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갈터(추대 楸臺)
가래울이라고도 함. 예전에 가래나무가 많아 지어진 지명이라고 전해오지만 우리나라 전역에 흔하디 흔한 가래골이나 가래울 등의 지명은 갈래골, 즉 두 갈래 이상으로 길이나 골짜기가 나뉘는 곳에 있는 마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갈터는 418번 도로의 북쪽으로 꽁바치(雉田), 남쪽으로는 아침가리골과 나뉘는 네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추대는 음차(音借)에 불과하므로 본디와는 뜻이 전혀 다른 지명이 되고 말았다.
2. 꽁바치(치전 雉田)
웃꽁바치(上雉田)와 아랫꽁바치(下雉田)의 두 마을이 있다. 꿩이 많이 내려와 꿩밭(雉田)이라고 하다가 연철(連綴)표기로 꽁바치가 되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꿩밭이 아니라 새밭(乙田), 그리고 더 이전에는 새밭(間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소백산 어의곡의 새밭(乙田)도 산과 산 사이의 마을이라 붙여진 새밭(間田)으로 본다.)
3. 갈전곡봉(葛田曲峰)
칙밭골봉의 향찰표기라고 전해오고 있으나 사실은 치밭골봉이었던 산명이 칙밭골봉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갈전곡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치밭골령이 있는 것만 봐도 그러하다. 결국 위의 꽁바치와 거의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아침가리 (조경동 朝耕洞)
가리는 갈이(耕)의 연철(連綴)표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예를 들자면 소황병산 자락의 안개자니(안개잔 內開孱)와 거리개자니, 방태산 남쪽 기슭의 어두우니(어두원 漁頭原), 주천강 상류의 서마니(섬안 島內) 등이 모두 그러하다. 그러므로 하루갈이, 아침갈이 등 밭 넓이의 단위가 지명으로 되었다는 주장에 귀가 솔깃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삼가리의 지명을 같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한성대학교 땅이름 연구회'에서는 아래와 같은 연구결과를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으므로 한 번 비교해보시기 바란다.
<'诉'은 물, 물가, 분기를 뜻하며 작은 냇줄기 또는 냇줄기가 갈린 곳을 뜻하는 '가'라는 옛말에서 나온 것이다. 诉의 전음인 '갈'은 다시 분음으로 가鿑이 되고 '갈래', '가라'가 되어 이에 관계되는 땅이름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갈'은 고을이란 뜻이 있다. '诉'은 삶의 터전으로 '고을', '골',로 까지 번져왔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고을이 많이 모여 부족국가를 이룬 것이 6가야이다. 여섯 가락국의 가라'도 낙동강 지류 때문에 붙여 졌는데 본디는 '诉'이었을 것이며, '诉',이 '가라', '가리', '걸', '골', '고르'로 변해 갔을 것이다. '诉'의 땅이름으로 갈메마을, 골메, 갈재, 노령, 갈촌, 갈월동, 갈현동, 가로리, 구로리 등이 있다.>
5. 살둔(생둔 生屯)
산과 산 사이(間)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사이(새)뜸이라는 지명이 살뜸으로 불리다가 향찰표기로 생둔이 되고 다시 살둔으로도 불리워졌을 것이라고 본다.
6. 달둔(達屯)과 월둔(月屯)
고어로 산을 닫 혹은 달이라고 한 적이 있었으므로 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달뜸이 향찰표기로 월둔 혹은 달둔으로 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삼둔 중 이둔은 사실 같은 이름인 셈이다. 유달산,팔달산, 추월산, 월악산, 월출산 등의 월(月) 자(字)나 달 자도 같은 경우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월악산은 세 글자 모두가 산이라는 의미이다.
7. 가칠봉(加漆峰)
한자음으로는 단순히 옻칠을 더했다는 뜻이지만 원래는 갓칠봉이었을 것이다. 머리에 쓰는 갓은 그 형상으로 보아 산과 비슷하며 실제로 가장자리 혹은 산의 의미를 가진다. 가칠은 향찰표기이며 우리 나라 산지를 통틀어 아우르는 말이다.
8. 인제(麟蹄)
고구려시대에는 저족현(猪足縣)이라 불리웠다. 돼지의 고어인 돋(혹은 돝)과 다리의 향찰 표기로 보고 돋다리는 돋달의 연철 표기로 이해하
면 돋은 두드러진 높은 땅이름으로도 쓰였으므로 산의 고어인 달과 합쳐져 높은 산지에 있는 고을이라는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희제(稀蹄)라고 불리다가 고려시대에 비로서 인제(麟蹄)라고 불리기 시작했는데 인제는 소양강과 내린천이 합류하는 모습이 기린(아프리카의 실존동물인 기린이 아니라 이마에 뿔이 하나 돋아있으며 사슴 몸에 소의 꼬리, 말과 같은 발굽과 네 개의 다리 앞쪽에 화염 모양의 갈기를 달고 있는 동물로 하루 천리를 달린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의 굽과 닮았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결국 돋달이 멧돼지 다리(猪足)로, 다시 기린의 굽(麟蹄)으로 변 한 것은 우리말이 한자화하면서 의미가 전도되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9. 방태산(芳台山)
인제에서는 방대산(芳臺山)으로 부르고 있으며 홍천군에서는 개인산, 개니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방대산의 한자가 방대산(舫臺山)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산의 주능에 배달은석(배를 매달아 놓던 바위)이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는 사실과 적가리골이 대형 운석이 떨어져 생긴 자리이고 거기에 물이 고여 호수가 되었었을 것이라고 하는 지리학자들의 주장이 있음에 기인한다.
개니산은 위의 아침가리의 설명 중 소황병산의 개자니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즉 하니(한이동), 큰개니(대개인동), 작은개니(소개인동), 어두우니(어두원) 등의 마을을 품에 안고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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