 다윗 때에 30인의 용사가 두 명이나 나온 지방입니다. (삼하23:28) 지금도 나 혼자만 영광길 가는 자들은 용사가 아닙니다. 비록 작은 물방울이나 계속 떨어지면 바위도 뚫듯이 포로 생활 중에도 계속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않은 자들입니다.
23절 아나돗 사람이 일백 이십 팔명이요 이제부터는 베냐민 후손들인데 유다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은 유다는 왕의 후손이라는 교만이 늘 속에 있었지만 베냐민은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얼굴도 보지 못해 더 하나님을 의지한 자요 르호보암 때에 북쪽에 형인 요셉보다도 사랑이 많은 유다와 함께 한 지파가 된 것입니다.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의 작은 마을인데 다윗 때에 용사가 나온 지역입니다. 삼하23:27-
그러나 멸망 전에는 예레미야 선지를 하나님의 선지로 알지 못하여 박해한 지역 사람들입니다. (렘11:21-23) 멸망 후 고통과 괴롬 속에서 그때에 잘못을 깨닫고 회개한 자들입니다. 지금도 영광 길을 앞서가는 자들을 비방하고 핍박하는 자들에게는 가시 채를 뒷 발질 하는 것 같은 더 큰 고통을 주사 깨닫게 하신 사도 바울도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로 태어나게 하신 이유입니다. 빌3:5-
24절 아스마웻 자손이 사십 이명이요 뜻은 ‘죽음은 강하다’ 라는 뜻인데 약하여 늘 죽음을 두려워하던 자들입니다. 오늘도 전혀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준비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임을 아는 자가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깨달은 자들입니다. 히9:27-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처럼 죽음을 생각한다면 날마다 나그네 생활을 할 것인데 아스마엣 자손들은 유다에 있을 때 한오백년 살 것처럼 세상 것을 쌓아 놓았던 자들인데 이제 모든 것을 다 잃고 포로 생활 고통 중에서 고향도 못 가보고 여기서 죽으면 어쩌나? 두려워하며 돌아가기를 준비하던 자들입니다.
25절 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이 칠백 사십 삼명이요 기랴다림은 ‘산림의 성읍’이라는 뜻으로 도시와 멀리 떨어져 살던 자들입니다. 셈의 후손들은 산에 거하는 자가 되어 늘 매일 산을 오르내리며 영적 성장을 중요하게 여긴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창10:30-
오늘도 모든 성경을 양식 삼는 자들은 구약에 아가서 신약에 요한복음과 계시록 높은 산까지 받아먹고 주님의 신부감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넓은 시날 평지에서 평안하게 살려는 함의 후손과 같은 세상주의 자들은 고통과 온갖 괴롬을 주어도 나오지 않고 고집만 부리는 자들입니다. 창10:10-
또한 아직도 바다에 나가 고기 많이 잡으면 잘 먹고 잘 산다고 여겨 바닷가에 거하는 야벳의 후손과 같은 자들도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지 않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창10:5-
그비라는 ‘촌락’이라는 뜻으로 도시 사람들보다 순박하고 인정이 있습니다. 군대 귀신들려 오랫동안 무덤가에 거한 자는 복잡하고 날마다 바쁘게 산 도시 사람이었습니다. 눅8:27-
브에롯은 ‘우물들’이라는 뜻으로 우물은 촌에 있고 우물에는 항상 물이 풍성한 곳입니다. 복음이 믿어진 자들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속에 있는 기쁨을 서로 주고 받는 자들입니다. 수가성 여인은 야곱의 우물을 먹음으로 더 목말랐습니다. 복음이 잘못된 예배당에는 믿는다 하나 신령한 영적 기쁨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제 수가성 여인은 자기 속에 샘이 생겨 신령한 기쁨이 있음으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 기쁨을 나눈 것입니다. 요4:28-
26절 라마와 게바 자손이 육백 이십 일명이요 라마는 ‘높은 곳’ 이라는 뜻이요 야곱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라헬의 묘가 있던 곳입니다. 마2:18-
포로 생활 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진 자들이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27절 믹마스 사람이 일백 이십 이명이요 베냐민 지파에서 왕된 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과 싸우려 대치하던 곳인데 (삼상13:2-14:13) 사울의 교만과 실수로 대승을 거둘 수 없게 된 곳입니다.
28절 벧엘과 아이 사람이 이백 이십 삼명이요 벧엘은 ‘하나님의 집’ 이라는 뜻으로 야곱이 돌베개로 돌단을 쌓은 곳인데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한 자들이요 (창28:18-22)
아이는 ‘작다’ 라는 뜻인데 여호수아 때에 큰 성 여리고를 무너뜨려 주셨는데 아간(뜻은 곤란)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다가 패하게 된 그 뜻을 깨닫게 된 자들이 (수7:-8:)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알아서 철저히 물질 관리를 바로 하는 자들이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3:9-
그 지역 이름까지 낱낱이 기록하신 것은 오늘도 육적인 사람에서 영적인 사람으로 살게 하신 자들은 복음이 믿어져 1.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녹명이 되었고 계21:27-
이제 진리의 양식으로 자라나 열매맺는 것마다 상받을 생명책에 녹명하고 계시고 (빌4:3)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나 순교케 하실 자들을 기록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적힌다는 것입니다. 계13:8-
각자가 내 이름은 어디에 기록되었는가? 감사하게 하시려 살피게 하시는 양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