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열왕 11,4-13; 마르 7,24-30
+ 오소서, 성령님
오늘 제1독서에서 솔로몬은 하느님에게서 돌아서서 우상 숭배에 기울게 되는데, 이는 솔로몬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과 우상들을 사랑하여 우상을 위한 산당들을 짓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웠지만, 솔로몬의 지혜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오늘 독서의 첫 구절은 11장 4절에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오는데요, 하느님께서 지혜롭고 총명하게 만드신 그 마음이 다른 신들에게로 돌아섭니다.
“그의 마음은 아버지 다윗의 마음만큼 주 그의 하느님께 한결같지는 못하였다.”라는 구절에서 ‘한결같다’라고 번역된 단어 ‘샬렘’은 본래 ‘완전하다’라는 뜻인데요, 우리가 ‘솔로몬’이라고 발음하는 ‘셜로모’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즉 ‘셜로모의 마음이 야훼께 샬렘하지 못하였다’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는데요, 솔로몬은 야훼 하느님께 성실할 때에 비로소 솔로몬일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이 돌아서서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할 때, 솔로몬은 솔로몬이기를 멈추는 것입니다. (Leithart, 84)
오늘 독서에서 이어지는 30절에는 아히야라는 예언자가 새 겉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은 후, 열 조각을 예로보암에게 주면서 ‘하느님께서 솔로몬의 손에서 이 나라를 찢어 열 지파를 주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겉옷은 ‘바살마’라는 단어로서, 역시 솔로몬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안 비슷한 거 같은데?’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히브리어는 자음만 표기하기 때문에 ‘ㅅㄹㅁ’이 연속되는 것이 비슷합니다. 결국 아히야 예언자는 솔로몬의 나라 뿐만 아니라 솔로몬을 찢은 셈입니다. (Leithart, 8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인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이 대화를 기점으로 예수님은 유다인들을 위한 사목을 하시다가 이방인들에게까지 그 대상을 넓히시는데요, 그만큼 이 대화는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청하는 여인에게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고 응수합니다.
여기에서 ‘빵’이라는 단어가 무척 중요한데요,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빵과 물고기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여기서 빵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베푸시는 구원 즉 죄와 죽음과 마귀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합니다. 이 오천 명은 유다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방여인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며 예수님께 가르쳐 드립니다. 이제 그 구원의 빵이 이방인들에게도 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집에 가서 보니, 딸은 치유되어 있었습니다.
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레 복음에서 사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이 사천 명은 이방인들입니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의 요구는 자기 딸만을 치유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유다인들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온 인류의 메시아로 오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청원이었습니다.
요즈음은 멀리서도 원격으로 자동차 시동을 걸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너무나 신기한 기능인데요,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원격으로 치유해 주신 유일한 사례가 바로 오늘의 복음입니다. 한편, 복음서 전체에서 원격 치료는 두 차례 나오는데, 다른 한 번은 백인대장의 종을 고치신 기적입니다. 두 기적 모두 이방인과 관련되어 있고, 이 이방인들은 유다인보다 훨씬 더 강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은 마르코 복음 전체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유일한 사람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며,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 있는지 묵상해 봅니다. 내 마음을 하느님을 향해 두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지, 아니면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상은 갈라져 있고 쪼개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솔로몬이 하느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길 때 더 이상 솔로몬이 아닌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으로부터 돌아서면 더 이상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없습니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은 타락한 솔로몬보다 훨씬 지혜로웠습니다. 그 지혜는 바로 갈라지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은 자신의 딸을 치유하게 할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주셨던 빵을 이방인들에게도 주시도록 이끌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그 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빵은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이고,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빵은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시기에 부당하고, 부족함 투성이이지만, 그래서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다’고 고백하지만, 우리 마음 안에는 이 여인이 고백했던 믿음 역시 강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감히 주님의 제단으로 나오며 말씀드립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
미카엘 안젤로 임멘라트, 예수님과 이방 여인, 17세기
출처: Michael Angelo Immenraet - Jesus and the Woman of Canaan - Exorcism of the Syrophoenician woman's daughter - Wikipedia
첫댓글 놀라운 신비를 명징한 설명으로 깨우쳐 주시는 유스티노 신부님을 우리곁에 보내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김규태 토마스
아이고 제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