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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2), 희락(갈 5:22-23,빌 4:4)
오늘은 성령의 열매 두 번째 희락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령의 열매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모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품들과 속성들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겉사람이 깨어질 때 우리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성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농부가 논과 밭에 씨를 뿌리고 정성을 다하여 가꿉니다.
그러나 농부가 그 씨에서 싹이 나오고 자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비료를 줄 수는 있어도 그것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본질상, 죄로 말미암아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죄악의 열매를 끝없이 맺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 5:24,25절에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갈 5:24,25)“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도를 듣고만 있지 믿고 행하지 못해서 여전히 육체의 열매만 가득히 맺고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생각을, 내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앞에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했다면 다 구원받은 사람이요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어리석은 일이라고 거절하지 마십시오, 십자가 앞에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순종하는 것입니다.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는 것이 승리하는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사는 것입니다. 삶의 순간순간을 주님과 호흡하며 한걸음 한걸음 주님과 동행하면 성령의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첫 번째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의 전부요 기초요 뿌리입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를 먼저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이자 신앙의 전부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1절이하에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이 모든 열매의 근원입니다. 내가 지금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있다면 예수님과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님과 친밀도와 정비례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미워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행하면 우리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고 또 주님의 몸된 교회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진짜 사랑한다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온전케 하는 일을 힘쓸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모두가 성령충만해서 사랑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두 번째 성령의 열매인 희락입니다. “희락”은 쉽게 표현하면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사랑의 열매와 함께 주어지는 열매가 바로 기쁨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기쁨입니다. 육신의 기쁨은 환경과 조건에 의해서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맑은 날은 기뻐하고, 흐린 날은 슬퍼합니다. 세상의 기쁨은 일시적인 기쁨이요,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기쁨은 영혼의 기쁨이요, 하늘의 기쁨이요, 환경과 조건을 초월한 내적인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날씨가 맑아도 기뻐하고, 흐려도 기뻐합니다. 형통해도 기뻐하고, 역경에도 기뻐합니다. 건강해도 기뻐하고, 병들어도 기뻐합니다. 들어와도 기뻐하고, 나가도 기뻐합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영적인 기쁨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의 열매인 기쁨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1. 주 안에 거해야 합니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기 주안에서 얻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다른 것입니다. 오직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기쁨입니다. 이것은 죄사함의 기쁨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이요, 영생을 얻은 자의 기쁨이요, 성령충만한 자의 기쁨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이 기쁨은 어떤 고난이 와도 빼앗기지 않는 기쁨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의 시대를 ‘기쁨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합니다. 기쁨의 근원되시는 예수님인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출세의 기쁨, 성공의 기쁨, 물질의 기쁨, 쾌락의 기쁨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래가지를 못합니다. 그 기쁨은 참된 기쁨이 아닙니다.
주안에서 누리는 기쁨이야말로 참된 기쁨이요, 영원한 기쁨이요. 샘솟는 기쁨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떠나서는 참 기쁨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절대적인 생명의 관계입니다. 떠나면 죽습니다. 마치 양과 목자와의 관계요,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요, 물과 물고기와의 관계요, 아기와 엄마와의 관계입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처럼 주안에 붙어있을 때 주어지는 열매가 바로 기쁨의 열매입니다. 빌립보서 3:1절에서도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빌립보서 4:10절에서도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이라고 주 안에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죄용서의 기쁨, 주님 안에서 누리는 죽음을 초월한 기쁨,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도 응답의 기쁨, 주님 안에서 누리는 동행의 기쁨입니다.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다가옵니까? 가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직장의 문제, 자녀의 문제, 사업의 문제, 인간 관계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다가옵니다. 죽음과 고통, 실패, 상실과 사고가 있는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주안에서 거하기 때문입니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렇게 주님안에 거하면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요 15:10,11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안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이요 주님 말씀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새계명은 무엇입니까?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면 풍성한 열매를 맺고 그 기쁨이 충만해질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 안에서 주어지는 기쁨은 환경과 조건이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특별히 기쁨의 서신이라고 부르는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입니다. 당시에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혔습니다.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집도 없습니다. 자녀도 없습니다. 돌보아 줄 사람도 없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비록 순교의 제물이 된다 해도 절망하지 않고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 그는 육신의 질병때문에 하나님께 고쳐줄 것을 세 번 기도했지만 응답은 ‘아니오’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응답은 이렇습니다.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기쁨은 환경이나 어떤 조건이 주는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요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영국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꿈을 갖고 중국 오지에 들어가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노력하면 할수록 어려움이 닥쳐와 사역이 무너지고 육체에 심한 질병까지 얻게 됐습니다. 절망과 낙담에 빠진 그에게 사랑하는 여동생으로부터 격려 편지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오빠, 오빠는 포도나무 가지이지, 포도나무가 아니에요. 가지가 할 일은 나무에 붙어 있는 것뿐입니다. 가지는 줄기로부터 영양분을 공급 받을 때 절로 열매가 맺히는 거예요. 오빠, 염려하지 말고 포도나무이신 주님 안에 거하세요.”
허드슨 테일러선교사는 용기를 얻고 진정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과 동행하기를 힘썼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후로부터 사역에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큰 업적을 남기고 영국으로 돌아와서 간증하였습니다. “저는 사역의 열매를 위해 열심히 일했으나 도무지 열매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저는 주님 안에 거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때부터 열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역의 열매는 예수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이 기쁨의 열매는 세상이 주는 것도 우리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맺어주시는 열매입니다. 성경은 (롬 1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쁨의 열매는 성령안에서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그러나 이미 성령받았다고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맺혀지는 열매가 아닙니다. 그래서 성령을 따라 행하여야 합니다.
갈 5:16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갈라디아 지역에 있었던 에피쿠로스학파인 쾌락주의 철학이 있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체험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믿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든 선하고 나쁜 것은 쾌락과 고통의 지각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하며 좋은 것은 기쁜 것이고, 나쁜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쾌락과 고통은 선함과 악함의 궁극적인 도덕적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쾌락이 곧 선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쾌락을 쫓는 동성애를 반대하면 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동성만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 1명에 여자 2명, 여자 1명에 남자 2명이 결혼하는 것도 합법화시켜 달라고 합니다. 동물적 쾌락을 누리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기쁨이 그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인간의 자유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방종하고 방탕하는 곳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진정한 기쁨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성령 충만을 받아야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영적 기쁨은 성령 충만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과 기쁨 충만은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사도행전 교회가 기쁨 충만한 교회가 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면 기쁨이 충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론적으로만 안다고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의지적으로 기뻐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내 영혼의 샴페인>이라는 책을 쓴 마이크 메이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두운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우울한 성격 때문에 20대 후반에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루하루 기쁨이 없는 암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제 앞으로 90일 동안 주님 안에서 기뻐하겠다.’라고 결단을 하였습니다. 90일 동안 무조건 주 안에서 기뻐하며 감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조건 기뻐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점검하기 위하여 90일 동안 그에게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90일 동안 억지로 기뻐하기로 실험해 보니까 실제로 기쁨이 밀려오더라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좀처럼 떠나지 않고 자기 내면 안에서 지속적으로 작동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가 앓고 있던 우울증이 치료되었습니다. 기뻐하라는 명령에 따라 순종하다 보면 상황은 기쁨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의지적으로 기뻐하다 보면 실제 마음이 기뻐하는 마음으로 변하고 모든 일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웃으면 건강의 문이 열립니다.
웃으면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웃어야 신앙생활이 행복해집니다. “옆 사람을 보고 웃으시면 ”웃으면서 삽시다.”라고 하겠습니다. 내 의지로 안되면 성령 충만을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성령 충만은 회개할 때, 순종할 때, 사모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기도하면 성령 충만하게 되고 기쁨도 충만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눅 11: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요한복음 16:24절에서 예수님은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오순절의 성령도 기도하다 받았고 성령충만한 성도들은 기쁨이 충만해졌습니다. 성령충만한 그들이 교회당에서 날마다 만나도 지루하지 않고 날마다 예배드려도 기뻤습니다. 그러니 초대교회는 환란과 핍박중에도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성령충만한 스데반은 죽음앞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행 6:5,행7:55)
3.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앞에 나아갑니다. 이렇게 은혜가 있으면 기쁨의 열매를 풍성히 맺습니다.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를 시기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기뻐하면서 더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 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사도를 오히려 기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슨 방도로 하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시기의 대상이 되고 비난을 받는다 하여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보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 시대에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합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습니다.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습니다. 밭에 식물이 없습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 선지자는 기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박국 3:18절에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구원의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앞으로 행하신 크신 은혜를 바라보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의 심판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스바냐 3장 17절을 보십시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 없어져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조금 어려움이 있다고 우울해할 것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앞에 나아와 엎드리십시오.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기쁨의 열매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사람은 하나님께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드린 성령의 열매는 기쁨입니다. 주안에 거하면 기쁨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으로 우리는 기쁨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풍성한 기쁨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오늘 참석한 여러분 모두에게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기쁨의 열매가 풍성히 맺혀 감사와 찬송이 떠나지 않는 성도의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