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은 허물어져 빈터 인데...◆◆
1.
1975년 어느날 심수봉은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황성옛터"를 불렀다.
노래가 끝났을 때 심수봉은 박 대통령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았다.
그 전 해에 육 여사를 잃은 박대통령은 그 후로 유난히 눈물이 잦아졌다.
2.
때는 서슬퍼런 유신 시절, 이른바 박정희 독재의 절정기,
그러나 "독재자 박정희는 아무도 모르게 자주 울었다.
그러다가 그렇게 총성과 함께 단군이래 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땅에 찾아왔던 득의의 시대, 박정희의 시대는 끝났다.
3.
나는 박정희 앞에 붙는 '독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곪은 상처에 부치는 고약을 떠 올린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의 독재를 보는 내 눈과 창은 다르다.
4.
무엇보다 박정희의 독재는 일반 국민과는 무관한 독재였다.
따라서 당시 일반 국민들 중 박정희가 독재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혹독한 법률, 과중한 세금 등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뭉개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랭이가 찢어져야 그게 독재다.
그러므로 박정희이 독재는 독재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왜, 박정희 하면 독재부터 떠 올리는가?
5.
정치! 정치가 그를 그렇게 부르도록 만들었다.
상처에 고약 붙이듯 그의 이름 앞에 독재자라는 고약을 붙이고
악을 빡빡 쓴 사람들은 90%가 정치하는 자들이었다. 정치 먹물에 물든 자들이었다.
6.
김영삼, 김대중을 필두로 논두렁의 황소 개구리처럼
왈왈거린 그들의 정체는 알고보니 권력욕에 찌든 정치꾼들이었다.
김영삼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고 급기야 IMF에 나라를 말아먹었다.
김대중은 고사직전의 북한을 살려내 오늘날 핵무기 하나로
한국 알기를 발가락 때만큼도 안 여기는 깡패국이 되게 만들었다.
7.
그 뒤를 소위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세대들이 주도한 민주화 세력들은
초지일관, 박정희의 피가 마르고 뼈가 드러나도록 그를 독재자로 몰아부쳤다.
민주화 세력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박정희가 의도하는 나라와는 정반대의 나라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8.
만고불변의 국가이성 (국가의 존재 이유)은 國泰安民이다.
순서로 치면 민주화는 그 다음이다.
박정희의 國泰安民은 미완성이었지만 단군이래 처음 시도되었다.
그러나 민주화 세력은 박정희가 추구한 것은
무엇이든 무조건 독재의 프레임을 씌워 밟아 뭉개버렸다.
깔아뭉갠 것 중에는 國泰安民도 포함되어 있다.
9.
1987 민주화 이후 35년 동안은 박정희 시대 전체를 all,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독재의 역사로 대못을 박아 버린 역사였다.
그리하여 박정희를 독재자로 부르지 않으면 무식한 놈으로 치부될 정도였다.
눈치도 없이 박정희의 공을 논하며 바른소리 했다간
얼뜨기 먹물들로부터 봉변을 당하기 쉽상이었다.
10.
그런 세월이 짧아도 벌써 30년 째다.
이제 우리는 박정희 덕분에 배고픈 줄 모르고 살고 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고 사는 세대들이 다수인 시대에 살고 있다.
1980년 이후 태어나 배고 픔이 무언지 모르는 세대
에게 박정희란 존재는 그저 독재자로만 알려져 있을 뿐.
11.
그리고? ... 역설적으로 박정희가 아니었다라면
절대로 권력 가까이 갈 수 없었던 자들,
박정희의 피를 빨고 뼈를 갈아 오직 그 분노 와 원한을 무기삼아
권력을 쥐게 된 자들이 나라를 좌지 우지한지 30여 년!
개, 돼지 들이 민주화 시대라고 부르며 찬미하는 그 30여 년 세월.
12.
그 결과는 "한 번도 경험 하지 못한 나라",
그것이 전부 다. 박정희 시대와 민주화 시 대를
온 몸으로 살아낸 나로 서는 그 모든 것이 실로 허 망하다.
13.
그래서 심수봉이 부른 "황성옛터",
그 가사가 오늘 따라 전혀 새롭게 와 닿는다.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저 나 그네 홀로 잠 못 이루어
구 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박정희는 이를 미리 알고 심수봉의 노래를 듣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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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안에서 안을 보는 것과
밖에서 안을 들어다보는 것,
어는 것이 더 정확 할까?
우물 안에서 밖을 보는 것과
밖에서 우물 안을 들여다 보 는 것의 차이와 같다.
페친 체리님은 밖에서 우물을 들여다보는 분이다.
그렇게 보기까지 숱한 경험과 눈을 가진 분이다.
체리님의 댓글을 말미에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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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정희 대통령이나 리콴유 전 총리는
독재자라기보다 장기 집권자로 봐야 합니다.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체리가 물었지요.
"일부 나라에서 당신의 나라 총리에게
독재자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
싱가포르 사람들이 답하기를
"이런 독재자라면 자손만대 에 환영한다."
외국인들에게 체리가 한국의 대통령에 대해 물으면
"박정희 대통령 외에 다른 대통령은 관심 없습니다."
"독재자라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반응은 늘,
"독재자? 그런 독재자 우리나라에도 나타나면 좋겠다.
대한민국을 위대하게 일으켜 세운 인물인데 독재자라니.....?
한국인들 의아하다.“
체리는 박정희 대통령과
그분의 경제 정책을 비난하고 욕하는 자들에게
'외국 10개 나라만 가보고 입을 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누가 전두환 대통령에게 돌을 던지랴^^
-뉴스타운(10/21)-
-하봉규 논설위원(부경대 교수)-
민주화 이후 마치 전두환 대통령은 국적(國敵)이 되었다.
그에게 5.18 원죄, 군사쿠데타 등 역사의 죄인인 것 처럼 떠들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6.25 당시 군문에 자원하고
월남전 당시 참전이란 명예를 감히 폄하할 수 없다.
무엇보다 한국은 전쟁을 통해 각성되었고
전쟁을 통해 오늘날의 발전이 가능했고
그 이면에는 군인들의 진취적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전쟁이 역사의 분기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세계사를 견인한 나라들은 하나같이 전쟁의 승리자였고 전쟁을 피하지 않았다.
로마의 격언에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란 말이 있다.
무엇보다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이자 아직도 북조선과 대치한 우리의 처지를 잊어선 안 된다.
민주화 이후 우리는 많은 가치와 전통을 잃었다.
무엇보다 처절했던 6.25의 역사적 교훈을 잃었고, 조국 근대화의 헌신을 잊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는 평화나 인권과 같은 일면적이 아니라
규율과 의무와 병행하는 것으로 결국 교양과 국력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두환 정부(5공화국)에 결코 돌을 던질 수 없는 것은
단순히 당시 경제가 발전되고 사회가 안정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보다 남북대치로 인한 높은 군사비의 부담 속에
'한강의 기적'이란 세계사의 이적을 유지 계승한 업적에 있다.
비록 전두환 정부는 건국, 조국 근대화 등 한국의 위대한 지도자들
(이승만ㆍ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존중에는 인색했으나 방향은 같이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두환 정부의 업적은 민주화 이후
소위 민주 지도자란 김영삼ㆍ김대중 정권의 무능과 부패와 뚜렷이 대비되는 것이다.
김영삼은 불과 5년이란 재임 기간에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란 IMF의 원흉이 되었고 공산주의자 김대중 정권의 탄생을 방치했던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무법성과 부패는 아직도 한국의 부담이자 영원한 숙제이다.
무엇보다 IMF를 핑계 삼아 경쟁력 있는 기업들의 무차별적 매각과 불평등 관계를 수용한 점이다.
여기에 한일어업협정을 졸속으로 처리하여 매국노가 된 것이다.
그는 국난의 와중에 축재에 몰두하여 미국에서 발견된 비자금만 11억 불에 이르렀다.
김대중의 무도함과 이중성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평소 그처럼 주창했던 박정희의 스위스 비밀계좌와
지역 차별은 자신이 집권하자 진정한 실현자가 된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는 '이재명 게이트'라는
여당 대선후보의 무법과 탈법, 천문학적 비자금으로 떠들썩하다.
어쩌면 이재명은 김대중의 이중성을 존중하여
감히 지방 도시의 시장으로 권력형 부정부패카르텔을 만들었을 것이다.
필자는 정치학자로서 역사를 자주 조명한다.
역사는 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외부의 위협보다 내부적 문제로,
평화를 부르자는 민족이 전쟁을 자초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2차대전 중 독일의 파시스트는
영세중립국을 선언했던 노르웨이를 유린했으나 스위스는 용인했다.
바로 현실은 선언보다 국력이 우선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종전선언에의 집착을 보며
우리는 다시 한번 역사와 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는 오히려 안보에 취약하며 무지와 죄의식이 없는
이재명 같은 불가촉천민형 반영웅(반역자)을 파사의 검, 응징의 도로 엄단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인류 최고의 철학자 플라톤의 단언처럼
"가장 천질의 인간에 의해 지배받는"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필자는 수년 전 하와이 이승만 대통령연구소 초청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말년을 살펴볼 수 있었다.
무일푼 이 대통령 내외는 교민들이 제공한 주택과 생활비로 이국땅에서 보냈던 것이다.
이웃 마을에는 호화로운 마르코스별장과 대조되었었다.
20살 약관으로 박정희 대통령 말기 공직에 있었던 필자는
아직도 박 대통령께서 마지막 옷이 수선한 것이란 사실을 똑똑히 기억한다.
한국은 위대한 지도자들의 은혜를 입었으나 이를 잊었기에 오늘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