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은 조선에 엄청난 굴욕을 안겨줬다.
오랑캐라 부르던 청의 신하(조선)가 됐고, 조선의 군대가 청을 대신해 명과 싸워야 했다.
인조가 항복한 삼전도에는 청 태종의 업적을 기리는 공덕비(삼전도비)를 세워야 했다.
애초 인조는 강화로 피난을 떠나려 했지만 청군이 한양도성 직전 홍제원까지 들이닥치면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서울 송파구는 인조의 피난길 경로였다.
인조가 피란 도중 쉬어간 마을은 문씨 집성촌이었다.
갈증을 느낀 인조는 물을 청해 마셨는데 맛이 일품이었다고 한다.
문(文)씨 마을의 우물(井·정) 물을 기억하려고 이후로 이 마을을 '문정'이라고 불렀다.
인조가 고개를 넘어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면서 무릎 뒤 오금이 저리다고 했는데, 이후로 이 고개는 '오금골'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마을에 오동나무(梧)가 많고 가야금(琴) 만드는 이가 살고 있어서 오금이 됐다는 설도 있다.
인조 일행을 뒤따라온 청군은 남한산성 길목에 있는 한 마을을 거쳐 진군하려 했다.
그런데, 마을은 남, 서, 북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지형을 이용해 청의 군사들을 물리쳤다.
청의 군대는 다른 길로 가야 했다.
오랑캐(夷·오랑캐 이)를 막아낸(防·막을 방) 이 마을은 이후 '방이골'로 불렸다.
1914년 마을 이름이 아름답지 않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한자를 '꽃다울 방(芳)'과 '흰이름 이(荑)'로 고쳤다.
청은 인조의 항복을 받아 낸 뒤 조선 백성 50만~60만명을 피로인(被虜人)으로 끌고 갔다.
이 중 여성은 2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포로로 붙들려 간 여성들은 가족이 청군에게 속환(贖還:몸값)을 내면 풀려나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렇게 돌아온 여성을 환향녀(還鄕女)라 불렀다.
그러나 조선에 남아 있던 남자들은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냉대했다.
조선 조정이 홍제천을 회절강(回節江)으로 지정하고 회절강물에 몸을 씻으면 과거의 허물이 사라진다는 교지를 내리지만 냉대는 여전했다.
고향에 돌아와 열 달이 지나서 아이를 낳더라도 환향녀가 나은 자식은 모두 오랑캐 자식이라는 뜻의 호로(胡虜) 자식이라 부르며 헐뜯고 업신여기며 무시했다.
병자호란의 피해자는 이름없는 민초였다.
조선에 장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의주부윤(義州府尹) 임경업은 백마산성을 굳게 방비하고 있었지만, 적군은 용장으로 이름이 나 있던 임경업을 피해 한양을 향해 진격했다.
조선의 항복 이후에도 임경업은 압록강에서 철수하는 청군을 급습해 포로로 잡혀가는 조선 백성 120여 명과 말 60여 필을 빼앗았다.
송파구 마천동 동쪽에는 마산(馬山, 천마산)이 있다.
이곳의 샘에서는 깨끗한 물이 많이 나와 가뭄이 심할 때에도 마르지 않았다.
'샘 천(泉)'자를 '내 천(川)'으로 고쳐 '마천리'라고 했다.
지금의 지하철 5호선 마천역 근처이다.
임경업 장군이 마산을 지나가다 말에게 물을 먹인 곳이라고 한다.
마천동에 자리한 남한산에 축조된 산성이 남한산성이다.
오금·거여동에 걸쳐 있던 '개롱리'라는 마을의 이름은 임 장군이 이곳에서 농을 열고 갑옷을 꺼내 입었다는 이야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거여동에 있는 봉우리 '투구봉'은 병자호란 때 임경업 장군이 개롱리에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장소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임경업 장군은 1640년 청나라의 요청에 따라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했지만, 명군과 협력해 청군을 치려 했다.
모의는 탄로 났고 청으로 압송됐다.
도중에 탈출을 기도하기도 했으나 다시 체포돼 1646년 조선으로 압송, 장살(杖殺·매로 쳐 죽이는 형벌)을 당한다.
비극적 죽음은 그의 무용담을 소재로 한 <임경업전>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다.
서해 어부들에게 임경업 장군은 '조기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힌트는 <임경업장군전>에 남아 있다.
임경업 장군이 중국으로 향하다 연평도에 들렀는데, 병사들에게 가시나무를 꺾어오게 해 섬과 섬 사이 얕은 바다에 꽂아두라고 했다.
썰물에 바닥이 드러나자 수많은 조기가 가시나무에 꽂혀 있었다.
이후 연평도 사람들은 사당을 짓고 장군을 조기잡이 신으로 모셨다.
당연히 서해 어민들은 훨씬 이전부터 조기를 잡아왔다.
그러나 비명횡사한 장군에 대한 안타까움이 장군의 죽음을 야기한 청과 조선의 건널목인 서해에서 조기잡이 신으로 신격화된 것이다.
#문정동 #오금동 #방이동 #환향녀 #임경업 #마천동 #개롱리 #투구봉 #연평도임경업
ㅡ왼편은 <임경업 초상>. 흉배에 동식물이 아닌 구름문양이 연속된다. 인조 대에 나라에 공을 세운 무인들에게 내린 흉배라고 한다. 연평도 충민사(忠愍祠)는 임경업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다(사진 오른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