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도흘릴수없는슬픈그대에게/
날아가는 새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상처 없는 새가, 어디 한 마리라도 있습니까? 걸어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십시오. 사연 없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깊은 샘에서 맑은 물 나오고 깊은 광산에서 보석이 나오듯, 고난의 깊이가 당신의 영성과 인생의 깊이로 보답할 것입니다. 당신 앞에 있는 벽을 장애물이라 생각지 마십시오. 버티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그 벽이 큰 문 되어 당신을 반겨 줄지 누가 알겠습니까?
터널을 길다 불평 마십시오. 지금의 터널이 오히려 지름길 되어 당신을 업고 갈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대 가슴에 품은 통증으로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 땅 어딘 가에는 그대보다 10배의 통증을 안고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고 기막힌 하루를 살아가는 지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하는 고통을 아무도 모르리라 성급히 판단하여 미리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당하는 고통의 100배를 끌어 앉고도 사는 것이 미안하고 황홀하여 어찌할 바 모르는 사람들도 이 땅에는 많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내가 만난 고난의 통증은 '하나님도 모르실 거다' 할 정도로 극한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삶의 시계는 제로가 되고, 온 몸의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는 때입니다. 갑자기 심장이 멈춘 듯 하며, 정신은 혼미해지고 지구의 공전이 온몸으로 체감되듯 주변이 빙글 빙글 돌다 못해 끝내 주저앉고 맙니다. 세상은 이런 순간을 필름이 끊어지는 순간이라 말합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지요. 그러나, 어쩌면 속으로는 이런 필름 끊김 현상을 자주.. 그리고 오래 경험하기를 바라는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깨어보면 제 자리이지만 그 순간만은 무통이니까요.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살아도 세상 사람들 보다 더 힘든 이유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문제는 참을 수 있습니다.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통증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하심은 하루가 천년 같은 삶의 무게로 우리를 누릅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사력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더 나빠지고, 하나님은 찾을수록 더 멀리 숨어 계십니다. 이제까지 그래도 버티고 기다린 것은,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침묵하심 앞에 더 이상 참고 기다리고 버텨내야 할 명분마저 희미해져 갑니다. 이 사실이 두려움으로 나를 흔듭니다. 믿음도 연약하지만 이제는 믿고 싶은 마음마저 흔들립니다. 기도생활도 변변치 못하고 안 되지만 기도해야할 필요성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믿음은 기적을 낳고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킴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언제나 예외 시킵니다. 사람들은 날 보고 연단이라고, 크고 귀하게 쓰실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그 말에 조금도 힘이 되지 않습니다. 안 쓰셔도 좋으니 제발 고난의 무게와 통증의 깊이를 가볍게 해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람은 꿈과 희망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내일은...1년 후에는...3년 후에는 나아지고 달라지고 좋아진다는 확신만 있다면 얼마든지 견디고 기쁘게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미래와 희망에 대하여 언제나 부정적이며 회의적입니다.
우리는 이럴 때 더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기도하고 아무리 내가 잘한다 해도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가 다른 사람에게 있을 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나의 힘듦조차 모르는데... 나는 그로 인하여 힘들 때 말이죠. 그리고 나의 힘듦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그래서 나만이 끙끙 앓고 있을 때... 그래서, 누구의 도움조차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일 때.... 더 나아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문제가, 구조적으로 변화되기가 어려운 문제일 때, 우리의 에너지는 제로가 되다 못해 마이너스가 됩니다.
사람은 길이 막히고 안 보일 때 절망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크게 우리를 절망시키는 것은 나의 길은 사방이 막히는데
다른 사람의 길은 순탄히 열릴 때입니다. 그것도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길이 열릴 때입니다. 그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악한 사람일 경우에는 우리는 주저앉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길은 다 열리는데 나의 길만 닫힐 때 우리는 차마 소리도 못 내고 울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되는데 나만 안 될 때, 다른 사람들은 다 건강한데 나만 아플 때, 다른 사람들은 다 풀리는데 나만 묶일 때, 우리는 극도의 혼란과 절망에 잠기게 됩니다. 살면 살수록 인생이 무엇인지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믿으면 믿을수록 믿음의 세계는 모르는 것이 더 많아 보입니다. 무수한 상담사역을 하지만, 하나님과 인생에 대하여 솔직히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속이 상합니다.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으로 삽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고난에 대하여 저는 속 시원히 말씀드릴 수도 없지만 1퍼센트라도 고난의 무게를 덜어줄 힘이 저에게는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늘 죄인으로 삽니다. 저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을 하나님은 아시고, 제가 할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십니다. 저는 절대 무지 무능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전지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이 안보일 때,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하나님을 알 수 없을 때 그냥 기다리십시오. 그냥 가만히 계십시오. 막막할 때, 그냥 막막해 하십시오. 힘들 때, 그냥 힘들어 하십시오. 앞이 캄캄할 때, 그냥 캄캄해 하십시오. 약의 성분을 잘 모르고 삼켜도 효험이 나타나듯이 하나님에 대하여, 고난에 대하여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믿음으로 삼키십시오. 그리고 며칠만 더 기다려 보십시오.
아직도 불평하고 미워하고 기대하고 항변하고 반항할 기력이 남아 있으신가요? 이제는 못 기다릴 힘도, 교만할 거리도, 불평할 에너지도 없잖아요? 그러니, 주 날개 밑에서, 십자가 그늘 밑에서 한숨 푹~ 주무십시오. 너무 힘들 때는 말씀의 요를 깔고, 보혈의 이불을 덮고, 은혜의 베개를 베고 한숨 푹~ 잠을 청하십시오.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말이죠. 아담이 잠들었을 때, 하나님은 하와를 만드셨고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들었을 때, 하나님은 사닥다리 환상으로 야곱을 위로하셨고 베드로가 감옥에서 깊은 잠에 빠졌을 때에, 하나님은 천사를 급파하여 베드로의 석방을 도우셨으니 이제는 피곤과 자포자기 심정으로 잠을 청하지 말고, 믿음과 맡김으로 주와 함께 숙면을 하십시오. 어짜피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어짜피 할 수 있는 힘도 없고, 어짜피 알 수 있는 것도 없고, 어짜피 알아낼 힘도 없잖습니까?
진짜 영성이란? 잘 모르면서도, 끝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고난의 이유도, 고난의 끝도, 날 왜 사랑하시는지도, 정말 사랑하시기는 하시는 것인지도, 5분 후의 일도, 죽을 날도, 좋아질 날도.... 그냥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새끼 병아리, 어미 닭을 붙쫏아 가듯이 순종하여 가다보면... 쓰든 달든 삼키다 보면.. 영광의 나라 희망의 나라 꿈꾸던 나라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주님이 큰 수건 꺼내시어 우리의 젖은 눈 닦아주실 줄 믿습니다. 그때는 주님이 침묵을 깨시고 우리와 밤이 맞도록 이야기하실 것이고 우리의 말도 오랫동안 들어주실 것입니다.
지금 한 가지 확실히 아는 것은 수많은 고난들이 우리를 짖 누르고 힘들게 할 때 그 고난들은 우리의 영혼을 맑고 푸르게 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거인으로 만들어 낼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은혜만으로도 저는 충분히..여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아직도 내가 주체할 수 없이 가슴 벅차 오릅니다.
이제, 엉금 엉금 기어서라도 더 높은 곳으로 갈 겁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도, 아무도 격려하지 않아도 말이죠. 이제는 웃을 수 있어요. 이제는 감사할 수 있어요. 그분으로 인하여, 겨울인가 했더니만 봄이 왔듯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