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26일 (화)
제목 : 요압의 충고
오늘의 말씀 : 사무엘하 18:31-19:7 찬송가: 309장(구 409장)
18: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19: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중심 단어
소식, 왕(다윗), 압살롬, 요압, 슬퍼하다, 백성, 위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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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압의 충고
19:5: 다윗이 압살롬으로 인해 슬퍼하는 것은 승리를 위해 애쓴 부하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19:6: 다윗을 미워하는 압살롬은 사랑하고, 다윗을 사랑하는 부하들은 멸시하는 것이다
19:7: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지 않으면 그들이 떠나고 다윗은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도움말
1. 아뢸 소식(31절): 원뜻은 ‘기뻐하다’로, ‘즐겁게 할 만한 기쁜 소식, 평화의 메시지, 승리의 소식’을 의미한다.
2. 얼굴을 가리고(19:4): 전인격을 대변하는 얼굴이나 머리를 가리는 것은 극한 슬픔이나 수치에 잠겼음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동이다.
말씀묵상
슬퍼하는 다윗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에 마음이 심히 아파 울었습니다(32-33절). 승리의 기쁨을 누려야 할 날에 다윗은 비통하게 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는 다윗의 모습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희생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슬퍼하는 것이 왕으로서 더 의로운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개인의 사사로운 일이나 감정을 배제하고, 공의롭게 판단하고 지혜롭게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요압의 충고
요압은 아들 압살롬의 죽음으로 다윗 왕이 크게 슬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왕에게 나아갔습니다(19:5). 그리고 슬픈 감정에 휩싸인 다윗에게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을 충고했습니다. 또한 빨리 슬픔을 추스르고 백성을 살펴야 할 이유에 대해 논리적으로 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19:5-7). 요압의 이런 거침없는 충고는 슬픔에 잠겨 있던 다윗에게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감정은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우리는 감정에 휩쓸려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마음을 지켜 주시고 지혜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요압의 충고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자 백성들은 어떻게 합니까(19:2-3)?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삶에서 공과 사를 제대로 구별하기 위한 여러분만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2. 여러분은 성령님께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려 주실 것을 늘 기도하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
다윗은 아히마아스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히마아스는 전쟁에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다윗을 기뻐하기보다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라고 안부를 묻는다.
요압이 보낸 구스 사람이 도착해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하자 다윗은 위층으로 올라가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라고 통곡한다.
다윗 왕이 압살롬의 죽음으로 슬퍼하자 전쟁에서 목숨걸고 싸웠던 백성들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 보다는 패배한 병사들처럼 다윗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성읍으로 들어오게 된다.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밧세바를 범하고 낳은 자식이 죽었을 때와 지금은 너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들이 죽은 것을 알고 다윗은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신하들이 그 모습을 보고 놀라자 다윗은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백성들까지 그 슬픔에 갇혀버리게 만든 것이다.
다윗도 왕이지만 자식을 잃었으니 슬퍼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위로를 받으며 누궁에게 위로를 받아서 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요압은 다윗의 명령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여놓고도 아주 냉정하게 다윗에게 충고한다.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협박하듯 다윗에게 신하들의 마음을 위로해야 된다고 몰아부친다.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다윗은 한 가정의 아비이기 전에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었다. 목숨을 바쳐 승리를 이끌어낸 부하들의 헌신을 무시한 채 자식 잃은 슬픔에만 침몰해 있는 다윗의 모습은 군사들을 패잔병처럼 부끄럽게 만들었고, 전쟁에서 승리한 백성의 기쁨을 빼앗아 슬픔으로 변질시켜 버린 것이다.
내 생각에는 ‘아무리 그대로 자식을 잃은 사람인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렇다면 지도자는 어떻게 감정을 다스리며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공동체를 위해서 어디까지 참아야 하고 절제를 해야한다는 말인가?
내 사적인 아픔과 처지가 아무리 깊을지라도, 공동체와 사명의 자리를 위해서라면 참아내야 한다는 말인가?
요압의 말은 마치 찢어진 가슴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다윗의 마음을 더욱더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윗으로 하여금 다시 왕의 자리로 돌아와 백성을 위로하게 하는 자리로 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이럴 때 지도자는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 것인가? 감정에 잘 휘둘리는 나로서는 어떻게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오늘 이렇게 내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이 또한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슬픔에 잠겨 있지만 목숨 걸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웠던 백성의 충성과 헌신에 대해서 귀하여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내 감정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외로운 감정, 슬픔 또한 하나님께 피하는 길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주님. 말씀 묵상이 오히려 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주님! 그러면 저는 어디서 위로를 받을 수 있나요? 주님! 제 슬픈 감정은 공동체를 위해서 드러내서는 안 되는 건가요? 너무 하시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그 또한 내 중심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성도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위해 감추고 그들의 충성과 헌신을 귀하여 보며 칭찬하고 위로하고 격려할 줄 아는 목회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상처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서 치유받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끝까지 감당하는 충성스런 종이 되게 하옵시고, 성령께서 주시는 위로로 다시 사명의 자리에 서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