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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대로 이루어지는 법칙」
丙 | 甲 | 辛 | ◯ |
◯ | 戌 | 亥 | 亥 |
팔자 간지가 이렇게 놓여 있을 때 꿈꾸는 바가 辛-관만 꿈꾼다면 자기가 살아가면서 丙-이 글자가 온다 하드라도 주제로 하지 않는다. 내가 빨래방을 한다. 서면 로타리를 구경하면 빨래방만 기억하고 있더라. 자기가 보고자 하는 데만 이 세상이 보여진다. 辛-관을 끝까지 들고 있으면 반드시 지지에서 땅에 내려와서(酉) 뜻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을 자기 삶의 주제로 맞추어 살 수 있다는 거다.
그것이 믿는 대로 이루어지는 법칙인데, 辛-관만을 끝까지 찾으면 지상에는 子에서 부터 亥까지 다 있어요. 이미 구족(具足) 해 있다. 이미 충분하게 준비되어 있는 거다. 이미 땅에는 구족해 있는데 우리가 발견을 못한다. 辛-관을 꿈꾸는 사람은 지지에 다른 글자가 있다 하더라도 酉에 가서 논다. 그런 요소를 끊임없이 찾게 된다. 그 속에서 酉가 강화될 때 현실 속에서 잘 이루어진다.
丙 | 甲 | 辛 | ◯ |
◯ | 戌 | 亥 | 亥 |
酉가 가을이다. 국화다. 지금 국화가 酉월 戌월이 되면 국화가 한창 피죠. 자기 마음속에는 맨날 국화를 꿈꾼다. 봄에도 놀로 가면 국화 밭에 가요? 보리밭에 가요? 국화 밭에 가서 놀겠죠. 그런데 국화 밭에 꽃이 안 피었다. 안 피어 있지만 봄에 놀더라도 국화 밭에 가서 논다. 노니까. 결국은 時運이 도래해서 국화가 필 때 자기가 국화 밭에서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있더라. 간지에 이미 부여된 것은 여러 가지 있다.
부여된 여러 가지 중 무엇을 소망하느냐? 소망하는 자, 이것을 다른 말로하면 봄에 국화 밭에 서 있는 자예요. 이 사람은 뭐라 하는 줄 알아요. 봄에 국화 밭에 꽃이 없다 해도 소망하는 자, 꿈꾸는 자는 시운이 도래하면 반드시 꿈을 이룬다. 꿈을 안 꾸는 것이 문제지. 사주팔자를 공부하면서 꿈을 안 꾼다면 人生은 꽝이다. 집안에 앉아서 국화 밭에 안 나가는 사람은 국화를 가질 자격이 없는 것이다.
즉 소망하고 꿈꾸는 자는 노력하는 자이다. 노력하는 자는 무엇이 갖추고 있어요? 정성(誠)을 갖추고 있다. 誠-다음에 가장 자주 붙이는 것이 뭐예요? 實, 誠實이다. 진짜에 대해서 실질적인 것에 대해서 정성스럽게 대한다. 모든 것이 정성으로 대하는 데,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에 진심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거다. 성실성을 잊어버린 사람은 運命을 논할 資格이 없다. 콧구멍 쑤시며 때 되면 된다. 運이 오면 된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국화 밭에 서서 봄의 서러움을 아는 사람이 국화를 얻을 자격이 있다. 그러니까. 성실한 사람은 運命을 논할 필요가 없다. 運命을 논하지 않는다. 誠者不要運-성실한 사람은 運을 요구하지 않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열심히 자기가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다. 운이 없이도 성공을 한다. 이것이 運命의 法則이다. 大德必隣(대덕필린)-대덕은 반드시 이웃이 있다.
성실함이 무르익어서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大德이다. 성실함이 무엇이냐? 자기가 꿈꾸는 자, 아! 나는 이것을(辛) 정말로 갖고 싶다. 그랬을 때 소망하고 꿈꾸게 되면 저절로 노력이나 정성스러움이 올 수밖에 없다. 그 정성스러움이 묵으면 큰 덕이 되는 것이다. 비구라의 ‘미정류의 법’이란 유명한 화엄경에 글을 보면 ‘비구라’의 스토리가 나와요. 비구라는 부처님의 제자이면서도 단 한 번도 질문을 안 했다. 질문 한 적이 없고 남을 위해 설법을 한 적도 없다.
어느 날 여러 수제자가 물었다. “만약에 부처님의 법을 그대로 전수해 주는 멤버가 있다면 누구겠습니까?” 부처님이 한창 고민하다가 나는 ‘비구라’를 선택하노라. 아니 ‘비구라’는 수업시간에 맨 뒤에 와서 그냥 앉아서 빙긋이 웃고 남을 위해 가르치지도 아니하고 애써서 설법을 위한 모임에 가서 활동도 안하는 데 왜 이 사람을 선택하느냐?
그래서 수제자들끼리 뛰어가서 ‘비구라’에게 물어보니 이 때 8가지 이야기를 해요. 그 중에 어떤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면 자기가 남을 위해 설법을 안 한 기타 등등의 이유를 이 이야기를 통해 비유합니다. ※사람은 갈아야 할 저마다 밭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삶을 ①남의 밭에 열심히 김을 매주는 것으로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②그러나 나는 남을 위해서 김을 매지 않는다. ③또한 내 인생에 기쁨으로 여기지 않는다. ④차라리 그럴 시간이 있으면 내 밭에 김을 열심히 매겠다. ⑤내 밭에 김을 열심히 매서 가을에 수확을 많이 하겠다. ⑥그리고 수확이 아무리 많이 나와도 이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지 않겠다.
⑦그러나 나는 열심히 노력하여 내 밭을 갈아서 많은 수확을 걷는 것만으로 萬人의 밭을 갈아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運命에 대한 자세란 것이다.
자기 밭도 옳게 관리 안하면서, 즉 자기 밭에 잡초가 무성한데 남의 밭에 가서 김을 매주었다고 해서 이것이 業이 善業이 되어서 자기에게 돌아오리라 생각한다면 더러운 거래이다. 더티 트래이드, 불전함에 돈을 집어넣으면서 뭔가 내게 보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dirty trade이다. 이런 더러운 거래의 존재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내 밭을 잘 가는 것만으로도 만인에게 훌륭한 귀감으로서 만인의 밭을 갈아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대덕이다. 誠이 무르익으면 즉 정성이 무르익으면 대덕이 된다.
그다음에 대덕을 넘어서면 어느 분이 많이 써든 것인데 大道無門-대도는 문짝이 없다. 공항에 가면 문이 없다. 톨게이트가 없다. 큰 길은 문짝이 없다. 大道는 大德을 뛰어넘어서 大道를 터득했을 때 道人은 그 無門-문짝이 없는 곳에 사느니라. 이것이 운명에 대해서 초연한 정도의 단계인데
丙 | 甲 | 己 | ◯ |
◯ | 戌 | 亥 | 亥 |
誠者不要運-성실하지도 못한 인간들이 도를 꿈꾼다. 이것은 사기다! 사기! 자기 인생에 대한 기만이다. 그래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노력해 본 사람만이 점쟁이 멱살을 잡고 따질 자격이 있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사는 데 왜 안 되뇨?” 그때 운명이란 것이 있다. 팔자가 있다고 이야기해 준다. 열심히 안 살면서 와서 맨날 선생님 언제 잘 되겠습니까? 맨날 점쳐보라. 안돼요. 그러면 내 목표가 뭐다. 이게(己) 돈이다.
돈은 어떤 사람에게 오는 줄 압니까? 돈을 소망하는 자, 꿈꾸는 자가 돈을 가지게 된다. 왜? 국화처럼 지금은 돈이 없으니까. 꿈꾸는 자가 가지게 되는 데 그러면 꿈꾸는 자는 노력을 해야 된다. 그다음에 그 노력은 정성이 있어야 된다. 성실히 해야 된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항상 돈님! 돈님!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돈이 더 붙고 아! 돈을 내가 내게요? 하면서 술 먹고 나서 제일 먼저 일어나 계산하면 돈이 좋아 안하겠죠.
어쩌다 자기한테 돈이 왔는데 뻑! 하면 나가라 해버리니까. 돈이 자기를 좋아 하겠나. 돈을 사랑해라. 그래야 돈이 더 붙더라. 돈을 사랑하면서 잃어버리는 것이 많으면 안 된다. 인생이 돈만이 아니니까. 인생이 몇 가지 있다고 예, 내 빼고 財官印食比이다. 이 5개 중에 財는 인생에서 20% 정도 차지 할 때 발란스가 맞다. 발란스를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렇게 해야 균형이 맞다.
불균형이 아니라 균형이 맞는 형태로 되어 있으면 財가 20%인데 20%를 마냥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창문을 열고 뛰어나가서 돈 밭에 가서 돈 농사를 지어라. 어떻게요, 열심히 지어라? 열심히 지어도 안 될 때 도사님을 찾아라.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러면 언젠가 국화가 필 것이다. 돈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어떤 자세로 예, 열심히 김도 매고 밭도 매고 열심히 국화를 기다려야 된다.
그래서 미래는 누구의 것, 소망하는 자, 꿈꾸는 자의 것이다. 그것이 다 책에 나와 있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리리라” “뿌린대로 거두리라” 이것이 운명의 법칙이다. 기본적인 운명의 법칙을 무시하고 사주팔자를 공부해서 나는 언제쯤 잘 될 것이야. 하면서 맨날 잠 자버리고, 하루 24시간을 이리저리 죽여 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운명이 뭐요?”하고 과연 법당 안에 부처님한테 따질 자격이 있나. 그래서 술을 마셔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술을 마셔라. 한껏 먹어버려라. 있는 대로 다 먹어버려라. 술을 마셔서 해결되는 것은 딱 하나 있다. “잊여야지 잊여야지 어차피 떠난 사람” 이것은 술 마시면 도움이 되요. 그런데 술 마셔서 도움이 되는 것은 거의 없다. 운명에 도움을 주는 요소는 거의 없다. 그래서 술을 과하게 마심으로서 내일을 빼앗기는 사람은 인생이란 게임에 벌써 지고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현재신(現在神)이 머무는 사람, 과거신(過去神)이 머무는 사람, 미래신(未來神)이 머무는 사람이 3가지가 있다. 과거신이 머무는 사람은 관상이나 사주를 볼 필요가 없다. 그 사람하고 10분만 대화해 보고 입만 때면 “아! 왕년에, 옛날에, 5년 전에 나는 뭐 뭐 뭐 했는데~” “괴로웠다. 참 기뻤다” 과거신이 그 사람에게 많이 지배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내용의 절반이상이 과거신이라면 눈이 하나 없는 사람으로 보라. 현재신은 가장 많은 데 지금 TV와 똑같다. TV에 재미있는 것 나오면 “우아!!” 하다 슬픈 장면이 나오면 “카!” 또 뉴스 나오면 “저러면 안 되는데” 완전히 현재만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이 순간을 영원히~” 노래 부르는 것을 전부 오늘 뿐이에요. 내일은 없다.
오늘 먹고 쓰고 그다음에 골치 아픈 문제는 내일로 미루어 버린다. 그리고 내일 되면 내일 되는 대로 해결하고, 이런 사람들이 현재신이 많이 머무는 사람이다. 몸은 현재에 있으면서 과거의 추억만으로 살아갈 힘도 없고 미래에 꿈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다음에 未來神이 많이 머무는 사람은? 입만 때면 내일은 내가 무엇을 해야 되고 모레는 내가 뭐를 해야 되고 내가 5년 뒤에는 내가 이것이 될 것이다.
이곳에 많이 노는 사람들은 어린이들이다. 그래서 “나는 나는 될테야, 국군 아저씨가 될 때야.”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이것이 전부 다 입을 때면 미래신을 말한다. 과거신에 많이 노는 것을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말을 붙이면 구신(舊神)이라한다. 에라이 구신아!! 누룽지처럼 붙어서 추억을 핥으면 하루하루를 보내고 추억만으로 산다. 여자는 때로 추억만으로 많이 버틴다.
그런데 사회생활하면서 이런 구신(舊神)을 만나면 진짜 피곤하다. 전화 하자마자 “어제 뭐했어요?”어제인 과거는 묻지 마라. 그런데 “어제는 뭐했어요? 나는 그저께 어디에 갔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전부 다 구신이 그 사람 몸에 놀고 있는 사람이다. 소유할 것이 과거 밖에 없는 사람이다. 공원에 가면 많습니다. 담배 물고 앉아 먼 산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사람은 가진 것이 과거밖에 없고 현재는 볼품없고 내일을 생각하니 까마득하다. 젊은이 중에도 이런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구신이라 한다. 미래신이 노는 것을 귀신(鬼神)이라 해요. “절마 저놈은 완전히 귀신이다” 왜? 미래를 알아맞히니까. 자기의 생각은 항상 미래에 가 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말을 하더라도 앞으로 이것이 올 것이다. 저것이 될 것이다. 안테나가 미래에만 발달 될 수밖에 없다. 귀신처럼 알아맞힌다. 기특하게 아는 것을 귀신이라 한다. 박사위에 도사, 도사 위에 귀신이다. 그 양반은 고스톱에 박사다. 그 위에 한 세계를 열었노라. 고스톱의 신경지인 한 세계를 연 사람을 도사라 한다. 그것보다 더 뛰어난 경지를 넘은 사람을 명도(名道)다. 귀신이다.
그래서 귀신이 많이 머무르는 사람은 보통 어린애나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말을 할 때 항상 앞날을 많이 이야기해요. 그래서 그 사람하고 대화를 해봐서 앞날을 많이 이야기 하는 사람을 사귀라. 이 사람은 전등이 하나 더 있는 사람이다. 그다음에 현재신(現在神)이 머무는 존재인데 몸은 현재에 있으면서 과거 이야기하면 과거 편에 속했다가 미래 이야기하면 그래야지 나도 그것을 사야 되는데
그런데 옛날에 이랬잖아 하면 그래 맞아 맞아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면서 현재 속에서 발을 딛고 꼼짝 달싹도 못하는 존재를 등신(等神)이라 한다. “아이고 이 등신아~!” 등신 팔푼이, 이것이 等神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그 사람의 相을 볼 때 찰색(察色)을 살필 필요가 없어요. 대화를 해 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과거 중심이냐?
미래 중심이냐? 현재 중심이냐? 이것만 들어보면 이 사람은 성공할 사람이다. 이 사람은 미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과거신이 많이 머무는 사람은 눈이 하나 없고 현재신이 머무는 사람도 눈이 하나 없다. 입만 때면 오늘하고 어제만 이야기하는 사람은 장님과 같다. 그런 사람은 친구로도 사귀지도 마라. 사귈 필요가 없다. 잘못하면 내까지 간다. 적어도 현재신 미래신의 조화력을 가진 사람을 사귀야 된다.
그래서 과거가 현재를 지나치게 간섭하여 사는 삶, 오늘 술을 마셨기 때문에 그다음에 아침을 또 망쳐야 되는 삶, 이 사람은 운명을 물어야 할 자격이 없어요. 어저께 내가 술을 먹었다 하더라도 오늘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거라. 꼭해야할 일이 있으면 일어나죠. 아무리 어제 밤에 술 먹고 새벽 4시까지 먹었다 하더라도 아침 8시에 일어난다. 그 사람은 언제의 주인공, 오늘의 주인공이다.
오늘을 위해서 내가 어제를 단절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제께 먹었던 술과 나를 끊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오늘의 주인공이다. 어제 술을 많이 먹었지만 오늘 머리가 띵해서 더 자버렸다. 벌써 어제 때문에 오늘을 파먹고 있는 사람이다. 어제 술 먹어서 현재 시간으로 오늘의 반을 파먹어 버리고 오후가 되어서 어리버리하게 정신을 못 차리다가 퇴근해 버리고 그러면 또 미래는 꽝이다. 내일을 가지기 위한 준비 작업을 못한다.
그래서 술을 많이 먹데 절대로 내일을 간섭하지 말아야한다. 그런 사람이 소망하는 자요. 꿈꾸는 자다. 인생은 언제 행복한 줄 압니까?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인생은 행복해요. 그다음에 꿈꾸는 것이 있을 때 행복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가 열심히 공부를 하죠. 밤12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나면 머리가 뻐근하다. 도서관에서 내려올 때 다리가 휘청거리죠. 그 때 하늘에 별이 총총한 것을 보며 오늘을 소유했으므로 행복을 느낀다.
오늘을 소유했다는 것은 꿈에 다가가는 증거다. 꿈이 없는 자는 미래가 없는 사람으로 봐도 좋다. 우리가 왜 오늘 하루하루 즐겁지 않느냐? 하면 꿈이 없어서 그래요. 갖고 싶은 것이 없어서 그래요. 가져야지 하면서 정말로 갖고 싶은 꿈은 없어요. 정말로 해보고 싶은 소망이 있느냐? 이게 뭐예요. 행복이란 거요. 꿈을 채우기 위해서 오늘 하루를 가득 채우므로 이것이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요. 이런 사람에게 운명을 물을 필요가 없다.
인생을 다 담을 수 있는 것이 ‘시’ 인데 술로서 시를 채울 수 없다. 인생을 다 담을 수 있는 큰 술잔이 ‘시’ 이다. 그 술잔에 술을 아무리 부어도 채울 수 없다. 그래서 어제 때문에 오늘을 망치는 인생을 살지 마라.
그리고 팔자를 묻기 이전에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가슴에 손을 얻고 5분만 탁 생각해 보시라. 하하하 명상의 시간 할까요? 아니 저렇게 간단한 운명의 원리를 木이 어떻고 火가 어떻고 공부하느냐? 이렇게 우리가 이상적으로 살 수는 없지만 이렇게 하려고 애라도 쓸 때 우리가 팔자를 물을 자격이 있다.
그런데 물으러 오는 사람은 약 40%정도가 자격이 없어요. 오늘도 오전에 한참 동안을 이야기 했는데, 시키는 대로 말도 안 들으면서 묻기는 맨날 와서 묻는다. 마! 하지마소. 하지 마소 했는데 벌써 계약을 해서 “선생님 어짜꼬” 이런다니까요? 어찌하기는 계약하기 전에, 도장 찍기 전에 와서 이런 것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아! 이것은 이런이런 면에서 “부족하다. 좋다” 판단해 주잖아요. 저질러 놓고 기분 나빠서 한참 연락이 안 오다가 조금 있으면 또 와서 저질러 놓고 또 뛰어 오고 예, 이렇게 살 때 소망하고 꿈꾸고 살 때 사실은 지지에 땅에 이미 구족(具足)하여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이미 땅에 준비 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것이 국화라면 국화 밭에서 서성거려라. 국화 밭에서 서성거리지도 않으면서 내가 국화를 꿈꿀 수는 없다. 그러면 돈을 벌고 싶으면 돈 밭에 가서 김을 매고 씨를 뿌리고 “사랑해” 해줘야 돈이 내 품에 가득히 들어온다. 이것이 돈의 원칙입니다. 돈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내가 꿈꾸고 소망할 때 오는 것이다.
2022, 6, 5
박청화 강의 동영상 중에서
청오 안재근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