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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줍는 룻
룻 2:1-7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룻 2:1-7 /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일하다] 나오미에게는 남편의 친척이 한 사람 있었다. 이 사람은 남편 엘리멜렉의 일가붙이로 재산이 많은 마을 유지였으며 이름이 보아스였다. 2) 하루는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님, 밭에 나가고 싶어요. 혹시 저를 잘 봐주시는 분이라도 만나면 그분 뒤를 따라다니며 이삭이라도 주워 올까해요' 그러자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3) 룻이 밭에 나가 곡식 거두는 일꾼들을 뒤따라가며 이삭을 줍는데 그 밭은 공교롭게도 엘리멜렉의 일가붙이인 보아스의 밭이었다.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와서 곡식 거두는 일꾼들에게 `여호와께서 자네들과 함께 하시길 바라네' 하고 인사하자, 그들도 `여호와께서 어르신께 복 내리시길 빕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보아스가 곡식 거두는 일꾼들을 거느리고 있는 머슴에게 물었다. `저 젊은 여인은 누구인가?' 6) 곡식 거두는 일꾼들을 거느리고 있는 머슴이 `저 사람 말씀이신가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여인이라고 하더군요. 7) 곡식 거두는 일꾼들을 뒤따라가며 곡식단 사이에서 이삭이라도 줍게 해달라고 어찌나 애원을 해대는지. 아침부터 와서 농막에서 잠깐 쉰 것 빼고는 지금까지 저렇게 계속 일하고 있어요' 하고 대답하였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생계를 위해 이삭줍기에 나섭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으로 가게 됩니다.
유력한 자 보아스(1)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의 친족이며, 베들레헴 근교에 많은 밭을 소유하고 있는 부유한 지주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다 지파의 한 방백이었던 살몬이며 어머니는 여리고 성에서 구원받은 라합입니다(4:18-22; 마 1:5). 보아스를 가리켜 유력한 자라고 하는데 이는 부유한 자 또는 용맹스러운 영웅으로 표현됩니다. 자신의 가문 중에서 부유하고 유복한 자로서 친족들을 위해서 많은 도움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보아스는 나눔을 통해 기쁨을 찾는 자였으며, 고아와 과부를 환란 중에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약 1:27).
이삭 주우러 나가는 룻(2-3) 율법에서는 추수하는 밭에서 빈민을 위해 이삭을 남겨두라고 명했습니다. 그것은 빈민들의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레 19:9-10). 이처럼 룻이 이삭 주우러 나간다는 것은 그들의 생활이 많이 어려웠지만, 시어머니를 봉양하려는 며느리 룻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전에 어떠한 삶을 살았든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이전의 생활을 그리워하거나, 체면 때문에 궂은 일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룻은 시어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떨쳐내고 이삭 주우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룻이 이삭을 줍기 위해 간 곳이 우연히도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우연히 찾아간 곳이지만 배후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보아스와 룻의 만남(4-7) 히브리인들의 인사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웃의 안부를 물을 때(왕하 4:26)와 사람을 만날 때나 헤어질 때 샬롬(평안)이라고 합니다(왕하 5:21; 삼상 1:17). 둘째로 존경과 충성을 표시하는 인사로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대하 20:18)과, 무릎을 꿇어 절하는 방식(창 42:6)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이런 전통적인 인사법과는 달리 먼저 자기 밭에 와서 일하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축복을 선언하는 인사를 합니다(시 129:8). 일꾼들도 그에게 축복이 내려지기를 기원합니다. 이러한 인사는 주인과 종이라는 관계에서는 쉽지 않은 표현으로 보아스는 종교적으로도 경건한 사람으로 자신의 종들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주인이었습니다. 이런 보아스가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을 발견합니다.
적 용 : 시어머니 나오미를 향한 룻의 마음과 행동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일 내가 룻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무슨 일을 행함에 있어 견마지로(犬馬之勞)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보는 사람으로 마음을 흐뭇하게 합니다. 특히 누군가를 위해 열정을 바치며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을 보면 무척 믿음직해 보이기도 하며,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두려운 것 없이 무엇이든 잘해 낼 자신감마저 듭니다. 이방 여인인 룻은 나오미와의 생계를 위하여 이삭을 주으러 나갑니다. 아침부터 잠시 집에서 쉬는 것 외에 최선을 다합니다. 룻이 이삭을 줍던 밭은 우연하게도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입니다. 보아스는 깊은 절망에 빠져있는 나오미에게 한줄기 희망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룻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 묻힌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설 교 >
밭에서 이삭을
룻기는 짧은 책입니다. 스토리가 간단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룻기는 소망의 책이며 위로의 책입니다. 이방인같이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일지라도 선민(選民)이 될 수 있고, 예수님의 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어서 만세에 복을 받은 여인 룻.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을 주는 책이 바로 룻기서입니다.
룻기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한 책입니다. 슬프고 불행하고 버림받은 한 여인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아 보아스와 함께 복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히 담겨져 있는 책이 바로 룻기서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과 슬픈 일을 만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넉넉히 이길 수 있고 잘 될 수 있다라고 하는 신앙과 용기를 가져다 주는 책이 바로 룻기서입니다.
룻기에 나오는 엘리멜렉과 나오미라고 하는 이 두 부부는 베들레헴에 살다가 흉년을 만나 모압 지방으로 가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괴로움이 어딘들 없겠습니까? 모압 땅에는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론과 기룐 이 두 아들을 데리고 간 이 가정에 큰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됩니다. 남편이 죽게되었습니다. 또 자부를 보고 얼마 되지 않아서 아들 두 형제가 다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얼마나 슬프고 어려운 일을 만나는지…. 그 때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매우 낙심하고 절망하였습니다. '이제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야 되겠다.' 그래서 며느리 둘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고향으로 가야되겠다. 이 땅에 더 이상 소망이 없구나. 다 잃었구나.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그러니 너희들도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기도 없고 하니 이곳에서 재혼을 하여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맏며느리인 오르바는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룻이라고 하는 여인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니에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와 함께 가겠어요.]}
"아니다. 무슨 소망이 있겠느냐? 여기에서 살거라."
{아니에요. 저는 어머니와 함께 살면 행복해요.}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너는 그렇게 할 수 없지 않느냐?"
{아니에요. 저도 하나님을 믿어요. 어머니의 야훼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거예요. 어머니가 가시는 곳은 어디든지 갈 거예요.}
"얘야, 내가 무슨 소망이 있냐? 돈이 있냐? 자식이 있냐? 아무것도 없는데…."
{아니에요. 저는 그런 것은 괜찮아요.}
그리고 어머니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쪽박하나 없는 가난하고도 비참한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집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룻이 아침 일찍 나가서 남의 집 밭에 이삭을 줍기 시작합니다. 마침 그 밭주인은 부유한 집이었습니다. 보리를 추수할 때였습니다. 열심히 이삭을 주웠습니다. 하루는 밭주인인 보아스가 말했습니다.
"저 뒤따라오는 여인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네, 그는 모압여인인데요, 나오미와 함께 살아가는 아주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얼마나 시어머니께 효도하는지요..}
"아, 그러냐?"
그래서 점심시간에 불러다가 같이 먹었습니다.
"너희는 이 여인을 괴롭히지 말라. 이삭줍는 여인이라고, 이방 여인이라고 멸시하지 말아라.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좋은 거, 이렇게 이삭을 다 베지 말고 넝큼넝큼 남겨서 이삭을 많이 주워가게 해라."
사랑을 베풀었어요. 나오미가 보니 집에 들어올 때마다 룻이 이삭을 많이 주워오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이건 이삭 같지 않구나. 추수한 것 같구나. 어디서 이렇게 거두었느냐?"
{예, 보아스라고 하는 분이 사랑이 많고 긍휼이 많아서 이렇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그러냐. 보아스라고?"
이 어머니는 보아스가 하나님이 룻을 위해 예비해 주신 사람이란 것을 금방 알았습니다. 얼마나 좋은 시어머니인 줄 모릅니다.
"오늘밤에 보아스가 노적가리 밑에서 잠을 잘 테니 너는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보아스의 밭으로 가거라. 밖에 있다가 보아스가 깊이 잠들면 그 이불 속으로 들어가거라."
밤이 왔어요. 룻은 시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깨끗하게 옷을 갈아입고 아무도 없는, 모두 잠든 깊은 밤…. (여러분. 너무 조용할 필요 없습니다.) 보아스의 밭으로 가서 그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보아스가 깜짝 놀랐습니다. 누군가 와 있습니다.
"너는 누구냐?"
{예. 저는 불쌍한 룻이에요. 이삭 줍는 룻이에요.}
"그러하냐? 내가 너의 뜻을 알겠다. 내가 오늘 낮에 베들레헴의 장로들과 지도자들에게 이 일을 고해서 내가 모든 절차를 밟아서 너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래서 보아스는 베들레헴의 모든 장로들과 친족들과 어른들 앞에서 자기가 룻과 결혼해야 될 입장을 자세히 설명하고 룻과 보아스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아 이삭줍던 여인이 주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슬픈 여인이 이제는 한없는 행복을 누리면서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 자식이 바로 다윗 왕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축복 받는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영광스럽게 올라오는 훌륭한 여인, 만대에 행복과 영광을 누리는 여인이 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잃어버린 여인이요 과거를 생각하면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면서 모든 상처와 아픔을 잊어버리고, 절망적으로 인생을 보지 않고, 불평 불만하지 않고 신세타령하지 아니하고, 허무주의에 빠지지 아니하고, 되는 대로 살지 아니하고, 좌절과 절망 속에서 슬퍼하지 아니하며, 고민하고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면서 앞을 바라보고 끊임없이 나아갈 때에 위로의 하나님이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 이 길을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삶은 어떤 어려움이나 절망이나 험산 준령이나 어떤 재난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우리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이겨낼 수 있고,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 앞에 있는 어떤 장애물이라도 넘을 수 있다는 소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책이 바로 룻기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당하는 어떤 일이라도 우리는 낙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시험 당할 즈음에 반드시 피할 길이 있고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감당치 못할 일은 없습니다. '이제 끝났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끝이 아닙니다. 길이 있습니다.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내 앞에 있는 것만 보지말고 눈을 높이 들어서 주님을 바라보고, 위를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백혈병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또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에 바이러스 균이 침투했습니다. 눈이 360도 돌아가 버렸습니다. 온 몸이 뒤틀립니다. 바싹 말라 가지고 대소변도 다 받아내야 합니다. 이 아이는 이 주변의 학교에서 전교 1등하는 아이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이런 절망의 일, 슬픈 일, 고난, 시험, 사고를 막상 당하게 되면 모두가 벌벌 떨게 됩니다. 다 한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하고는 거리가 멀다하지만 한순간에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다 그렇습니다. 100%가 과거에서부터 계단식으로 찾아오는 어려움은 하나도 없습니다. 한순간에 자고 일어나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고 한 순간에 그런 일이 내 앞을 가로막습니다.
우리들은 일단 우리 주님 앞에 밀레와 같이 손을 모으고 기도하면서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섭리하시고 역사 하시고, 하나님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시는가? 너희는 가만히 있어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심을 보라고 말씀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깁니다. 감당합니다. 승리할 줄 믿습니다.
■ 저는 집이 시골이었습니다. 방학이 되어 집으로 들어갈 때 차를 타도 3시간, 4시간이 걸립니다. 집에 가면 언제나 밤이 됩니다. 막차를 4시 30분에 타면 7시 70분, 8시에 내립니다. 그 다음부터는 걸어서 가야 하는데 여름에는 큰 강이 가로막아 섭니다. 물이 내려갑니다. 그러면 강물을 돌아갈 때도 있고 건널 때도 있습니다. 높은 산을 넘습니다. 산이 너무 높습니다. 인적이 없습니다.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습니다. 몇 시간을 걸어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들었던 귀신 이야기, 호랑이 이야기가 한몫 다 살아납니다.
그러나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나는 이 산을 넘어야 한다. 나는 넘어가리라. 나의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나가리라.' 담대한 맘으로 올라갑니다. 높은 정상에 오르면 늘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큰 짐승은 아닌데 흙을 뿌리는 짐승이 나타납니다. '헤헤'하며 뿌립니다. 깜짝 놀랍니다. 고양이보다는 크고 진돗개보다는 조금 작은 짐승이 싹싹 뿌리며 가는 길을 가로막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앞에 캄캄한 밤이 있을지라도 밤을 건너야 되고 산을 지나야 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시험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슬프게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왜 나 혼자만 이런 어려움을, 이런 불행을, 이런 문제를 당하나?' 이것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시험이 더 큰 시험이 됩니다. 슬픔이 더 큰 슬픔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고 문제를 바라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을 바라봅니다. 다윗을 바라봅니다.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박종순 목사님은 수술하고 너무 아프실 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 진통제도 소용없고 견딜 수 없는 그 때에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양손 양발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하니 위로가 되고 동시에 아픔을 이길 수가 있더라는 겁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가난하십니까? 머리 둘 곳 없는 마구간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억울하십니까?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부끄러우십니까? 속옷만 입고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본래 십자가의 주님에게는 앞을 가린 천이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그림들은 작가들이 가리워 놓은 겁니다. 아주 창피를 당하라고 다 벗기는 겁니다. 주님이 나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셨습니다. 가난하셨습니다.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무덤에 가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면 언제나 이길 수 있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헬렌 켈러는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았고 이 세상 떠날 때는 "아. 나의 생애는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뒤돌아보니 모두가 아름다웠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삶입니다. 주님이 나의 길을 동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가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김활란 박사는 이 세상 떠날 때에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울지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천국 간다고 말했습니다. 죽음만 보지 마십시오. 죽음 너머에 천국을 바라보십시오. 뒤돌아보며 괴로웠던 거 아팠던 거 슬펐던 것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많고 많았던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의 손길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과거는 모두 감사의 발걸음이었고 은혜의 발걸음이었고 영광스런 축복의 발걸음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과거를 세상을 나쁘게 보지 마십시오.
♬ 저 산과 들을 보라 참 아름답구나
길가의 고운 꽃도 주님의 솜씨라
저 공중 나는 새도 다 먹여 주시니
그 사랑하는 자녀 돌보지 않으랴
온갖 귀한 선물 주님이 주신 것
그 풍성하신 은혜를 다 감사 드리세 다 감사 드리세 ♬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아름답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집안을 잘 꾸며 놓은 것 같지만 내가 꾸민 것만 보기 때문에 답답합니다. 창문을 열고 만 군의 하나님 창조자가 만드신 온 우주와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나만 바라보고 세상만 바라보면 슬프고 괴롭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시는 발걸음, 함께 하시는 발걸음, 주님이 동행하신 과거를 뒤돌아보면 모두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주님의 사랑뿐입니다. 여러분의 과거를 잊어버리십시오. 특별히 나쁜 과거를 들추어 내지 마십시오. 부부사이에 행복의 비결은 미래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십시오. 아픈 과거, 잘못된 과거를 들추어 내지 마십시오. 어떤 분은 처갓집까지 다 들추어내는 분이 있습니다.
왜 들추어냅니까? 나와 너만 이야기하십시오. 미래를 이야기하십시오. 저도 우리 집 사람이 과거가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짐작하건대 '저렇게 미인인데 없을 리야 있겠나?' 그러나 물어보지는 않습니다. 오늘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 사랑하면 그만입니다. 나는 오늘에 대해서 감사하고 미래에 대해서 무한한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나라, 발전하는 나라의 문화는 언제나 미래 지향적입니다. 과거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미국을 보십시오. 얼마 전에 클린턴에서 부시로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바뀐 것입니다. 클린턴은 8년 동안 스캔들이 많은 분입니다. 지금 공화당에서 들추어내려고 하면 별의별 것을 다 집어 낼 수 있습니다. 입도 뻥긋하지 않습니다. 농담도 하나 안 합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하나도 말하지 않고, 온 민족이 미래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절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클린턴의 애인이었던 그 여자의 이야기가 지금쯤은 막 드러날 텐데 한마디 나오지 않습니다.
지난 닉슨 대통령은 중간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났습니다. 그 다음에 대통령은 그 문제를 사면을 해버리고, 덮어 버리고, 자기가 다 책임지겠다고 하고 깨끗하게 미래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한 사람도 과거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작년이 아니라 할아버지까지 다 말합니다. 몽땅 다 들추어내는 겁니다. 어쩌자는 겁니까? 그 사회가 편할 수 있습니까? 그 나라가 발전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할 일이 많은데, 우리 앞에 장애물이 많은데 좋은 약속의 기회를 다 놓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이 행복하려면 과거를 다 덮어놓고 언제나 미래를 향하여 창문을 여시고 노를 저으시기 바랍니다.
♬ 허락하신 새땅에 들어가려면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
우리 거할 처소는 주님 품일세♬
룻이라고 하는 여인은 과거에 얽매여 있지 않았습니다. 너무 아프고 괴롭고 슬픈 하나하나의 일들이 어느 것도 룻을 붙잡지 않습니다. 룻은 이삭을 주우며 감사하면서 밭에 나가서 열심히 일합니다. 교회에 왜 나옵니까? 교회는 이삭 주우러 나오는 겁니다. 기도의 이삭을 줍고, 은혜의 이삭을 줍고, 말씀의 이삭을 주우러 나오는 겁니다. 교회에 오면 은혜를 받습니다. 교회는 밭입니다. 일없는 사람이, 상처받은 사람이, 절망의 사람이 밭에 와서 일하는 겁니다. 하찮은 일 같지요? 세상에 굉장한 일에 비하면 예배가 하찮은 것 같지요? 그러나 은혜는 밭에서 받는 겁니다. 이삭 주우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삭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믿음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자에게는 이삭을 통하여 보아스를 만나게 되는 것처럼 이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부유한 삶으로 이끌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룻기서는 우리에게 근면도 가르쳐 줍니다. 집안에 있으면 안 됩니다. 나와야 됩니다. 성도들 중 어떤 분은 시험 들어 안 나오고, 죄 지어서 안 나옵니다. 어떤 교인에게 "왜 안나오셨어요?"하니까 "토요일에 간부회의를 했는데 한잔해서 못 나옵니다."고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한잔해도 나와야 합니다. 교회는 아버지께 오는 겁니다. 잘되면 잘되어서 나오고, 못되면 못되어서 나오고, 죄지으면 죄지어서 나오고, 한잔하면 한잔해서 나오는 곳입니다. 왜? 여기 와서 은혜를 받으니까….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여 집니다. 여기 나오면 시원합니다. 여기 나오면 은혜를 받습니다. 술 먹고 답답할 때 주님 품에 와 보세요. 해장국을 주십니다. 예배시간에 말씀 들어보십시오. 해장국입니다. 시원해지고…. 할렐루야!
치료받는 은혜가 주어질 줄 믿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께 나와야 됩니다. 가정 불화가 일어나도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화목케 하는 사랑이 내 안에서 역사하게 되고 뉘우침도 얻게 되고, 미안한 것도 생각나게 됩니다. 하나로 만들어 주는 끈을 어디서 찾습니까? 교회에서 찾습니다. 답은 교회에서 나옵니다. 밭에서 나옵니다. 일을 해야, 땀을 흘려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열심을 내어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문을 닫으면 안됩니다. 갇힙니다. 죄를 짓고 문을 닫으면 죄인이 되어 버립니다. 죄를 짓고 주님 앞에 나오면 은혜를 받아 의인이 됩니다. 모든 시험, 걱정, 근심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와서 모든 사정을 아뢸 때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구원의 손길, 긍휼의 손길을 펴 주실 줄 믿습니다.
열심 있는 성도이어야 합니다. 룻은 열심히 이삭을 주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주5일 근무제가 곧 통과되리라는 뉴스를 듣습니다. 저도 몇 번을 언급했습니다. 성서적으로도 이것은 맞지 않고 우리가 한창 살아야 할 때에 우리의 정신적으로도 이틀을 쉬면 얼마나…. 그렇지 않아도 지금 사회가 모든 면에 어려워 가는데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로마가 멸망할 때에 휴일이 176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휴일이 76일, 79일 정도 되는데 여기에 52일을 더하면 120일이 넘습니다. 프랑스하고 비교하는 분들이 있는데 프랑스는 우리보다 500년 앞서 가는 나라입니다. 우리 보다 경제적으로도 앞서 갑니다.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로 개발도상국과 다름이 없고 불안하기 그지없는데 다 놀면 우리의 정신 상태도 해이해집니다. 사람이 잘 살게 되려면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합니다. 근면, 절제, 검소, 이 세 가지가 핵심입니다. 그런데 일을 안 하려고 하고 막 놀려고 하고 먹으려고 하면 우리가 어떻게 따라 붙일 수 있고 많은 경쟁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고 우리를 누르고 있는 강대국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 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부지런해야 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합니다. 예수 믿으면 바쁩니다. 바쁘게 살아야 됩니다. 이삭을 주워야 됩니다. 부지런해야 됩니다. 그럴 때 내 영혼이 항상 강건하고 힘을 얻는 복된 삶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자에게는 언제나 좋은 길이 있습니다. 주님은 앞에서 기다립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나아가면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새벽 제단을 쌓으면 쌓을수록, 무릎을 꿇으면 꿇을수록 주님과 우리 사이는 가까워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절대로 낙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공중에 새를 보라. 들에 백합화를 보라." 하나님이 먹이시고 기르시는데 우리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 문제로 고생합니다. 요사이 많은 학생들은 교실을 뛰쳐나가고 있습니다. 집을 뛰쳐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아버지가 아들을 찾기 위해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페니야 나는 너를 용서한다. 기다린다. 내일 아침 9시에 신문사 앞에서 만나자. 페니의 아버지로부터." 그 다음날 나가니까 페니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800명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집을 나간 아이들이 많은지…. 여러분, 공부가 힘들다고 피해서 가면 더 어려움이 있습니다. 공부가 힘들어도 넘어서면 좋은 날이 옵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항상 공부만 보면 안 됩니다. 공부가 끝나고 조금만 이 어려움을 지내면 좋은 날이 오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요사이 우리나라도 동거 문화가 유행한다고 합니다.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도 우리 교회 청년 두 분에게 물었습니다.
"왜 결혼하지 않느냐?"
{친구들을 보니 결혼하는 것이 더 한심해요. 화장도 못하고 먹고살기에 바쁘고 부부 싸움은 늘고 말이 아니에요. 저렇게 살 바에야 왜 결혼을 해요?}
여러분 결혼하면 싸웁니다. 아기도 낳습니다. 그러나 항상 낳는 것은 아닙니다. 몇 만 낳고는 끝납니다. 항상 싸우는 것 아닙니다. 그 너머를 바라보면 좋은 날이 옵니다. 열매를 거두는 날이 옵니다.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고 몇 달 살다가 헤어지는 이러한 삶은 끊임없이 일생동안 상처뿐입니다. 아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앞에 있는 것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농사 질 때 힘이 듭니다. 하지만 땀을 흘리는 것은 석 달입니다. 5월, 6월, 7월 땀 흘리고 8월이면 벌써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이삭을 평생 줍는 것 아닙니다. 평생 고생하는 것 아닙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를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과거에 매이지 마십시오. 지난날은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형제간에 모여도 지난날을 말하지 마십시오. 미래를 이야기하십시오. 성도들이 구역 예배에 모여 과거를 말하지 마십시오. 미래를 말하십시오. 명절이 되면 우리나라는 가정 불화로 인하여 사고가 많이 납니다. 금년에 추석도 보십시오. 형제가 서로 죽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부모 자식사이에 서로 때리고 죽입니다. 생일 때나 명절에 가정 불화가 일어나는 이유를 아십니까? 모여서 과거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 형제간에 서로 죽인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형이 TV를 보는데 동생이 딴 곳을 틀었습니다. 형이 말합니다.
"내가 보고 있는데 왜 딴 곳으로 돌리냐?"
{그거 뭐 볼 것도 없는데….}
"저 자식은 항상 어려서부터 내 말을 안 듣는다니까?"
{그래서 또 때릴 거야?}
이러다가 그만 싸움이 일어나는 겁니다.
과거에 초등학교 때 형제가 싸웠던 것을 형제가 모여서 또 이야기하는 겁니다. 한 잔 하고 언제나 그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생일이나 잔치에 모이면 미래를 이야기하십시오. 소망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이 공부 잘 하여서 큰 인물이 될 것을 이야기하십시오. 우리가 잘 되고 있는 이야기를 하십시오. 사회가 그래야 건강한 사회가 됩니다. 신앙생활이 건강하게 됩니다. 그래야 배가 앞으로 가는 것이지 묶인 배가 되서도 안 되고 거꾸로 뒤로 가서도 안 됩니다. 역사의 앞을 향하여 나아가던 아브라함의 신앙, 다윗의 신앙, 야곱의 신앙,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가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