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아장성 등산기 둘째날(2001.8.23.)

<용아장성 등산기 둘째날>1.조용한 출발8월 23일 새벽 4시 50분 기상 소리에 잠이 깬다. 출발 10분 전, 산장에서는 다들 일어나는 시간이 달라서 일찍 깬 사람은 자는 사람을 깨우지 않도록 가능하면 조용히 신속하게 준비하고 나와야 된다. 우리는 습관이 되어서 완전히 차리고 나오는데 5분이 안 걸린다. 완전 준비해서 5시 정각에 수렴동 대피소를 향해 출발, 아직 어두워서 랜턴을 켜고 가야 된다. 30분 정도 가니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오는 것이 랜턴을 켜지 않아도 걸을 만하다. 한 시간 정도 걸어서 영시암에 도착, 물 한 컵 마시고, 주변을 둘러본다. 당귀와 더덕, 미나리 등 약초와 채소를 심어 놓았다. 길옆에는 고본이라는 약초도 있고, 애기달맞이꽃이 아주 작고 앙증스럽게 피어있다. 5분 휴식 후에 다시 걸음을 재촉해 6시 30분에 수렴동 대피소 도착, 보통 1시간 50분이 소요되는 거리인데, 새벽이고 다들 걸음이 빨라서 20분 정도 일찍 도착한 것이다. 여기서 아침밥을 해먹고, 점심으로 주먹밥을 싸야 한다. 우리 사전에 하루 코스 이상 가는 등산에 찌개나 국 없이 밥을 먹어 본 일이 없지만 이번에는 물도 없는 길을 8시간이나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마실 물 외에는 가져가지 못하고 워낙 험한 길이라 가능하면 짐을 줄여야 한다.  2. 수렴동 대피소에서 아침. 험난한 출발수렴동 대피소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설악산에는 국립공원 관리요원이 관리하는 곳이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 있는데 개인이 관리하는 곳은 대개 구조대의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 이곳은 밥해 먹고 설거지하기 좋은 시설을 갖춘 곳이다. 아침밥을 짓고 이것저것 준비하는데 주변을 둘러보던 양선생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조금 있다 대장님이 또 한 번 둘러보시더니 또 표정이 심상치 않다. 서로 무언의 표정을 살피는데 한 곳을 보니 ‘산림훼손 및 자연물 훼손 벌금 1000만원까지, 출입금지 구역 출입 벌금 20만원...... 이런 현수막이 있다. 내용인즉 용아장성은 등산금지구역으로 되어 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뽑을 때는 없던 구절이다. 왁자하고 떠들던 우리들은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진다. 그래도 그렇지 여기까지 벼르고 별러서 왔는데 못 가다니 말이나 되나? 서로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문다. 우리 한새미 등산팀은 워낙 같이 많이 다닌 사람들이라 표정만 봐도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안다.  서둘러 밥을 먹고 짐을 꾸리고 작게 만든 주먹밥을 2-3덩이씩 배낭에 넣고 출발, 수렴동 대피소 구조대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 눈치를 알아채고 자꾸만 말을 걸며 따라 온다. 대장이 앞에 서고, 강선생이 제일 나중에 말대꾸를 해 주며 따라올 동안 걸음을 빨리 해서 수렴동 화장실 뒤로 빠져, 길도 없는 가파른 언덕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이럴 때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전투 요원 같다. 이곳은 땅이 무르고 나뭇가지가 많고, 게다가 돌까지 굴러 내린다. 대장이 앞서 가다가 돌을 굴러뜨려서 백사모님 무릎에 맞았다. 이것을 보던 과장님 걱정을 하면서 정 가기 어렵거든 둘이서 돌아가자고 하신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올라간다. 앞에서는 대장이 빨리 오라고 그러고, 과장님과 사모님은 잠시 주춤하고 강선생은 뒤에서 우리를 다시 불러 내릴지도 모르니까 시야에 안 보일 때까지 빨리 올라가라고 재촉한다.  3. 본격적인 등산한참을 올라가니 등산로가 나타난다. 이제 완전히 수렴동 대피소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후유~ 강선생 왈 “구조대원이 자꾸 말을 걸고 따라오는 거라. 화장실 가는 길인데도, 아마도 눈치를 챈 것 같애. 한참 이런 저런 말대꾸를 하다보니, 사람들이 사라지고 없는 거라, 구조대원이 <어? 이 사람들 다 어디갔어?> 그러고 보니 언덕으로 줄을 서서 졸졸 올라가고 있길래, 우리 좀 올라 갈께요. 그랬더니 난색을 표하면서 <이리로 가면 안 되는데> 하면서 돌아갔다’고 한다. 다들 우리가 빨치산처럼 없는 길을 만들어서 쫄쫄 올라가는 것을 보고 저만하면 가겠다고 판단했는갑다. 그런다.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니 본격적인 바위 능선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잠시 다친 백사모님 무릎에 알로에 베라 분말을 바르고, 일회용 벤드를 붙인다. 바위 능선을 타는 것은 일반 등산로를 따라 걷는 것보다 덜 지루하다. 우선 여기저기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야하고 오르내리면서 대개는 팔다리 다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길 아래로는 낭떠러지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더구나 이곳은 험하기로 이름 높은 용아장성-용의 이빨처럼 생긴 험하고 긴 능선-이 아닌가? 제일 먼저 다다른 곳이 「옥녀봉」 왼쪽으로 오세암 앞의 만경대와 가야동 계곡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구곡담 계곡이 보인다. 내려다보면 사방 천길 낭떠러지다. 아찔하다. 옥녀봉에서 잠시 휴식, 다시 바위 능선을 탄다.  4. 오래살고 싶으면 돌아가라뜀 바위 가까운 곳에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이 내려온다. 왜 내려오느냐고 물으니까 천국과 지옥을 수없이 왔다갔다했다면서 우리보고 오래 살고 싶으면 돌아가라고 충고하면서 수렴동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우리는 씨익 웃으면서 그냥 올라간다. 길은 정말 위험하다. 수없이 네 발로 기어오르고 매달리고 기어내린다. 뜀 바위를 지나서 촛대바위를 향해 올라간다. 이곳은 7-8M 높이의 절벽을 바위틈이나 나무를 잡고 올라가야 한다. 아니면 밧줄에 매듭을 만들어서 달아놓은 로프를 잡고 올라도 된다. 촛대바위에 오르고 보면 오세암과 공룡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본격적인 복병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촛대바위를 지나 바로 넘어야 하는 어려운 코스 일명 개구멍바위! 이곳은 바위 능선 왼쪽에 수평방향으로 길게 놓인 크랙인데 배낭을 벗고 낭떠러지에 50㎝ 폭으로 난 길을 2m 정도 기어서 가던지 누워서 가야한다. 경희의료원에 근무한다는 젊은 남자 한 명이 배낭도 던져두고, 핸드폰도 던져두고 멍하니 앉아 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도저히 무서워서 못 가겠단다. 자기네 등산팀에게 전화를 했더니 장비 없이 절대 혼자 가면 안 되고, 그곳을 넘는다 하더라도 봉정암 바로 앞에 있는 20m 낭떠러지를 내려서야 하는데 그곳이야말로 더 위험하다며 혼자서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한다면서 돌아간다고 한다.  5. 개구멍바위, 장비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문제이 말을 듣던 날다람쥐, 궁노루 강선생이 얼른 배낭을 벗어놓고 답사하러 가고, 양선생이 그 뒤를 따른다. 강선생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양선생님은 바위를 잡고 엉덩이를 내밀고 가지 못하고 서 있다. 대장님도 가 본다. 이런 모습을 본 과장님이 “여자들은 가기 힘들겠지요”하니까 젊은이가 “어르신도 가기 힘들걸요”한다. “나는 갈 수 있어요”하니까 “일행들의 안전을 생각해야죠.” 그러면서 겁을 더 준다. 원래 자기가 못 가면 그 위험성은 덧보태지는 법이다. 과장님은 ‘어르신’이라는 말에 화가 나는 모양이다. 아직 젊은데 싶은 모양이다. 그러는 사이에 강선생이 돌아오더니만 가자고 하지 않는다. 대장님도 주저앉고 양홍식 선생은 못 간다고 못 박는다. 강선생 말이 사방 천길 낭떠러지로 밑이 안 보인다고 한다. 1-2m 높이라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겠는데 이곳은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황석산 등산에서 무수히 배밀이와 엎드려 기는 등산을 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곳은 일단 겁먹으면 매달려서 오도가도 못한다고 한다. 강선생도 10초 정도 꼼짝 못했다고 한다. 하는 수없이 힘들게 올라갔던 길을 내려온다.  ‘되돌아서나, 그래도 가나’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데 이 젊은이가 우회로도 없다면서 간다고 해도 20m 낭떠러지가 가장 위험하다고 겁을 더 준다. 조금 내려오니까 우회로 비슷한 갈림길이 있다. 여기서 잠시 주저앉는다. 8시에 출발, 세 시간이나 힘들게 왔는데 돌아가기엔 너무 아깝다. 얼마나 별러서 온 용아장성인가. 1회 설악동-천불동 계곡-희운각-소청-중청-대청봉-다시 희운각으로 내려와서 공룡능선-금강굴-비선대-설악동, 2회 백담사-백운동계곡-수렴동대피소-구곡담계곡-봉정암-소청-중청-대청봉-희운각-공룡능선-백담사, 3회에도 이곳은 못 오고, 드디어 4회째 용아장성 코스를 비장한 각오를 하고 정하지 않았는가?  6. 봉정암 입구 20m 낭떠러지에 대한 공포강선생이 가져온 인터넷 자료를 읽는 동안 양선생님이 길을 답사한다. 한참을 가더니 길이 있다면 오라고 손짓을 한다. 등산대원은 남자 다섯 여자 셋인데, 여자 셋이서 일단 가 보자고 한다. 그러자 대장님도 가는 것으로 결정을 내린다. 젊은이는 우리 따라 가자는 청을 거절하고 친구랑 장비를 준비해서 다시 오겠다고 하면서 되돌아간다. 그렇다 자료에는 분명 우회로가 있다고 했다. 양선생님이 일단 가보고 20미터 낭떠러지는 옷을 벗어서 묶어서 잡고 가던지, 봉정암이 가깝다고 하니까 봉정암 가서 사다리를 가져오든지 하여간 가서 보자고 하니까 강선생이 로프로 쓸 밧줄을 가져왔다면서 매듭을 묶은 밧줄 뭉치를 보여준다. 그러면 됐다면서 우회로를 걸으면서 길을 재촉한다.  그 때부터 그 말이 많던 사람들이 말이 없다. 산에 가면 의례 쉬는 장소에서는 약물이라면서 술을 한 잔씩 마시는데 오늘은 술도 안 마신다. 간식도 많이 가져갔는데 간식도 별로 안 먹는다. 물만 먹는다. 더구나 과장님은 개구멍바위에서 내려올 때 돌아간다고 물을 다 비워버려서 물이 없다. 하여 과장님은 목마름을 참고 물도 마시지 않는다. 우회로로 간다고 해도 오르막길 내리막길 경사가 심해서 고생이 많다. 오죽하면 보통 1시간이면 갈 4㎞거리를 등산하는데 8시간이나 걸릴까. 게다가 웬만하면 바위 능선을 그대로 탄다. 바위 능선을 타면 가야동 계곡, 구곡담 계곡, 공룡능선, 오세암.... 사방 경치는 좋지만 여간 위험한 길이 아니다. 무섭다. 이것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봉정암 입구의 마지막 낭떠러지다. 그 길은 우회로도 없다고 하니까....  7. 수없이 많은 바위길나는 이번 등산이 정말 힘이 든다. 방학하고 나서 바로 2박 3일 지리산 종주를 하고 난 뒤로 한 번도 등산을 못했다. 이야기 대회, 국어교사모임 경북권 연수, 경남권 연수, 교과서 모임 등의 일정들이 모두 정기 등산일인 토요일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교과서 작업한다고, 방학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고, 잠도 새벽 2시전에는 거의 못 잤을 뿐만 아니라 연수 때 역시 새벽 4시에 자는 것이 기본이어서 방학동안 일찍 자 본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니 등산이 힘들 수밖에. 평소 같으면 뽈뽈 잘 갔을 터인데....  더구나 나는 다른 사람보다 겁이 많다. 바위를 건너뛰어야 하거나 올라가는 길, 내려오는 길이 험할 때는 겁을 많이 낸다. “흐응 무서버. 못 가겠어.” 그러면 남편이 완전히 버티고 서서 안전한 길로 오도록 하거나 손을 잡아서 잘 건너도록 해 준다. 그러면 황선생님이나 백사모님이 놀린다. “흐응 무서버” 흉내내면서. 조대장도 놀린다. 황선생보고 “나도 당신이 그러면 안아서 내려 준다느니....” “모두들 나만 미워해. 나참, 나처럼 작은 사람이 그래야 통하지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사람이 그러면 얼마나 징그러울까? 젊은이가 ‘어르신’ 한 이후로 과장님도 놀린다. (우리가 지나간 능선) ‘어르신, 어르신’하면서. 그러면서 “뭣이라꼬? 덕유산을 뒷동산 다니듯이 다니는 사람을 두고 으이.”한다. 그나저나 오늘은 정말 물이 많이 먹힌다. 물을 많이 먹다 보니 연구도 자주 하고 싶다. 우리 등산팀은 오줌 누고 싶으면 ‘연구한다’고 한다. 똥 누고 싶으면 ‘깊은 연구를 한다’고 하고, 여자 대원들이 심각한 상황이면 ‘심각한 연구 중’이라고 한다. “연구팀 모여” 하면 남자팀 여자팀 다들 알아서 갈라졌다 모인다.  능선과 우회로를 넘고 넘어 1시에 바위능선에서 점심을 먹는다. 나무 그늘이 별로 없어서 땡볕이고 바람도 불지 않는다. 조대장이 여기저기 살피더니만 조금 아래 소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늘도 있고 바람도 잘 통한다고 한다. 사모님, 과장님, 송선생님은 그냥 땡볕에서 먹겠다고 남고, 황선생님은 맨발로 나는 펼쳤던 주먹밥을 다시 싸 가지고 나무 그늘로 간다. 몇 사람 앉을 정도이다. 그곳에서 주먹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다시 등산길에 오른다. 한참을 지나와서 우리가 점심 먹었던 곳을 돌아보니 맙소사! 절벽에 나무 하나가 당그라니 있고, 그 밑에는 다시 천길 낭떠러지다. 모르고 앉아 있었으니 망정이지 알았더라면 거기서 안 먹었을 것이다. 차라리 땡볕 아래서 먹지.  8. 바위 절벽에 핀 금강초롱꽃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굴러 떨어지기 쉬운 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수없이 반복, 문득 절벽을 쳐다보니 금강초롱꽃이 절벽을 뚫고 피어있다. 조대장님도 금강초롱꽃은 처음 본다고 한다. 우리 등산일지가 470회 나가는데 몇 번 빠졌다고 해도 450회 넘는 등산에 처음 보는 꽃이라니... 정말 예쁘다. 아니 신기하다. 어떻게 저렇게 깎아지르는 바위 절벽에 뿌리를 박고 꽃잎 하나 안 상하고 피어 있을까? (금강초롱꽃)  9. 공포의 낭떠러지를 내려오다.그러고도 한참을 오르락내리락. 드디어 올 곳에 왔다. 공포의 낭떠러지, 자일을 하거나 로프를 잡아도 위험하다고 겁주던 곳! 위에서 내려다보니 정말 한참 절벽이다. 20미터 높이가 가장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라는데.... 황선생님은 어지럽다고 나보고 자꾸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려오라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내려다보니 우리가 공포에 떨 만큼 위험한 곳은 아니다. 절벽이긴 해도 발 디딜 곳, 손잡을 곳이 많다. 로프도 여러 개 있다. 남자 대원들이 여기라면 하면서 로프를 잡고, 퍽퍽 내려간다. 남편은 자세히 보더니 “나는 로프를 안 잡고 마누라 데리고 이리로 갈랍니다” 한다. 평소에 워낙 바깥에서 지칠 정도로 나대고 집에 들어와서는 잠만 자고 나가는 사람이 등산에서는 완벽한 보호자다.  사람이 극도로 긴장을 하거나 위험에 처하거나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곳에 다다르면 무섭다느니, 못 간다느니 하는 말이 안 나온다.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나 판단부터 한다. 내가 그짝이다. 일단 숨을 크게 들이쉰다. 두려움에 떨지 않게 해 달라고 간단하게 기도한 다음, 남편이 내려서서 발 디디라는 곳에 발을 디딘다. 내가 떨어져도 받쳐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안정을 찾게 되고, 그러고 나면 바위로부터 좀 떨어져서 내가 발 디딜 곳을 스스로 찾기도 한다. 좀 위험하다 싶으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내려온다. 이 코스는 무서워하느냐 안 무서워하느냐 하는 심리의 문제이다. 한 발짝 한 발짝 수없이 내려오니 드디어 발이 땅에 닫는다. 성공이다. 야호!!  사모님은 가만히 보더니 로프와 바위를 잡고 잘 내려오신다. 남자들은 서로 도와주겠다면서 오르락내리락한다. 마지막으로 황선생님, 얼굴이 하얗다. 조대장님은 도와주러 가서는 아래에서 받쳐줘야 하는데 위에 올라가서 지켜보기만 한다. 강선생이 다시 올라가서 내려오는 길을 받치면서 떨어지면 주울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려오라면서 발 디딜 곳을 안내한다. 드디어 황선생님도 땅을 밟는다. 성공이다.  10. 성취감도 크고 할 말도 많고그제서야 송선생님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이런 줄 모르고 이 무모한 사람들 따라 왔다가 죽는 줄 알았다느니, 새로 태어난 기분이라느니, 이제부터 인생을 다시 살겠다느니, 죽든지 살든지 대장한테 맡기고 왔다느니, 이제부터 겁나는 것이 없다느니, 정말 천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느니, 돌아가고 싶었다느니, 돌아갔으면 어쩔 뻔 했느냐느니.  봉정암이 바로 앞에 있을 줄 알았는데 훨씬 멀리 있다. 그렇다고 험한 길이 다 한 것도 아니다. 내려온다면 20미터 낭떠러지보다 더 위험한 미끄러운 바위 길을 올라가서 한없이 걷노라니 봉정암이 나타난다. 봉정암에서 물을 마신다. 물은 정말 차고 맛있다. 속까지 시원하다. 봉정암은 우리 나라에 5군데밖에 없는 적멸보궁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탑이 있는 곳이다. 물을 마시고 사리탑에 갔다가 다시 헬기장으로 가서 우리가 지나온 능선을 바라본다. 깎아지른 절벽이 울툭불툭 긴 성처럼 늘어져 있다. 다들 대견해 한다.  등산의 기쁨은 위험을 뚫고 고생을 많이 할수록 더 커진다. 무언가 해 냈다는 뿌듯함이 생기면서 서로 위로를 하게 되고 기쁨을 나누게 된다. 아무런 사심도 없다. 그냥 어려움을 함께 했다는 생각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남는다. 그리고 간다고 차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순간까지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싫다고 돌아갈 수도 없고 위험하다고 안 갈 수도 없다. 한 사람이 못 가면 앞에서 끌어당기고 뒤에서 밀면서 함께 가야 한다. 심지어는 업고 가는 수도 있다. 그리고 반드시 목적지까지 가야 되돌아온다. 우리가 개구멍바위에서 돌아섰더라면 용아장성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먹지 못하는 포도처럼 앞으로도 넘지 못하는 능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저 포도는 시어서 못 먹을 거야 - 용아장성은 위험해서 못 가’라고.  11. 소청산장에서의 맥주 한 잔봉정암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소청산장까지는 30분 정도, 마음을 놓아서 그런지 30분 거리가 한 시간은 되는 것 같다. 길이 조금 험한데도 많이 험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드디어 소청산장이 눈에 들어온다. 산장에서 파는 막걸리와 감자전을 산다. 내가 맥주를 마시고 싶다니까 남편이 얼른 맥주를 사온다. 이제 오늘 등산은 끝난 것이다. 그러나 양선생님과 송선생님은 대청봉을 못 가 본 분들이라 강선생이 길을 안내하겠다며 나선다. 1시간 반만에 휑하니 다녀오겠다고 나서더니 조금 있으니까 벌써 안 보인다. 하긴 소청에서 중청까지, 중청에서 대청봉까지는 길이 그리 험하지 않다.  소청산장은 한 가족이 운영한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업고 있다. 우리가 용아장성을 넘었다고 하면서 출입금지 시키고 있더라고 하니까, 워낙 사고가 많이 나서 그렇지, 꼭 가지 말라고 통제할 수는 없다고 한다. 우리가 로프로 쓸려고 가지고 간 밧줄을 보더니 빨랫줄로 쓰게 달라고 한다. 필요하면 자일을 빌려주겠다면서. 이제 우리는 겁나는 것이 없으니 밧줄이 필요 없다면서 할아버지를 준다. 술도 마시고 즐겁게 떠들어댄다. 멀리 공룡능선과 울산바위, 1275바위, 범바위, 동해 바다도 보인다. 한참 놀다가 저녁을 지어놓고 해넘이 구경을 한다. 너무나 아름답다. 5시 반에 출발한 대청봉 등산팀이 7시쯤 도착한다. 밥을 먹고 양치하고, 잠자리에 든다. 산장에서는 대개 취침시간이 10시인데 이곳에서는 아홉 시에 불을 끈다. 잠이 들 때까지 용아장성 험한 고갯길이 아른아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