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졸업한지가 몇년일까요? 계산을 해 보기도 겁이 납니다.
그저께는 그렇게 아련했던 시절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중학교 입시가 평생을 좌우한다는 믿음이 굳세던 시절이라
6학년때 과외라는 것은 거의 신앙과도 같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애들이 무슨 실력이 그리 출중하고 달랐겠어요만은
무서운 과외선생님을 모시고 여섯명이 뭉쳐서 매일하는 과외는
요즘 타이거맘들의 활동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중 다른 중학교로 진학을 하게된 유일한 친구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에
전혀 만나지를 못하다가 재작년엔가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거의 40년을 훨씬 넘은 후에 만나게 되었지만 얼굴을 대하는 순간
그대로 예전으로 돌아가기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어지는게 초등친구인가 봅니다.
그날은 2년만에 두번째 만나는 날로 근 40여년간 따로 살아온 인생에 대한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졌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친구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무런 거리감이 없었는데
후에 알고 보니 각자가 얼마나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지요.
아이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 등등으로 전전하다가
집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집이라면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20년을 줄곧 한 아파트에 살다가 필요에 의해 팔고 나서 이젠 무주택자로의
편한 삶을 살고 있는 저는 겉으로는 아주 단순한 사연을 가진 셈이고.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는 거의가 그렇듯이 경치 좋은 곳에 고색창연한
좋은 집에 안정적으로 살고 있기에 안팎으로 단순한 사연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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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는 지금 경기도에 집을 짓고 있은지가 여러 해 되었는데
아직도 짓는 중이며 그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기구하고도 복잡한 사연때문인 것은
재작년에 만났을때도 들었던 바입니다.
땅. 집, 시댁 등등등...
이 단어들이 갖고 있는 의미를 품은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해도 모자랄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식 사연이 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있었고.
그렇게 많은 사연이 숨겨져 있었음에도 아직도 집을 완공하지 않았기에
아직도 시작되지 않은 이야기는 그만큼 더 계속 될 것입니다.
왜 집에는 그렇게 많은 불편한 이야기들이 존재해야 할까요?
다른 한 친구도 집이라면 한이 맺힌 사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때 같이 과외를 할때부터 홀어머니 슬하에 힘든 가정 형편으로
후에 가장의 역할까지 도맡아야 했던 그 친구는 현재 집이 네채라고 합니다.
부동산 계통의 일도 오래 해 왔기에 그 분야에서 모르는게 없는 친구였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남편의 뜻에 따라 일년반 만에 한번씩 이사를 해야했기에
정말 두발을 뻗고 울고 싶었던 날들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고향을 고집하는 남편 때문에 경기도를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줄곧 이사만을 반복해야 하던 중
너무나 힘이 들어서 한집에 오래오래 살게 해 달라고 기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응답을 쉽게 받았다네요.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알려주시더랍니다.
어차피 천국에 오면 영원히 살텐데 땅에 살때 이리저리 좀 옮겨 가며 살면 어떠냐구요.
그런 당연한 답을 얻고나자 이사에 대한 불평이 싹 사라지면서
이젠 남편이 ‘내일 이사가자’고 해도 ‘그러지 뭐’ 할 것이라고요.
천국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바도 아니었지만 그런 답을 자기의 것으로 하고나니
그후에는 그 다양했던 불평들이 정말 눈녹듯 사라지더랍니다.
어느날 목사님께서 심방을 오셨기에 그런 간증을 했더니
그 목사님께서 오히려 은혜를 받으시면서 자신도 집에 대한 고민이 많은 중이었는데
우리 친구로 부터 해답을 얻었다고 감사해 하시더랍니다.
우리들은 말로만 천국에 간다고 하지 아직도 그 가야할 일을 구체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다 놓고 가야 할 것들을 왜 그리도 손에 움켜쥐고 있고
바닥에 깔고 앉아 있으려 하는건지요.
천국으로 마지막 이사를 하면 모든 상황이 끝이나건만 그 전에 세상에서
자신이 만든 천국에 대한 이미지를 죄다 경험하고 싶은게 사람의 마음인듯 합니다.
아, 한가지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확실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옥목사님께서 소천하셨을때 저를 포함 아주 많은 성도들이
천국에 대한 실제를 느끼게 되었다고 많이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천국에 가면 옥목사님을 만나 뵈올 수가 있겠구나.’
사실 이 고백에 따르는 행동을 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직접적인 작은 증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마음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은 무언가 다른 신앙관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이 땅에서의 집은 그저 순례자의 길중에 잠시 머무는 공간에 불과합니다.
이제 집은 투자 가치로서의 의미도 거의 없어졌고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는 인식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최근의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교회가 건물이 아닌 것도 확실하게 눈으로 보아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기도회를 갖게 되는 강남 본당도 영원히 우리들의 예배 처소가 될수 없다는것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오늘 이곳에서 우리들이 기도하며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받고 서로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그 목적이라면 초막이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다만 그렇게 예배와 찬양을 드릴 공간이 필요한 것 뿐이지요.
우리들이 믿음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곳,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하나마다 사연이 담겨있는 곳,
믿음의 터에 굳게 서있어도 들어서면 어린아이처럼 되어 빈마음이 되는 공간.
온마음을 다하여 예배드리며 찬양하는 공간.
오늘 우리는 그런 곳에서 기도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훼손된 교회와 예배의 본질이 회복되기를 소망하며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예배를 드렸던 공간에서 그 일을 위하여 기도회를 갖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을 모아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 영원한 천국에 오르기 전까지는 우리가 어디에 있던 어디를 가던
우리가 있는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너른 땅에 큰 집을 지으면서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이
지난 일들에 대한 염려보다 더 많을 수 밖에 없는 친구.
집을 식구 수대로 소유하고 있어도 무수하게 이사를 다녀야 했던 친구.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도 맘편하게 잘 지내고 있는 저,
그래도 아들네 집때문에 근심 걱정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천국을 앞에 두고는 다 같이 험난한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을 뿐입니다.
집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고 있을 무렵, 아주 큰 집앞에서는 기도회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와서 사십년만에 다시 우리를 만난다고 그날만을 간절히 기다렸던 친구를 두고
금세 자리를 뜰수 없어서 간간히 스마트폰으로 들여다 보는 기도회가
제게는 마치 천국과 같게 느껴지는 결석한 기도회에 대한 소회였습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오늘은 주일 마당기도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교회가 교회되게 예배가 예배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진리만이 선포되는 강단이 되게 하소서.
복음만이 살아 역사하는 교회로 회복시키소서.
우리들이 드리는 기도회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산제사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임재하심과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는 풍성한 은혜를 나누게 하소서.
첫댓글 영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죄인인 우리들을 영원한 천국에 오르게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
오늘 우리는 주일 기도회를 갖습니다. 교회와 예배의 본질이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어차피 천국에 이르면 영원한 하나님의 집에 거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살때에는 그것을 잠시 잊고 집에 대한 열망 보이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 너무나 강합니다. 하나님 우리들의 욕망을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을 수 있게 도와 주시 옵소서. 하나님의 진리만을 나의 소유로 삼게 하소서. 그리하여 매일의 삶이 성령충만함을 체험하는 풍성한 은혜로 채워지게 하소서.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오늘도 함께 하시는 성령의 은혜로 행복한 기도회되길 기도하며 갑니다!!
아멘!
지난 10년 동안 세속화된 강단설교로 인하여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하옵소서
강단에서 천국 복음이 선포되게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하소서
주신 것에 감사하며 자족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아멘!
아멘...오늘도 기도회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하시어 오는 날들을 소망 가운데 지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