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림 칼럼>
정읍을 보는 거울
-정읍신문 지령 일천호에 부쳐-
최광림(객원논설위원)
정읍신문이 이번 호로 지령 일천호를 돌파했다. 장장 20년 4개월 여 단 하루도 거름이 없이 쉬지 않고 달려온 부단한 족적의 결실이다. 가볍게 운을 떼자면 사옥 앞에 미루나무라도 한 그루 심어놓을 걸 그랬다. 그 나무의 성장에 비례한 그늘이 오늘 날 정읍신문의 역사와 위상을 웅변하리란 생각에서다. 물론 이런 나무나 설치물, 혹은 다수의 자료가 어디엔가 보존되고 있으리라 믿지만 이쯤해서 타임캡슐이라도 하나 묻어두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또 먼 훗날 정읍의 역사고 자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 7월 25일 창간호를 시작으로 한 눈 팔지 않고 달려온 정읍신문이 마침내 지령 일천호를 돌파한다기에 과연 이에 대적할, 내지는 버금가는 신문이 어디 없을까 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 다수의 자료들을 물색해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물론 이 땅에 정읍신문보다 더 장구한 역사와 지령을 갖고 있는 지역신문이 어딘가는 존재하리라 믿는다. 다만 이만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상기코자 함이다.
정읍신문 창간당시 필자나 지인들은 내심 우려 섞인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 이유는 언론자율화와 맞물린 팽창의 대홍수 속에서 과연 정읍신문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 의문부호를 달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한국 언론은 근 10여 년간 무분별한 양적팽창을 거듭했다. 그 와중에 도태나 고사를 반복한 언론사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이처럼 조악한 환경과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 20년의 역사를 새로 쓰며 지령 일천호의 찬란한 금자탑을 쌓은 정읍신문의 끈끈한 의지와 강인한 생명력에 감응하지 않는 시민이나 독자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믿는다.
특히 정읍신문은 여타 신문과 차별화되는 남다른 데가 있다. 단지 20년의 역사는 세월이 가면 어느 신문이나 축적할 수 있는 결과의 산물이지만 단 한 번의 발행사고도 마다않고 매주 수요일 독자들의 손에 1천 번의 신문을 쥐어주었다는 사실은 실로 경이롭다. 나아가 올곧은 언론관과 언론인의 윤리의식을 망각하지 않고 끊임없는 외압에도 흔들림 없이 때로는 어둡고도 힘든 길을 당당하고 의연하게 헤쳐 왔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지역신문의 특성상 열악한 환경이나 재정에도 불구하고 연례행사로 자리 잡은 단풍마라톤, 각종 스포츠대회, 소년소녀가장 서울나들이, 논술대회와 청와대 포럼 등을 개최하며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지역문화 창달에 기여한 공로는 자못 크다 할 것이다. 이렇듯 언론의 사명에 충실하는 가운데 주도적으로 지역문화를 선도하는 정읍신문에서 다윗의 지혜와 당찬 힘을 느낄 수 있어 흡족한 마음이다. 말하자면 이제 정읍신문은 바로 정읍을 보는 거울로 자리 잡은 셈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읍신문은 수많은 역정과 인고의 세월을 감내하며 어둡고 거친 형극의 길을 헤쳐 왔을 것이다. 이 역시 발행, 편집 및 임직원들의 한결같은 노고와 열정의 합일된 결정체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제는 20년의 역사와 지령 일천호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항해의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이에 포커스를 맞추자면 정읍신문은 이제 안분지족의 차원을 넘어 보다 광활한 세상을 향해 웅비의 날개를 펼쳐야 할 시점이다. 더 겸손하고, 더 끌어안고, 더 연마하는 가운데 보다 낮은 자세로 임한다면 우리는 정읍신문의 천 년 역사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변화와 개혁으로 전국최고의 지역신문을 만들어 정읍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발행인의 충정과 의지를 독자의 한 사람인 필자도 감응어린 눈으로 지켜보며 성원해마지 않는다. 정읍시민과 독자 역시 정읍신문이 정읍의 지킴이요, 자랑이 될 수 있도록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무한한 애정과 채찍을 놓지 말 것을 당부한다.
주목(朱木)은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고 한다. 정읍신문이 이 주목 같은 나무가 되어 정읍을 지키고 정읍을 사랑하는 그런 믿음직한 나무가 되었으면 한다. 이런 정읍신문이 있는 한 정읍시민과 독자, 출향인의 한 사람인 필자 역시 행복하다.
<choikwanglim@yahoo.co.kr>
첫댓글 신문의 사명은 역시 사회의 빛과 소금역할이군요. 주목은 살아 천 년, 죽어 천년... 선생님의 이 칼럼을 읽고나니 정읍이란 도시가 가까이에 있는 느낌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