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20년전 농사지을 때 일기)
장마비 덕분에 감자를 캐지 못하고 있다가, 드디어 감자를 캐게 되었다.
감자밭과 옥수수 밭을 둘러보다가 난감한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너구리였다! 순전히 고라니만 염두에 두고 차단 그물을 설치했었는데, 허술한 그물 밑으로 너구리가 침입한 것이다.
너구리의 습성과 식사량이 있기에 많은 양은 건들지 않았지만, 초보 농사꾼으로서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감자 캐기는 뒤로 미루어지고, 그물망 막기 작업을 서둘렀다. 상당 부분 그믈은 밑 부분이 들려져 있었다. 설치도 잘못을 했지만, 넝쿨 식물들이 그물을 타고 오르면서 모양을 엉망으로 만든 탓도 있었다.
수확철을 거의 앞둔 옥수수를 생각하면 녀석들의 행위가 괘씸하였다. 눈 앞에 보이면 몽둥이로 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가끔 심곡항에서 정동진으로 넘어가는 야심한 밤에 너구리를 목격한 적이 있다.
마치 검은 안경을 쓴 것 같은 눈 주변의 검은 테두리가 너무나 귀여워서 옆의 아내와 함께 한바탕 웃음을 웃은 적도 있었다.
갑자가 너구리의 얼굴 모습이 생각이 나자, 머리까지 치솓았던 화가 눈 녹듯이 녹아버렸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을 했다. 아무리 내가 농사를 잘 짓는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힘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칡넝쿨의 거대한 힘은 아직도 모든 농촌의 고민거리이고, 야생동물의 습격은 사냥꾼들도 막지 못하지 않던가.
무슨 수로 그들에 저항을 하겠는가!
내가 당한(?) 이재난을 그대로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산돼지라도 내려왔다면, 옥수수밭이 초토화 되었을 것이 뻔했다. 그에 비하면 얼마나 귀여운 장난인가. 녀석의 모습 답게 녀석의 만행은 귀여웠던 것이다.
그리고, 초보 농삿꾼으로서 당연히 수업료를 낸 것에 불과했다.
내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내 삶 전체를 둘러봐도, 자연에 보답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대부분 현대인들의 삶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자연에 피해를 주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한 치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농사라고 끄적거리는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녀석들에게 선행(?)을 베푼 꼴이 된 것이다.
그렇게 자위를 하고 나니까, 내 마음은 하늘을 날 듯이 행복해 지는 거였다.
오로지 농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미련하게도 농사를 짓다가 느닷없이 당한 재난은 나에게 자그마한 행복을 안겨주게 되었다.
인터넷 쇼핑몰로 농수산물을 파는 덕분에, 사실 나의 농사는 생산 수단의 일부가 되었다.
철학적 이유 말고도 내가 농부가 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히 경제적인 것이다. 내가 농부가 됨으로서, 나는, 내 이윤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하게 된 것이다.
농산물 생산, 웹 작업, 웹 마케팅, 전화, 포장, 택배 까지. 모든 것이 내 손에서 떠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농사를 지음으로써, 농부들의 이윤은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을 알았다.
농산물 하나가 상품이 되어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 까지 전 과정에서, 그들의 수고에 비하면 그들이 얻게 되는 이윤은 제일 작았다.
농산물이 상품이 되는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땅을 대하는 일 뿐이다. 그 어떤 과정에서도 그들이 개입하거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농부들은, 가장 큰일을 하고도 가장 억울한 대접을 받는 것이다.
그 이유는, 땅과의 물질대사가 상품으로 둔갑을 한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너구리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다. 나는, 처음에 농부의 시선으로 녀석들을 본 것이 아니라, 판매업자로서 녀석들을 바라본 것이다.
녀석들은 비록 내가 지은 옥수수이지만, 당연히 그것을 먹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땅에서 난 것들이기 때문이다.
녀석들의 입장에서 그물망 너머로 풍겨오는 덜 익고 물기 많은 달콤한 여린 옥수수의 유혹을 견뎌낼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녀석들의 행위는 도둑질이 아니라,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다. 오히려, 그들의 행위에 잠시 놀랐던 내가 바보였던 것이다.
감자를 캐고 있는데, 옆 밭에 어린 묘목을 심었던 땅 주인이 나타났다.
올해 식목일 날 대가족을 동원하여 돈이 된다는 비싼 나무를 심었다.
그 땅은 위치가 좋지 않아 팔리지도 않을 거였다. 그로서는 대단히 억울한 일이었을 것이다.
대형차에 시집 장가간 자식들까지 동원하여, 그 억울한 심정을 달랬을 것이다.
그 땅에 농작물을 심기에 그의 번쩍거리는 승용차와 배불뚝이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단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대충 심어놓은 나무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는, 친구들에게는 마치 자신이 천석지기 농사꾼이라도 되었은 양 사기를 치는 일 뿐일 것이다.
그에게 땅은 그의 대형 승용차 처럼 장식품이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가끔 온가족을 동원하여 그의 영지로 놀러오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진정, 땅의 주인은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들과 그것들을 먹어 치우는 너구리와, 그것을 보고 슬퍼하고 행복해 하는 한 농부라는 것이다. 토지대장상의 땅만이 그의 것이라는 것이다.
진정, 땅은 그것과의 물질대사로만 주인의 의미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