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 주신글]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
신격호 명예 회장이 19일 오후 4시30분 별세했다. 향년 100세에서 1년이 부족한 99세. 9 수를 못 넘겼다.
신 회장의 별세로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이 재계를 이끌던 창업 1세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롯데 장학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차남 신동빈,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가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롯데는 독일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인 샤 롯데의 이름에서 따왔다. 일본에서 고학을 하며 어려운 시절에 이 책을 읽고 장차 회사를 차리면 롯데라는 이름을 써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인간 신격호
일제강점기인 1941년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과 우유 배달로 고학을 했다.
1944년 선반(절삭공구)용 기름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했으나 2차 대전 때 공장이 전소하는 시련을 겪었다.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 재기에 성공한 그는 껌 사업에 뛰어들어, 마침내 롯데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롯데는 초콜릿,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맨손으로 시작해서 롯데를 국내 재계 순위 5위 재벌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고국으로 눈을 돌려 한 일 수교 이후 한국 투자 길이 열리자 그는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관광산업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신념으로 롯데호텔과 롯데월드, 롯데면세점 등 관광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국내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 건설도 신 회장이 1987년 "잠실에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며 대지를 매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상권(商圈)은 거저 주어지기는 것이 아니다. 좋은 제품과 좋은 서비스가 좋은 상권을 만든다.
땅을 보는 눈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뻘과 물웅덩이였고. 비가 오면 범람할까봐 걱정하는 유수지였다.
주변에는 참외밭 뿐 이이고. 배후 상권이 없으니 장사는 될까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2년 안에 명동만큼 번화한 요지가 될 것이라고 확신을 했고 과감히 투자했다. 이는 현실이 되었다.
고객과의 약속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야 한다.
신 회장이 일본에 건너가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苦學)할 때의 일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경우에도 배달 시간이 정확하기로 소문이 났다.
주문이 늘어나 배달시간을 못 맞추게 되자 아르바이트하던 처지에 배달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아르바이트가 아르바이트를 고용한 것이다.
신 회장의 이러한 모습에 반한 일본인이 선뜻 사업자금을 대 주었다고 하니, 오늘날 한국과 일본에서 굴지의 기업인 롯데의 자산은 바로 신격호 회장의 신용과 성실함이었다.
실사구시
신 회장의 집무실에는 ‘거화취실(去華就實)’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하는 실사구시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과 일본을 오갈 때도 혼자서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탔다. 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 회장들과 달리 사무실은 아주 소박하여 크기나 실내장식이 중소기업 사장 집무실 보다 못했다.
책임감
기업은 자신의 책임이다. 신중하게 경영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모한 투자는 종업원들이나 협력업체에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국가에게도 상처로 남길 수 있다.
롯데의 신중한 투자방침은 신 회장의 이러한 책임경영에서 비롯되었다.
회사가 실패할 때 오너는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
신 회장은 평소 기업이 정부와 국민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현장경영 원칙
신 회장은 고객으로부터 직접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현장으로 달려가기를 당부한다.
롯데백화점이나 롯데호텔에 불쑥 나타나 직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리고 손수 매장을 둘러보면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친절한지, 청소는 잘됐는지, 안전점검은 잘하고 있는지 등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현금이 들어오는 장사
사업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신 회장에게 ‘실패를 모르는 기업인’이라는 이름이 붙게 할 정도였다.
롯데는 제조업을 안 하고 과자 등 소비재와 호텔 등 서비스업이 주종이다. 이래서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현창이 들어온다. 빗 낼 필요가 없다.
잘나가던 기업들이 지나친 차입 탓에 경영을 위협 받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신 회장의 무 차입 경영 원칙은 IMF 사태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으면서 한층 더 빛이 났다.
롯데는 큰 어려움 없이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룹의 역량이 더욱 강화되었다.
관광보국(觀光報國)
외화가득률이 90%가 넘는 관광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신 회장은 관광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 관광산업을 체계적으로 도입한 인물이다.
그래서 투자회수율이 낮고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 관광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관광을 통해 국력을 키워야 한다며 최초로 독자 브랜드를 가진 호텔을 건설하고 세계 최대의 실내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일에 투자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다. 그들이 우리나라를 다시 찾도록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 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최고층 빌딩을 지어 한국의 랜드 마크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젓다.
신 회장은 잠실의 롯데월드를 세계 최대의 관광 명물로 만드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재벌가로 시집간 스타들
한국에서 스타와 재벌 커플 1호는 영화배우 문희와 장강재 한국일보 회장이다.
그 다음으로 신격호 화장과 미스 롯데 서미경이다. 당시에는 미스코리아가 무슨 채홍사를 시켜 회장의 첩을 뽑는 행사냐며 말이 많았다.
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린 배우 정윤희도 1984년 중앙건설 조규영 대표와 결혼했다.
배우 김희애가 ‘한국의 빌게이츠’로 불리는 이찬진 대표와 결혼했고, 배우 김희선은 락산그룹 박성관 회장의 아들 박주영 씨와 결혼했다.
배우 최정윤이 이랜드 그룹 박성경 부회장의 장남 윤태준 씨와 결혼했고, 배우 유설아가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의 차남 윤새봄 씨와 웨딩마치를 올렸다.
스타 아나운서와 재벌가와의 만남도 있었다. 황현정 아나운서는 이재웅 다음 창업자와 결혼했고, 노현정 아나운서는 현대 기아차 정대선 회장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배우 고현정이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장남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2003년 8년 여 간의 결혼생활을 정리했다.
배우 황신혜는 에스콰이어 사장 아들인 이정 씨와, 미스코리아 출신 한성주 아나운서는 애경 그룹 장영신 회장의 아들 채승석 사장과 결혼했으나 1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정재와 같이 남자 스타 중 재벌가와 인연을 맺은 사람도 있다. 배우 박신양은 2002년 해외 식품 브랜드를 수입한 기업의 손녀로 알려진 백혜진 씨와 결혼했다.
배우 배용준은 지난해 열애 사실을 인정했는데, 상대가 구자균 LS 산전 부회장의 차녀로 알려졌다.
허주의 아침산책 길에서
할아버지 꽃 상여 타고 마지막 가시는길
첫댓글 한국에서 스타와 재벌 커플 1호는 영화배우 문희와 장강재 한국일보 회장이다.
그 다음으로 신격호 화장과 미스 롯데 서미경이다. 당시에는 미스코리아가 무슨 채홍사를 시켜 회장의 첩을 뽑는 행사냐며 말이 많았다.
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린 배우 정윤희도 1984년 중앙건설 조규영 대표와 결혼했다.
배우 김희애가 ‘한국의 빌게이츠’로 불리는 이찬진 대표와 결혼했고, 배우 김희선은 락산그룹 박성관 회장의 아들 박주영 씨와 결혼했다.
배우 최정윤이 이랜드 그룹 박성경 부회장의 장남 윤태준 씨와 결혼했고, 배우 유설아가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의 차남 윤새봄 씨와 웨딩마치를 올렸다.
스타 아나운서와 재벌가와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