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3일 (경주관아와 옥터/ 진목정성지/ 구룡공소)
- 경주관아와 옥터(순교 사적지) :
천주교 신자들이 사학 죄인으로 몰려 관장 앞에 끌려가 문초와 형벌을 받은 곳으로 1815년 을해박해 때에는 40여 명이 고초를 당하였다. 1860년 경신박해 때에도 10명의 신자들이,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허인백 야고버 ,김종륜루카,이양등 베드로가 울산 장대벌에서
군문효수되기전 체포되어 갖은 문초와 형벌을 받고도 신자임을 당당히 드러낸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과거의 역사적 흔적은 깨끗이 사라지고, 지금 경주 우방 명사마을 아파트로 들어서서,
11단지옆 작은 돌계단을 오르면
2014년 시복식을 기념하여 감옥터 자리에 세운 비석만 남아 있습니다.
-경주관아
이 곳도 경주문화원으로 변화되고
성건성당이 옥터자리를 지킵니다.
성당입구에 성지 자료가 있구요,
우리는 이층 성당으로 오릅니다.
천장의 모습이 참 특히하네요.
- 진목정성지(순교사적지) :
1801년 신유박해때 신자들이 피난 와서 살게된 곳으로 추측하며, 1837년 파리 외방 전교회의 신부들이 ,1850년경 부터는 최양업 신부에 이어 다블뤼 주교와 리텔 신부도 상선필과 이곳을 순회 선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순교자들이 숨어 살던 범굴과 진목정 공소와 세 순교자들을 합장했던 묘지가 있다.
진복팔단의 8각형 모형을 한 천장에서 비취는 자연광
호랑이 굴에서 근 2년간의 생활을 기록한 색 유리화.
혹독한 고문과 배교의 유혹을 물리치고
오직 하느님만을 믿어 처형장으로 나아갈때 "천당복 마당에 들어간다" 하신 *이 양등베드로 성인의 모습이 보이고
* 이순이 루갈다의 옥중편지등 많은 교회서적들을 직접 필사하신 *김종륜 루카 복자.
참수전에 군사들을 돌아보며
" 나중에 부활할 육신이니 머리를 날쌔게 베고 또 머리를 분별해달라"고 하면서 부활신앙을 확고히 나타내신 *허인백 야고버 복자.
세 분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되었디가 지금은 대구 신정동 복자성당으로 모셔져 여기는 가묘입니다.
진목 공소로 안내하는 진목삼거리
울울창창 한 대나무 밭 뒤로 빼꼼이 보이는 진목성당. 공소는 숨어서 보이질 않다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옛날 우리 외가 모습을 많이 닮은 듯
정겨운 서까래와 대들보
안에서 여는 창문도 예술입니다
- 구룡공소(순례지):
구룡산 (675M)정상 가까이에 있는 공소로 첩첩산중에 위치하고 살티의 김영제 베드로는 병인박해때 간월에서 체포되어 풀려난 뒤 이곳으로 와 3년간 살다가 다른 신자들과 함께 다시 언양의 안살티로 가서 산다.1952년 10월 이영조 가밀로 회장을 중심으로 공소예절을 거행하기 위해 신자들이 모여있을때 빨치산 12명이 침입하여 총을 쏘았으나 아무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경산시 용성면 구룡산 중간 부분쯤에 하차하여
녹음이 짙은 산 속길을 포장된 길을 오르라니 무더위에 땀방울이 뚝 ~떨어지고,
심심산골 발 아래로 보인는 산 그리메 . 우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훤~~히 내려다 보이지요.
초창기때의 피정의 집과 종탑이 보입니다. 희미한 계단길이 보이나 잡초와 거미줄 투성이라 탐색 발길을 접고
공소로 내려갑니다.
야외제대에서 드리는 기도와 성가로 봉헌하고
아담한 공소
담벼락엔 공소를 성역화 하면서 경주 감영에서 발견된 형구를 가져다가 설치하였네요.
공소를 가득채운 백합화의 향기가 성모님을 둘러쌓고
신부님이 쓰셨던 방의 모습. 담장이 아주 예술적입니다
아주 옛날의 그때 그 시절의 공소마을 모습.
십자가의 길 도 귀한 자료입니다 .
용성성당 신부님께서 한달에 두 번 미사를 집전하신답니다
이렇게 우리 순례단도 일정을 끝내고 한자리에 앉아 웃음꽃을 피우고
뒤 돌아가는 두 여인의 옷자락엔 선조님의 믿음의 향기가 나풀거립니다....
첫댓글 빅토리아님!
순례를 다녀오신 후 느낀 소감과 함께 실감이 가는 핸폰 사진을 카페에 게시하여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빅토리아님의 수고는 회원님들 가슴에 오래~ 오래~ 간직될 것으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