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영화의 성과를 일별할 수 있는 뉴 커런츠와 한국영화의 오늘 - 비전 (이하 비전) 부문은 모두 14편의 영화가 선보입니다.
아시아 신인감독의 경쟁 부분인 뉴 커런츠는 10편의 영화 가운데 3편이 한국영화이고, 비전 부문엔 11편이 선정됐습니다.
먼저 뉴 커런츠에 선정된 한국영화 3편은 모두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비극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신동석 감독의 <살아남은 아이>는 일단 다르덴 형제의 <아들>이 연상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 대신 살아남은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살아남은 아이는 자기 대신 죽은 아이의 죽음이 고귀한 것이 아니었다고 고백합니다. 과연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김의석 감독의 <죄 많은 소녀>는 <살아남은 아이>에 대한 또 다른 답변입니다. 딸이 자살한 걸로 추정되는 가운데 어머니는 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소녀를 찾아가 사실을 말하라고 윽박지릅니다. 소녀는 친구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에 놓이고 마녀사냥이 시작됩니다. 고현석 감독의 <물속에서 숨쉬는 법>은 두 가족이 같은 날 겪게 되는 비극을 나란히 펼쳐 보입니다. 회사에서 정리해고의 압박에 시달리는 가장과 신경이 예민해진 아내가 있습니다. 회사와 가정에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아주 사소한 실수로 인해 엄청난 재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어쩐지 3편을 보고 나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마음이 아파옵니다. <살아남은 아이>의 최무성, 김여진, <죄 많은 소녀>의 전여빈, 서영화, 유재명, <물속에서 숨쉬는 법>의 이상희 등은 눈에 익은 배우들로 믿음직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올해 비전 부문 선정작 가운데는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영화가 많습니다. <히치하이크>는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하는 소녀의 이야기입니다.소녀는 우연히 만난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였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됩니다. 물론 이런 바람을 이겨내야 소녀의 성장이 이뤄지겠지요. 배우 박희순이 소녀가 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홈>은 갈 곳 없는 소년의 생존을 다루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돌봐줄 사람이 없어진 소년은 배다른 동생의 아버지와 살게 됩니다. 국가, 사회, 가족 등 우리를 보호할 장벽이 없어졌을 때 우리는 어떤 심정이 될까요? <홈>의 소년은 절박하게 집이 필요하다고 애원합니다. <당신의 부탁>은 <홈>과 반대되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혼자 남은 아이를 맡게 된 젊은 여자가 주인공이고, 과연 혈연 관계가 없는 이 여자가 소년을 맡아 기를 수 있는지를 질문합니다. <환절기>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이동은 감독의 두 번째 영화로 임수정이 주연을 맡기도 했습니다.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도 있습니다. <이월>은 궁지에 몰려 나쁜 선택에 끌리는 여자가 주인공입니다. 돈이 없고 집이 없는 그녀는 사소한 거짓말을 하거나 푼돈을 훔치고, 가끔은 매춘도 합니다. 영화는 희망을 믿지 않는 이 여자의 각박한 삶을 지켜봅니다. 첫 영화 <가시>로 뉴 커런츠 부문에 선정됐던 김중현 감독이 오랜만에 완성한 두 번째 장편영화입니다. <소공녀>의 주인공도 집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담뱃값이 오르자 금연, 금주 대신 집을 내놓고 친구들 집을 떠도는 여자는 청소 등 육체노동을 해서 돈을 법니다.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모습을 그린 <소공녀>는 이솜, 안재홍, 조수향 등이 출연하며 <족구왕>, <범죄의 여왕> 등을 만든 광화문시네마에서 제작한 작품입니다. 명필름랩에서 제작한 <박화영>은 가출팸이 등장하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박화영은 집에서는 엄마한테 버림받은 소녀지만 자기 스스로 좋은 엄마가 되려 애씁니다. 가출팸의 아이들에게 엄마 노릇을 한다며 허세를 부리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소녀는 애처롭게 보입니다.
<로맨스 조>, <꿈보다 해몽> 등을 만든 이광국 감독은 고현정, 이진욱이 주연을 맡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으로 돌아왔습니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듯 여러 겹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던 이광국 감독은 형식적으로 보다 단순해진 이번 영화에서도 예술과 현실의 대비, 사랑에 대한 갈구와 일상적 고독을 보여줍니다. <다른 밤 다른 목소리>에서 이방인의 정서를 담았던 최용석 감독은 이번 영화 <헤이는>에서도 이방인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과거 어떤 사건 때문에 고향을 떠났던 주인공이 부산에 돌아오고 형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들이 과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최용석 감독은 희망을 걸어봅니다. <홈>의 주인공인 허준석이 <헤이는>에서도 주연을 맡았고 임형국, 김정현 등 배우도 눈에 띕니다.
박종환도 <밤치기>와 <얼굴들>, 2편의 주연배우입니다. <비치온더비치>로 데뷔한 정가영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밤치기>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남자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취하는 여자가 주인공입니다. 정가영 감독 자신이 여주인공을 연기하고 박종환이 상대역입니다. 정가영 감독은 와이드 앵글- 한국단편경쟁 부문에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라는 단편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얼굴들>은 다큐멘터리 <파산의 기술>과 <보라>를 만들었던 이강현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입니다. 박종환과 김새벽이 주연을 맡은 영화로 비전 부문 상영작 가운데 가장 실험적인 영화입니다.복잡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간단한 줄거리로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관조적 스타일이 두드러지는 영화입니다. 끝으로 이원영 감독의 데뷔작 <검은여름>은 동성애를 다룬 영화입니다. 대학에서 서로에게 끌린 두 남자의 사랑이 스캔들이 됩니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대학이 동성애에 대해 가혹한 법정이 되고 둘의 사랑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새출발>, <춘천 춘천> 등의 독립영화에 출연했던 우지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