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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Piano Concerto in G major) &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Piano Concerto for Left Hand in D major)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Maurice Ravel
1875-1937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piano
Sergiu Celibidache, conductor
London Symphony Orchestra 1982
Hélène Grimaud, piano
Vladimir Jurowski, conductor
Chamber Orchestra of Europe 2009
[track 1~3]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Sergiu Celibidache/London Symphony Orchestra 1982
[track 4~6] Hélène Grimaud/Vladimir Jurowski/Chamber Orchestra of Europe 2009.01.24
베네디티 미켈란젤리/세르지우 첼리비다케 연주와 엘렌 그리모/블라디미르 주로브스키 연주 모두 실황녹화이니 플레이리스트 왼쪽 위 VIDEO 글자를 클릭하여 동영상으로 감상하세요. 다시 플레이리스트로 돌아오려면 동영상 화면 오른쪽 아래 시간 표시 옆 ▲를 클릭하세요. 미켈란젤리(1920-1995)의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이 작품 최고의 연주로 꼽힙니다.
20세기 초반의 프랑스 작곡가들은 우리에게 많은 양의 피아노 협주곡들을 남겨주었지만 라벨이 남긴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 외에는 상당수가 잊어진 작품이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비교적 짧은 길이의 이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은 작곡가에게 인상주의 스타일을 배제하며 신고전주의 시대를 열게 된 도화선과 같은 작품으로, 음악사적인 관점에서 이 두 작품이 갖고 있는 중요성과 그 형식에서의 완전함에 비견할 만한 후대 프랑스 피아노 협주곡은 드물 정도다. 더 나아가 이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보들레르적인 댄디즘과 강박증에 가까운 모더니즘, 순결함과 뜨거움의 혼합이 주는 패러독스한 아름다움은 20세기 프랑스 음악 가운데 무릇 군계일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29년부터 1931년 사이에 작곡한 라벨이 작곡한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 즉 <피아노 협주곡 G장조>와 <왼손을 위한 협주곡 D장조>는 그의 후기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볼레로>를 통해 상상을 뛰어넘는 열광적인 환호를 받게 된 직후 작곡가가 자신감과 의지에 넘쳐 있을 당시에 탄생했다. 이 두 작품은 그 태생부터 신고전주의적이다. 모차르트를 숭배했던 라벨은 고전주의적인 형식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나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신바로크적인 <쿠프랭의 무덤> 등을 작곡하여 18세기의 형식과 리듬, 음색의 잔향, 음영의 조화 등등을 20세기에 맞게 새롭게 탄생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리고 이 두 개의 협주곡에 이르러서 규칙적인 프레이징과 음악적 요소들의 절묘한 균형감을 통합하여 신고전주의적인 양식과 이국적인 분위기의 결합을 비로소 완성한 것이다.
Martha Argerich, piano
Charles Dutoit, conductor
Orchestre National De France 1990
세련된 신고전주의적 결정체 ‘피아노 협주곡 G장조’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빠름-느림-빠름의 전형적인 고전주의적 협주곡 스타일로, 선명하고 화려한 아름다움, 스페인적인 취향과 동양적인 취미에서 기인한 개성 강한 판타지, 이국적인 리듬감과 색채감, 한층 분명하게 그 모습을 보인 재즈의 이디엄, 한층 정교해진 세공력과 이전 세기의 음악들에 대한 오마주 등등이 말년의 원숙한 라벨의 손끝에서 어우러진 독자적인 음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비르투오소적인 요소와 패러독스한 요소를 사랑했던 라벨은, 자신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리스트의 저 맹렬한 초절기교 연습곡을 연주하는 듯한 기분을 청중들 앞에서 발산하고자 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50대의 나이는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기에 좋은 때가 아니라는 주위 친구들의 만류와 설득에 굴복하여 할 수 없이 연주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중요한 작곡가 모리스 라벨
작곡가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모차르트와 생상스의 정신에 입각하여 작곡했으며, 특히 제2악장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 제2악장이 모델이었다고 한다. “협주곡이란 화려하고 경쾌한 마음의 음악이어야지, 어떤 극적 효과나 심오한 것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라는 자신의 모토를 구현하고자 했던 작곡가는, 원래 이 작품에 ‘디베르티시망’이라는 제목을 붙이고자 했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음색으로, 라벨은 이전 시대보다 훨씬 세련되고 풍부한 효과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192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드뷔시적인 인상주의 오케스트레이션의 풍부함을 거부하고자 크롬 색에 가까운 결벽증적인 음향을 추구한 것과는 대조된다. 자신의 취향을 바꾸는 것에 훌륭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라벨은 삶의 마지막까지 이질적이지만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음색의 블록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쌓고 무너뜨리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Samson François, piano
André Cluytens, conductor
Orchestre de la Societe des Concerts du Conservatoire
제1악장 알레그라멘테는 명확한 소나타 형식으로 풍부한 음악적 소재와 다채로운 악상이 극적으로 펼쳐지고, 저 유명한 제2악장 아다지오 아사이는 무반주 피아노 솔로가 우아하게 시작하는 3부 형식으로, 색채감과 분위기는 중립적이지만 그 감수성이 최고조로 고양되며 감동을 자아낸다. 제3악장은 벌레스크 풍의 화려한 프레스토로, 피아노와 타악기가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며 아이러니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이 작품은 1932년 1월 14일 파리에서 열린 라무뢰 오케스트라의 라벨 특별연주회에서 작곡가의 지휘와 마르게리트 롱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되었다. 라벨은 마르게리트 롱 여사를 위해 이 작품을 작곡했다고 밝히며 제2악장 솔로 피아노의 피아니시모 부분에 트릴이 등장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세부적 조언을 그녀로부터 얻었다.
이 곡은 고전적인 양식과 20세기 음악의 새로운 면이 완벽하게 결합된 독특한 피아노 협주곡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작품의 헌정자이고 초연자이자 최초 녹음자로서, 롱의 연주가 이 작품에 관한 가장 확고한 권위를 갖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페드로 데 프리타스의 지휘로 1932년 4월에 진행된 스튜디오 레코딩에서, 라벨은 지휘자나 피아니스트가 아닌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테이크를 수십 번 이상 반복하게 해 연주자들로 하여금 완전히 지치게끔 했다고 한다. 롱 여사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새벽 3시쯤이었어요. 녹음이 끝났다고 생각해 컨트롤 룸으로 들어갔더니 라벨은 냉정한 목소리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말하더군요.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이 회고담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듯이, 라벨의 참관 하에 녹음한 롱의 레코딩은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레코딩과 더불어 일종의 해석의 출발점이자 불변의 기준으로서 그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Ravel, Piano Concerto for Left Hand in D major
라벨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Alfred Cortot, piano
Charles Munch, conductor
Paris Conservatory Orchestra 1939
Robert Casadesus, piano
Dimitri Mitropoulos,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1956
[track 1~3] Alfred Cortot/Charles Munch/Paris Conservatory Orchestra 1939
[track 4] Robert Casadesus/Dimitri Mitropoulos/Wiener Philharmoniker 1956
알프레드 코르토(1877-1962)는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최초로 연주했으며, 로베르 카자드쥐(1899-1972)의 연주는 이 작품 최고의 연주로 꼽힙니다.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오른손을 잃은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1887-1961)의 위촉으로 1930년에서 31년 사이에 작곡된 작품이다. 그는 분석철학의 대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형으로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빈의 대표적인 강철 재벌가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빈의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해 왔고, 음악가로는 브람스, 클라라 슈만, 말러, 발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쇤베르크, 카잘스 등이 그 혜택을 입었다. 이렇듯 풍부한 예술적 분위기에서 성장하여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비트겐슈타인은 오른손을 잃은 뒤에도 자신의 꿈을 접지 못했다. 왼손 피아니스트라는 새로운 존재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고자, 라벨을 비롯하여 브리튼, 힌데미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에게 왼손을 위한 작품을 위촉했던 것이다.
색다른 양식에 흥미를 느낀 라벨은 “양손을 위한 작품보다 더 강한 인상을 주는 작품으로, 전통적인 협주곡보다 경건한 종류의 스타일에 의존했다”라고 말하며 “단일 악장 형식이며 재즈의 효과를 도입했는데, 이런 작품은 본질적으로 두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처럼 가뿐하면서도 섬세하며 치밀한 효과를 창조해 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결국 새로운 형식에 걸맞게 새로운 내용을 담아낸 라벨의 이 혁신적인 작품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 작품의 피아노 파트를 수정하고자 작곡가와 논쟁을 벌였다. 자신의 지시에 따를 것을 강요하는 라벨에게 그는 “연주자는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라고 강하게 저항했지만, 오히려 라벨은 “연주자는 노예가 되어야만 한다”라고 강하게 응수하며 작품에 일체의 수정을 가하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라벨은 알프레드 코르토가 이 작품을 두 손을 위한 협주곡으로 편곡하자는 제안 또한 완강히 거절했다.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최초로 레코딩한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
라벨은 이 작품을 완성한 뒤 비트겐슈타인의 성에서 피아노 파트를 두 손으로 연주해 보였는데, 후일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고 한다. “당시의 나는 그의 작품에 압도되지 않았다. 나는 짐짓 감탄하는 척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라벨은 아마 실망했을 것이다. 상당한 시일이 지난 뒤 여러 달 동안 연습을 거듭한 후에야 비로소 이 작품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둘은 독주자와 지휘자의 관계로 1933년에 짧은 영상물을 녹화할 정도로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당시 라벨은 비트겐슈타인의 몰이해에 화가 많이 났을 뿐만 아니라 비트겐슈타인의 귀족적인 태도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다.
Jean-Efflam Bavouzet, piano
Esa-Pekka Salonen, conductor
The Philharmonia Orchestra
많은 사람들은 한 손으로 가능한 한 많은 음표를 연주하거나 다채로운 음색을 표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엄지손가락이 멜로디를 주도하면서 라벨이 의도한 음색과 프레이징 모두를 완벽하게 구현할 뿐만 아니라, 무뚝뚝한 음향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파트의 모든 음표들조차 다른 오케스트라 파트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이 역사적인 작품은 1931년 11월 27일에 비트겐슈타인의 독주와 로베르트 헤거가 지휘하는 빈 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고, 최초 레코딩의 명예는 롱보다 손이 컸던 알프레드 코르토에게 돌아가 1939년 5월 12일 샤를 뮌슈가 이끄는 파리 콘서바토리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녹음되었다.
작곡가가 ‘느린 서두’라고 명명한 렌토의 첫 부분은 엄숙하고 무게 있는 분위기로 시작하며 첫 주제의 강력한 아이디어와 피아노의 표현력 높은 아이디어가 서로 대비를 이루며 발전해나간다. 2주제로 두 번째 부분이 시작하며 재즈풍의 만화경 같은 음의 세계가 펼쳐지고, 마지막 부분은 1부의 자유로운 재현과 왼손 피아노의 아름답고 긴 카덴차를 거쳐 2부의 재즈풍의 주제가 재현하는 짧은 코다와 함께 끝을 맺는다.
추천음반 라벨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알프레드 코르토와 마르게리트 롱이 연주한 역사적인 녹음이 작곡가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가장 역사적인 기록으로 언급된다. 그 다음으로 코르토의 제자인 상송 프랑수아의 연주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현대적인 감수성이 절묘한 평행선을 이루는 명연으로 그 명성이 높다. 크리스티안 치머만과 피에르 불레즈의 현대적인 연주는 이 작품의 모던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명연(DG)으로 손꼽히고, 장-이브 티보데와 샤를 뒤투아의 협연(DECCA) 역시 현란한 색채감과 현대화한 프랑스 피아니즘이 돋보인다. 한편 각각의 작품에서 최고의 연주자로 손꼽히는 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EMI)는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녹음하지 않았고 로베르 카자드쥐(SONY)는 두 손을 위한 협주곡을 녹음하지 않아 안타까움을 남긴다.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첫댓글 좋은 음악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연주가 까다로운 곡으로, 상대적으로 녹음이 그리 많지 않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음반은 샹송 프랑소와의 연주가 보편적인 추천반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 명연에 이어 다른 연주를 꼽자면 불레즈와 함께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음반(1996, DG)과, 최근의 훌륭한 음질과 연주로는 불레즈와 함께 녹음을 남긴 아이마르 (Pierre-Laurent Aimard / 2010, DG) 나 얀 파스칼 토틀리에 와 함께한 바부제(Jean-Efflam Bavouzet, Chandos) 를 꼽을 수 있습니다. 모두 많은 음반 잡지와 가이드에서 추천을 받은 음반들로 라벨의 피아노협주곡이 보여주는 분위기와 흐름을 잘 포착한 연주라고 할 수 있지요.(음반 가이드입니다)
라벨! 매우활발하고 귀엽고..한편의 판타지 소설을 보는듯한? 느낌ㅎㅎㅎ 갠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곡이에요^^~
이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 는 단악장 형태로, 중단 없이 연주하게 되는 협주곡입니다. 나눠 본다면 모두 세 부분으며 무수한 피아노 곡 가운데에서도 난곡으로 일컫는 <밤의 가스파르> 와 같이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있어요. 초반부에서는 재즈의 느낌도 받을 수 있으며 한 손으로 연주하는 피아노를 위한 곡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구성이 촘촘합니다. 라벨의 마지막 작품들 가운데 속하는 이 곡은 다채롭게 변하는 리듬과 분위기, 그러면서도 매우 아름다운 부분도 빠짐 없이 등장하는 명곡으로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맛볼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답니다.
잘 듣고 갑니다. 해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