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틈새에 불어오는 외로움이란 바람 / 이종영
지난해 겨울이었다. 삼한사온이 실종된, 기록적인 강추위와 폭설은 곳곳에 생채기를 남겼다. 홀로 살던 할머니 한 분이 힘들게 김장을 마친 뒤, 자식들에게 갖다 먹으라는 사연을 남기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가슴 시린 뉴스를 접했다. 치매 초기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여든 넘은 어머니를 모시는 형님이 계시기에 남 일 같지 않아 더욱 안타까웠다. 한때 사회생활의 기본 형태로 받아들여진 핵가족 시대는 경로효친 사상마저 실종시켰다. 자식들은 구유를 떠나는 나귀처럼 직장을 따라,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고향을, 부모 곁을 떠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미워하고 상처받으면서도 서로 어깨를 내어주며 공유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빠른 고령화와 더불어 독거노인 가정이 늘어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경제적 빈곤과 외로움으로 인한 자살률 급증은 이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소외된 삶은 피폐한 몸과 마음으로 이어지며, 그로 인한 치매 발병률 또한 2~5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처절한 정신적 유배인가. 언제부터인가 명절이면 부모가 자식을 찾아 상경하는 역귀경 풍경이 낯설지 않다. 사람이 살아가며 가장 무서워하는 세 가지가 가난, 늙음, 외로움이라 했다. 그중 외로움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외롭다 하여 그 누구도 등대처럼 두 팔 벌려 반겨주지 않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20여 년 전, 미국 동부 메릴랜드의 누님 댁에 머물 때였다. 낯선 이국땅의 모든 것이 신기해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느라 마음을 나눌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여러 도시를 돌아다닌 지 석 달째 되던 날이었다. 생전 처음 가본 버지니아 바닷가에서 게 낚시를 하던 중, 무심코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갑자기 두고 온 딸아이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해일처럼 엄습했다.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혈육인 누님 댁이었음에도 순간 깊은 외로움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잠시 들뜬 여행에 취했을 뿐, 가족은 어디에 머물든 결코 지울 수 없는 존재임을 새삼 깨달은 체험이었다.
영국의 실화 하나를 소개한다. 가족 없이 외롭게 살던 한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집을 정리하고 양로원에 들어가 남은 생을 보내고자 집을 매물로 내놓았다. 평생 가꾼 집을 떠나기 싫었지만, 이젠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혼자 생활할 수 없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워낙 환경이 아름다운 집이라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집값은 순식간에 50만 파운드(약 7억 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청년이 터무니없는 액수인 1만 파운드(약 1,400만 원)를 들고 와 노인에게 말했다.
“이것이 제 전 재산입니다. 만약 제게 이 집을 파신다면, 어르신이 돌아가실 때까지 매일 함께 차를 마시며 산책하고, 신문을 읽어드리며 곁에서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한참 동안 청년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던 노인은 결심했다. 오랜 세월 정든 집을 떠나지 않아도 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외롭지 않게 말벗이 되어주겠다는 청년에게 1만 파운드라는 헐값에 선뜻 집을 넘겼다. 결국 물질의 부(富)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인간은 늙어갈수록 몸의 나이가 아닌 마음의 나이로 산다. 그러기에 빈둥지증후군을 이겨내지 못하고 공허와 상실감 속에 결국 자신을 묻는 것이리라.
우리 모두는 저마다 독창적인 욕구를 지니고 살아간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고동 속에 갇힌 달팽이처럼 자신을 가둘 때 외로움은 배가 된다. 이제는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것에만 감탄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의료혜택과 외로움 없는 삶의 질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가족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감만큼, 어렵고 힘들 때마다 위로하고 감싸주는 이들을 우리는 가족이라 부른다. 완벽한 원처럼 살아가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모든 것이 용서되고 이해되는 사랑, 그 자체가 바로 가족이다. 살다 보면 인생의 '데드포인트(Dead Point)'는 누구에게나 오기 마련이다. 다만 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이 부디 최소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첫댓글 공감하는 수필 한 편
감상 잘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