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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각오로 책을 한 권 샀다.
(폴 윌리엄스, 트레이시 잭슨 공저/ 조은경 옮김/ 판미동 간)
"2018년 새해,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은 당신에게, 중독에 갇힌 사람들을 위한 탈출 안내서!"
나는 고백한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다! 그렇다고 매일 마시는 것은 아니다. 일거리(원고 청탁 또는 신조선 시운전)가
있을 때는 일주일, 아니 열흘 동안 안 마셔도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술을 좀 마시긴 해, 하지만 그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야. 알코올 중독자라면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전날의 숙취
때문에 다음 날 업무도 제대로 못 볼 정도쯤 되어야지." 얼마 전까지는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번 입에 댔다 하면 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다. 작취미성에 해장술(二日醉の迎え酒)까지 마셔야
술에 곯아떨어져 잠들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가장 큰 실수라고 한다. 그것을 계속 반복하면 중독이라고 한다.
미친 사람이 스스로 '나는 미쳤다!'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남이 "미친놈!' 하면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래서 스스로
'나는 알코올 중독자'라고 고백하기로 했다. 중독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지난해부터 나는 스스로 자격지심에서 동기회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내가 이 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의도는 남 마담
본을 받아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日必五) 그런데 새해부터 실수를 했다. 물론 술 때문이다.
남 마담은 물론이고 내가 새해 들어 이 카페에 두 번 올린 글을 읽어본 사람들은 '이 친구 맨 정신에 쓴 글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을 테니까 더 감출 것도 없다. 부끄러움은 잠간일 뿐이다.
어제 동기회 신년회 모임 후에 나를 염려하는 어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요즈음 모임에 통 안나오느냐고?" 그래서 '나는 환자요!' 하고 동기들에게 광고를 하고 도움을 청해야 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올린다.
또 [습관의 감옥] 책 가운데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실수하거나 웃음거리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성내지 말고
빨리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라는 구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요즈음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토크 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추천한 책이다.
내가 40년 동안의 해상 생활을 마감하고 배를 내린 것은 2012년 1월이다. 아이들 뒷바라지를 마치고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년만 더 탈까? 하는 욕심도 있었지만 마음 놓고 글만 쓰고 싶아 조급하게 내리고 말았다. 6개월만이라도 더 탔으면 좋았을 것을!
2012년 한 해 동안은 '하나님의 감방'인 배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고 외출도 삼가고 열심히 글만 썼다.
"습관은 나무껍데기에 새긴 글자와 같아서 세월이 흐를수록 더 크게 나타난다. 자유와 방종을 구분 못하면 절망 밖에 없다!"고
마음 속으로 매일 다짐을 하면서. 그런 노력의 결과 그해 연말에, 부산일보사에서 주관하고 한국해양대학교에서 후원한 '해양
문학상 공모'에 대상을 받았다. 상금이 1천5백만 원이었다.
그 후로 긴장이 풀리면서 자유와 방종에서 오락가락했다. 좋아하는 술 때문에 시간을 허송하고 갇혀 있던 배 생활에서 벗어나
고삐가 풀려 개뿔도 없으면서 헛돈을 길바닥에 마구 깔았다. '육지에서는 절약이 곧 버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지 못햇던 것이다.
내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내 고향은 지금 창원 법원이 있는 사파동이다. 농사철이면 큰집 머슴을 따라 다니며 어린 나이에도 애벌, 두벌 논을 매면서 막걸리맛을 알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겁없이 벌술을 마셨다. 하숙집에서 커다란 양은 대야에 가득하게 막걸리를 받아 놓고 잔을 띄워 돌리며 '포석정 놀이'를 하며 마셨다.
해군에 입대해서는 매일같이 출근할 때는 술 끊고 퇴근할 때는 술집으로 직행했다. 사관학교 기초교육을 마치고 한 달간 기관학교 교육을 받기 위해 멋모르고 교육단 근처에 방을 얻다 보니 바로 칠함대 옆, 충의동 6번지 앵커로터리였다. 거기에 있는 등대집이 단골이었다. 어느 겨울밤, 매미들이 난로의 불도 끄지 않고 석유를 붓다가 석유가 쏟아져 불길이 치솟고 말았다. 벽에 걸어놓았던 매미들의 나일론 치마가 뜨거운 열기에 오징어 굽히듯 도르르 말려 올라갔다. 우리들 직책이 모두 불 끄는 보수관이라 재빨리 불길이 치솟는 난로를 위에 모포를 덮어 껐기에 천만다행이지 하마터면 지붕이 콜타르지인 등대집은 구들장만 남을 뻔했다. 동기생 유 중위는 양말에 불이 붙어 발등이 알 밴 대구처럼 퉁퉁 부어올라 아침에 출근할 때, 한 발은 구두도 못 신고 손에 들고 통근버스를 타다가 악발이 고참 대위한테 욕사발을 얻어먹었다. 정박 중 사흘에 한 번씩은 당직이라 술을 못 마시고, 내가 근무했던 DE-73함은 출동이 잦아 술값이 모자라지는 않았다.
내가 배를 내린 지도 3년이 지났다. 2015년 2월, 형님(부산공대 기계과 66학번)이 돌아가셨다. K 제강에 근무했던 형님은 사장 진급을 꿈구고 있었는데 노조 설립을 막지 못해 전무에서 퇴직하고 말았다. 현직에 있을 때는 아주 깐깐했는데 백수가 되자 좌절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술에 취해 교통사고를 당햇던 것이다. 그런 불상사를 겪고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술꾼들은 항상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하는데. 동해시에서 선박안전검사관을 하던 대학 후배 한 사람은 겨울에 술에 취해 귀가 도중 야적한 석탄 더미를 파고 들어가 그 속에서 잠을 자다 아까운 인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2015년 봄부터 2016년 말까지 신조선 시운전 운항요원으로 20회 가까이 나갔다. 예전에는 기관사(장)는 태우지 않았는데 태종대 앞바다에서 시운전하던 신조선과 지나가던 선박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항만청에서 강제로 기관사(장)도 태우라고 해서 나가게 되었다. 한번 나가면 보통 3~4일 정도로 보수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칠순 나이에(해대20기~21기 선배들로 내가제일 젊었다)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다할 수 없었다. 또 신조선이라 기관실 최신 장비를 접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러다가 2016년 후반기부터 시운전할 선박이 없어졌다. 신조선 수주를 중국에 다 빼앗긴 탓이었다.
일정한 일자리가 없어지자 절제심도 없어졌다. 마음이 풀어지니 글도 안 되고 사흘이 멀다하고 술집을 찾았다. 비자금도 다 떨어지고 한 달 용돈은 국민연금밖에 없었다. 술은 품위 있는 집에서 마셔야 손님들도 신사들인데 값싼 동네 술집을 찾다보니 천박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개중에는 서울미대 출신(마상상고) 화백도 있고 몰락한 대기업 K 상사 아들도 있었지만 나머지는 다 별볼일 없는 동네 건달들이었다. 한잔 걸치면 모두 제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헛똑똑이들이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안 가면 심심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스스로 유혹에 미혹되었다. 그때까지는 술을 끊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당시에는 우리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부경대 정문 앞에 <부산중독통합관리센터>가 있었다. (지금은 서구 대학병원 앞으로 이전)
나는 반 호기심으로 산보 삼아, 또 한편으로는 <술꾼>이라는 소재로 장편을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으로 상담을 하고 등록을 했다.
교육생 가운데는 몇 번이나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중증 주정뱅이도 있고 젊은 여자 중독자들도 몇 명이나 있었다. 남편 술을 끊기 위해 같이 교육을 받는 부인도 있었다. AA (Alcoholic Anonymous) 회원들과 상담도 하고 확실히 단주에 성공할 때까지 지속적인 교육을 받으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나는 한 과정(커리큘럼)만 마치고 그만두었다. '다 아는 건데 뭐,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거리가 없어진 2016년 말부터 술버릇은 더 나빠졌다. 해양재단에 응모한 소설은 겨우 우수상밖에 받지 못했다. 정권이 바끤 탓이지 '천안함에 관한 소설'은 아예 예선에서 탈락되고 말았다. 상금을 받으면 갚을 거라고 미리 마신 외상값도 갚지 못해 마누라한테 사정사정해서 돈을 빌려 갚았다. 자금이 떨어지자 새로운 결심을 한다고 책상 앞에 잠언을 잔뜩 써 붙여놓았다.
시간을 허송하지 말라! 남은 인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今日所爲 明日難改 旦悔其行 暮復己然>
주사(酒邪)는 사회생활의 사망선고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타인의 행위를 본 그대로 상대한다!
하나님은 공짜로 기적을 베풀지 않는다. 사탄과의 싸움에 무승부는 없다. 끝까지 이겨야 한다.
재난을 당할 사람이 누구며 근심하게 될 사람이 누구냐? 다투게 될 사람이 누구며 탄식할 사람이 누구냐? 까닭모를 상처를 입을
사람이 누구며 눈이 충혈될 사람이 누구냐? /늦게까지 술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 혼합주만 찾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냐?
"사람들이 나를 때려도 아프지 않고, 나를 쳤는데도 아무렇지 않다. 이 술이 언제 깰까? 술이 깨면 또 한잔 해야지!" 하고 말할
것이다. (잠 23: 29,30, 35)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참고 참다가 딱 '한 잔만!' 하고 시작하면 결국 술에 취하고, 술에 취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가 뒤따랐다.
신용카드를 분실하거나 아니면 생각지도 못했던 무슨 징계를 받고 말았다. '이놈아, 이래도 또 술 마실래?'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오래 전에 아주 용하다는 철학관 도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잘 아는 선장 출신 어로과 선배의 말을 듣고 얼마나 용한지 시험 삼아 찾아갔던 것이다. 충무동 로터리 대왕빌딩 3층에 있는 그 철학관은 간판도 없었다. 부근에 있는 군소 수산회사 사장들이 많이 찾아간다고 했다. 나는 근처 새벽시장 포장집에서 막걸리 두 통을 마시고 점퍼에 초장을 묻힌 채로 들어갔다. 도사는 새하얀 모시옷을 입고 단정한 자세로 한서를 펴 놓고 있었다. 나는 다다미 바닥에 엎드려 넙죽 절부터 하고 도사를 바라보았다. 도사는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복채부터 내시요!"했다. 복채는 3만 원이었다. 나는 미리 준비한 빳빳한 만 원짜리 석 장을 공손히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러자 도사가 말했다. "간판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 왔어요?"
"예, 수산업을 하는 대학선배가 선생님의 혜안이 밝다고 해서 찾아 왔습니다." "뭐가 궁금해서 왔습니까?"
"하는 일이 잘 안 풀려서 인생 길잡이 말씀이나 들을까 해서..." "성명과 생년월일시를 적어 주시오."
내가 사주를 적어주자 잠시 훑어보던 도사가 엄한 목소리로 야단부터 쳤다.
"보아하니 예수 믿는 사람이구먼! 예수 믿는 사람이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다니면 됩니까? 지금 당신의 몸에는 마귀들이 술에 취해 북 치고 장구 치며 떠들고 있어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그러니 목욕재계하고 내일 아침에 오시오!"
나는 세례는 받았지만 교회 마당만 밟았지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해 성령이 없다고 생각했다.
"제가 교회 다니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사가 대답했다.
"당신은 못 느끼지만 내 눈에는 당신을 둘러싼 십자가 후광이 보여요. 그리고 댁에 호랑이하고 무슨 관련이 있어요? 호랑이 형상이 당신을 지키고 있네요." "호랑이라고예? 아아, 어머니와 제 집 사람이 호랑이 띱니다."
나는 복채 삼만 원을 내고 예수쟁이가 낮술 먹고 다닌다고 꾸중만 들었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내 뒤에 십자가 후광이 보인다는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돈이 없어 집에서 혼술을 마시다 취하면 온갖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별로 유쾌하지 못한 기억들이다. 술에 취하면 분노조절이 잘 안 돼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그래서 신문광고를 보고 [습관의 감옥]을 사게 되었다.
저자인 폴 윌리엄스는 한 때 코카인 중독, 알코올 중독을 겪었으나 완전히 극복하고 가수, 작곡가, 배우로 아카데미 오스카상, 그래미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UCLA에서 <약물남용상담 자격프로그램>을 수료하고 회복운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한다.
[습관의 감옥]은 이렇게 말한다.
삶을 바꾸려면 습관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변화의 첫 단계로 '나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속으로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큰 소리로 외쳐 자기암시를 줘야 한다. 잘못된 습관에서 탈출하는 열쇠 6개도 제시한다. 자유를 위한 여섯 개의열쇠는 다음과 같다.
1. 무언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건 아마 '나'인 것 같다.
2.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데, 내 안의 무언가는 한다.
3. 실수를 정당화하지 않고 거기에서 배운다.
4. 매일 자신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한다.
5. 가능할 때마다 내가 한 잘못을 바로 잡는다.
6. 사랑과 봉사, 감사와 신뢰를 잃지 않고 생활한다.
나는 나와 내 가족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알코올 중독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렇게 고백한다. 여섯 개의 열쇠를 가지고 [습관의 감옥]에서 꼭 탈출하고 말 것이다. -끝-
첫댓글 종찬아 잘 용기 내라 선박 생활 하다 육상에 안착 하면 모두가 사기꾼 같고 의리 신뢰가 없더라 배승선 하면 때돈이나 번줄 알고 빼먹는 사람 들이 많더라 .남말 귀담아 듣지마라 나도 한동안 내가 승선해 공부시킨동생 4명 부모 조실하고 .고생 하였다.다들 남속 모르고 자기들 끼리 회동하면서 뒷말도 많더라.남에게 나의사정 호소도 하지마라 .돈은 육지 사람이 벌지 해상 생활돈은 남것이더라
한동안 명절 6명 지위=지방 앞에 재사 지내기 싫어 술한잔 하고 남마담에게 전화 한적도 있다 이제70대 접해 얼마나 살겠나 만
사는동안 건강하게 살기를 ,젊은넘도 하직 하는데 ,그간 가족위해 철판 빵구 나면 무덤 없는 생활 많이 안했나.어로과동기도 전국명문고 출신50명중 9명 저세상 갔다 ,너하고 카나다동부쪽 같이간 최선장도 아파트경비하더라.사업해 망한친구 선후배들 엄청,육상넘들에게 탕진하고.나이들어 친구가 좋다 하지만 ,뒷구멍에서는 험담 하는 사람도 많다 .혼자 뒷산이라도 묵상 하면서 다녀봐라.남속도 모르고 배승선 해 돈많이 번다고 한턱내라는 사람만 많더라 자기들은 할짓 다하고 승선 해 번돈 재사상에도 안올
리는데.남말 안듣는게 편하다 거북한 애기들어면 불안하고.여기 남마담 살아온 글들 나도 간혹 본다 ,다들 인생 고개길 있다.혼자 살면 남자 고생 한다,가족들은 스쿠루만 돌아가면 돈벌어 온다고 하고.번돈 마누라 다챙기고 ,세상이 이럴줄 알았나.3번 장가간 친구도 있다.마누라 흥청 망청해.,자식 믿지마라.나도 해상서 육상생활 할시 엄청 힘들더라 .도저히 이해 안되고.의리 신의 신뢰 믿지마라.정신병원에 감금 하는 가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