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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부터 7장은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모아놓고 하나님 복음의 핵심을 가르치고 설교한 말씀으로 일명 ‘산상수훈’이라고 한다고 수 회에 걸쳐 말씀을 드렸습니다. 보석 중에 가장 빛난 보석, 가장 비싼 보석이 다이아몬드라고 할 수 있을텐데 예수님의 가르침 중 이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이 그런 중요함을 내포한 핵심적인 말씀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 말씀이 너무 좋아서 미치다시피 이 부분을 탐독했다고 합니다. 이 산상수훈의 특징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생에 있어 생활의 원칙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이 산상수훈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질 생활 철학을 제시하며 생활속에서 가져야할 마음자세와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부터 살펴보는 마태복음 7장은 지금까지 몇 주간 살펴본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의 말씀입니다. 오늘부터 다음 주까지 살펴볼 말씀은 그 중에서도 가장 결론적인 말씀으로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7장 13절부터 23절까지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세상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지를 깨닫고 예수님께서 살아가라고 말씀하신대로 살아가면서 정말 세상에 빛과 소금된 신앙인, 천국백성의 모습을 가진 신앙인으로 참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천국백성의 모습, 첫째는 좁은 길로 가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오늘 본문 마태복음 7장 13,14절에는 두 개의 문과 두 개의 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좁은 문과 좁은 길로 된 삶과 넓은 문과 넓은 길로 된 삶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을 문과 길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결국 어떤 문을 지나 어떤 길의 인생을 사느냐에 따라 목적지가 전혀 달라지고 인생의 결론이 바뀌게 된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앙인이라면 가져야 할 생각, 철학, 원칙을 말씀하십니다. 이 신앙인의 생각과 철학,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 지를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라고 말씀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좁은 문을 통과하여 협착한 길을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인생이 참 인생입니다. ‘좁은 문’, ‘협착한 길’이란 정확히 어떤 삶일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하나하나 지목하여 가르쳐준 삶의 방법이 바로 ‘좁은 문’ ‘협착한 길’입니다. 세상의 일반인들은 항상 넓은 길을 좋아합니다. 자기를 위해 살아가며 자기가 대접받고 인정받는 길을 찾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에 자신도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넓은 길로 표현된 편하고 좋고 대접받고 사람들위에 군림하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좀 더 편하고 좀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좀 더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남들이 하는 것은 내가 다 하고 싶고 남들이 가지는 것은 내가 다 가지고 싶어 합니다. 남들이 대접받는 것 이상 내가 대접받고 싶고 남들의 높은 지위이상 내가 더 높은 지위에 앉고 싶습니다. ‘최소한 남이 하는 만큼은 내가 해봐야 하지 않겠냐?’며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몰리게 되는 사람들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흔히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며 그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생명으로 가는 ‘좁은 문’은 “비좁아서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좁고 협착하다”라고 번역된 원 헬라어의 뜻은 ‘괴롭다’ ‘억눌리다’ ‘힘들다’ ‘어렵다’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어려워서 가기 싫은’, ‘힘들어서 찾기 싫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문, 생명의 길은 세상의 가치관, 세상적 관점으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세상적 관점으로는 ‘힘들고 어려워 피하고 싶은 길’이 ‘좁은 길’ ‘좁은 문’입니다. 일단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일단 이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모든 짐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다’는 말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에 대하여 더 이상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지 않고 그 주권을 주님께 양도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천국가는 하나님 백성’,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은 ‘외로운 길’이고 ‘고생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가의 가사에도 ‘주님께 나아가는 길은 십자가 지는 것과 같은 고통이지만 생명길이기에 은혜로 더 가까이 나아간다’는 고백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은 외로운 길이지만 약속하신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세상적 방식을 미워하며 세상과는 구별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열왕기상 8장 53절입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심 같이 주께서 세상 만민 가운데에서 그들을 구별하여 주의 기업으로 삼으셨나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처음 이스라엘을 택하신 민족으로 세우실 때도 그 의도는 바로 하나님 백성은 세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복된 삶이라는 것을 택하신 백성을 통해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오로지 특별한 방식대로 특별한 은혜를 누리며 세상 가치관과는 구별되어 살아가며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세상의 방식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사는 우리 사는 이 세상 사람들은 넓은 길을 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넓은 길’은 고속도로같은 유형의 대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편안함, 자유로움, 권력, 온갖 누리는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돈, 명예, 권력, 지식,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온갖 힘으로 편하게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인간에게 있는데 그것이 바로 ‘넓은 길’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신앙인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가치관과는 다른 삶을 살아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우리는 정말 힘든 생활, 어려운 삶도 기꺼이 살아가며 세상과는 구별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인이 가야할 길입니다.
우리가 세상과는 구별된 인생이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욕망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세상은 자신이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기며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킬 일들을 찾아서 살아갑니다. ‘넓은 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길이 편하고 재미있고 즐겁기에 그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온갖 쾌락, 즐거움, 만족, 행복을 주기 때문에 그것을 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성경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싶다면 내 행복, 내 만족, 내 욕구, 내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려 놓아야 할 것중 가장 내려놓기 힘든 것이 바로 경제적 풍요입니다. 재력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내가 많은 사람들보다 더 인정받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세상은 돈을 소중하게 여기기에 돈을 위해 영혼을 팔고 돈을 위해 양심을 팝니다. 돈을 위해서는 자신의 자존심, 자신의 명예를 내 팽개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양심대로 살면 돈을 벌 수 없고 믿음을 지키면서 살면 돈을 벌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양심이나 믿음을 지킬 것인지, 돈을 벌 것인지 양자택일을 해야 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좁은 길을 가기로 작정한 사람은 청빈하기를 각오해야 합니다. 가난이 무서운 사람은 좁은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그저 넓은 길로 가면서 편법, 불법을 저지르고 양심을 버리고 신앙을 버려야 부자가 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처세술이고 이 시대의 성공 비결입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우리의 직장과 사회에서 적당히만 하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고 입신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과감히 거부하고 청빈을 감수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좁은 길로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좁은 문과 좁은 길을 택할지, 세상적 가치관의 넓은 문과 넓은 길을 택할지 잘 생각하고 바른 길을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고독을 감수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다가 간혹 “정말 난 혼자구나”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쓸쓸하지 않을텐데 주변의 사람들은 나와 너무나 다른 것을 느낄 때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넓은 길로 간다고 오늘 말씀에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넓은 길로 가면 그곳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곳은 너무 편하고 그 곳은 재미도 있고 그 곳은 넓어서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넓은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 예수님은 “좁고 협착한 길” “좁은 문”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이런 길을 택하는 사람은 너무나 적습니다. 그래서 그 길은 언제나 외롭고 고독한 길입니다. 이 길을 택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너무나 적기에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삶을 같이 공유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시대에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좁은 길로 가려고 작정한다면 기꺼이 고독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성경에서 가르쳐주신대로 살아보려고 힘써보십시오. 얼마나 고독한가? 말씀대로 살아갈 때 신앙이라는 이유만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외면을 당하고 불이익을 당합니다. 내 이익을 챙기지 않고 서로 용서해 주고 이해해 주며 내가 더 많이 베풀어 주고 섬겨주려고 할 때 나만 이용당하는 것같은 느낌을 받고 그로 인해서도 고독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고독을 감수할 각오가 없다면 절대 이 길을 걸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라는 사람이 ‘좁은 문’이라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책 속에서 여주인공이 이렇게 독백을 하죠. “주여, 주께서 내게 보이신 그 길은 너무나 좁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 길은 홀로 가야 하는 고독한 길입니다. 이 길은 고독을 감수할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자기부정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좁은 길을 가려면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내려놓아야 우리는 이 문을 들어갈 수 있고 이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서 자기 몸집도 크고 자기 소유의 부피도 큰 사람은 이 문도 지날 수 없고 이 길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며 자기를 낮추시고 자기를 내려놓으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축소해야 합니다. 축소하고 축소하여 결국은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자신을 확대하는 사람은 절대 이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정말 바른 가치관, 올바른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참 옳은 신앙인의 삶은 항상 좁은 문, 좁은 길을 소망하며 세상과는 구별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남들이 하는대로 살아가는 삶은 멸망의 삶이고 남들이 하지 않고 세상과는 구별되어 정말 힘들고 어렵고 따라가기 힘든 그 삶의 모습대로 살아갈 때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기대하며 좁은 문, 협착한 길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천국백성의 모습, 둘째는 거짓된 가르침을 조심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오늘 본문 마태복음 7장 15절에서 우리에게 피해야 할 것이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왜 이런 경고를 주셨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고를 주신 것은 참된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거짓된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버리는 것도 중요함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거짓 선지자’란 ‘좁은 문, 좁은 길을 통해서 생명에 이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 자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오히려 ‘넓은 문, 넓은 길이 바르다’고 가르칩니다. “편한 것, 좋은 것, 많이 가지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구약성경에서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오직 평강만 외치며 사람들이 듣기 좋은 것만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을 행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뻔뻔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으로 인해 백성들은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습관적이며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세상에서 누릴 권력과 온갖 인기를 누리고 넓은 문, 넓은 길로 다니며 멸망의 길을 찾아갑니다. 양의 옷을 입고 살아가지만 속으로는 노략하는 이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도 거짓 교사들의 죄악을 지적하며 거짓 교사를 조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너무나 편한 길, 세상적 성공이 영적인 복인 양 강조하는 가르침을 듣게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참 신앙인은 이런 것이 신앙의 목표가 아닌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의 진리인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발견하며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냥 목회자의 말이라고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본질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항상 성령으로 영혼이 깨어 있어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들으면서 참 진리, 바른 신앙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을 분별하기 힘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태복음 7장 20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와 참된 가르침을 주는 주님 제자의 차이는 ‘열매’라고 말씀하십니다. 16절에서 “가시나무”와 “엉겅퀴”로 예시된 나무들은 열매가 없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거짓 선지자를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21절을 보니 이들의 입으로 “주여 주여”를 외치며 예배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경해석하며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로 선지자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22절을 보니 거짓 선지자들은 ‘심지어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기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놀라운 사역, 위대한 은사를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 천국에 들어갈 열매를 맺지 못하고 지옥불에 던져질 영혼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흔히 외형적인 특별한 은사들을 보며 ‘영성이 있다’, ‘뛰어난 목회자다’라고 추켜세우며 우리 주변에서 은사사역을 하는 목회자들을 보며 칭찬하고 우러러봅니다. 방언기도를 하고 신유은사를 행하고 귀신을 내어쫓는 듯한 이벤트를 행할 때 어떤 분들은 그런 사역자에게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선지자’,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역자’라고 평가하는 경우도 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 예수님은 그런 사역의 모습이 진정한 열매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한 은사로 보여지는 여러 사역을 하고 참 신기한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을 보게 될 때 잘 분별하며 이 사역자가 참 사역자인지 거짓 사역자인지 잘 분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열매의 특징으로 본성과 내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수십 년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열매가 뭐냐고 물으면 ‘기도, 주일성수, 찬양, 전도, 성경공부, 교회봉사, 헌금’등등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신앙행위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것이 바로 현 시대 교회의 아픔이며 현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서 우리 심령의 가난과 애통함, 온유와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마음의 청결, 화평케 하는 심령,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허락받을 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나타날 열매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나무는 찍혀 불에 던져버려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9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것은 거짓 선지자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며 좁은 길을 걸어가지 않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잘못된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참된 인생을 살아가고 결국은 천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할 영혼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천국 백성이 살아가야 할 그 길을 분명히 보여주시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여전히 우리의 심령을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서는 말씀대로 살아갈 것을 줄기차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원하지도 않고 내 삶이 그에 의해 통제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내가 신이 되어야 하고 내 의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인간입니다. 우리가 신이 되고 싶어하는 본성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사용했던 방법입니다. 사탄이 하와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너가 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치관대로 신앙생활하며 우리의 유익을 위해 신앙생활을 이용할 때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의 뜻에 대한 관심이나 경외함이 없고 오직 우리 자신들의 유익만 생각하는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한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가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를 우리가 빼앗아 우리가 하나님의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우리 스스로도 거짓 선지자가 되지 마시고 이단 사이비 사설이 난무하고 수많은 적 그리스도들이 자칭 재림 예수라고 우리를 미혹하는 이 시대 현 세상에서 올바른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아진 거짓 선지자, 이단 사이비 학설이 우리를 미혹하는 이 때 그 거짓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고 참된 신앙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말씀을 잘 분별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인지 아닌 지를 분별하면서 우리는 열매가 어떠해야하는 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고 세상적 가치관이 우리를 흐트려놓지 않도록 제대로된 영적 관점, 올바른 신앙가치관으로 우리의 세상을 제대로 분별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참된 주님의 교훈을 발견하여야 하겠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며 바른 가르침을 이해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대 주님 오실 그날 이 가까워질수록 이단사이비도 많아지고 거짓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며 그리스도의 영혼을 멸망으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이런 세상속에서 우리가 제대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협착한 길로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좁고 협착한 문과 길은 믿음의 조상이 걸어왔던 길이며 믿음가운데 살았던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그 길과 그 문은 항상 십자가를 의지하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을 생각하며 “정말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고 생각해 볼 때 깨닫게 되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말은 십자가를 알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의미합니다. 결국 십자가에서 자신은 부인하고 인간으로서의 욕망은 내려놓고 인간으로서의 모든 편한 삶은 내려놓고 인간으로서 세상적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구원받는 사람으로 믿음을 선물받는 사람으로써 주님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 생명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목사가 되어도 넓은 길, 넓은 문을 찾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어서도 넓은 문, 넓은 길을 찾고 성도가 되어서도 넓은 문, 넓은 길을 찾으니 직분자가 되고 사역자가 되어 봉사하고 사역하였으면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참 신앙인이기에 좁은 문으로 들어갈 각오를 하고 있습니까?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기에 좁은 길로 기꺼이 걸어가고 있으십니까? 저와 여러분, 이제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며 주님 가신 그 길,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생명의 길을 함께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제대로 분별하며 참다운 성령의 은사가 우리가운데 나타나고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천국백성으로 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