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 공개
가장 강하게 느꼈었던 점은 내가 집단을 하는 동안 나 자신을 숨기는 데에 급급했었구나하는 것이다. 나는
나 나름대로 각 회기마다 열심히 참여하였고, 각 회기마다 당시 내가 느끼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
야기 했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 이였던 것 같다. 마지막 시간에 나눴던 롤링 페이퍼를
통해서 그 사실을 느꼈다. 왜냐하면, 하나같이 내가 ‘밝고 활기차다’라고 만 이야기 했을 뿐 회기 진행중에 있
었던 나의 슬프고 외로웠던, 그러면서도 누구보다도 매우 위로 받고 싶었던 심정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는 사
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상담자님께서는 그 부분을 지적해 주셔서 매우 고마웠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남에게 나의 겉 모습만을 보여주며 살아 왔는지, 스스로는 자신을 매우 공개
해놓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자신을 공개하지
않는 사람인데, 누가 나에게 공개를 해줄 것이며, 나 자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
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 스스로 공개 하지 않음으로 느낀 느낌은 결국 마지막 회기 때
의 ‘아쉬움’으로 나타났다. 마지막 회기에서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서 말할 때,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지 못하여서 참 아쉬웠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인지 내가 집단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얼마
나 레포를 형성 하였는지 확신 할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진실된 이야기를 끌어 낼 수 있을 정도로 포
근한 사람이 아니 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또, 자기 공개는 해본 사람만이 안다는 것에 대해서 절감하게 되었다. 나는 자기 공개가 무엇인지 모른 체, 단
지 그 말이 뜻하는 의미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자기 공개’, ‘자신을 남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그
말뜻만 생각하고 있었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자기 공개라고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자기 공개는 생
각 보다 어려웠다. 나 자신을 공개 하는 것, 그리고 남 앞에서 솔직하게 나를 털어 놓는 것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었고, 그리고 해봄으로써 오는 심적 쉬원함이 분명 있을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것을 느끼지 못
하고 이번 회기를 끝낸 것 같다.
(2) 서로 다름, 수용의 즐거움
이번 집단 상담에서는 모두가 어느 정도의 레포가 형성 되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자
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이야기 했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대해서 경청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시간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물 흐르듯이 진행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서 경험한 것은 모두가 겉보기에는 조용하다고 해서, 모두가 비슷 비슷 한 것이 아니며,
나와 판이 하게 다른 생각을 갖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 평소에 잘 이해 할 수
없었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문자에 대한 이야기다. 한 학생은 여자
친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친구에게 하루에 1~2통의 문자를 보내고, 그것이 괜찮다고 생각 한다는 것이
었다. 물론, 여자친구 측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은 그것이 편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러나 나는 이 이야기에 혀를 끌끌 찼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여자 친구는 괜찮을 까? 하는 식으로, ‘나라
면 가만 안 있을 텐데..’ 하면서, 평소에 이와 관련된 나의 일들이 생각이 났었고, 그 때마다 내가 보였던 행동
들이 생각이 났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그 분에게 있어서 문자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지않을 수도 있다 라는 식으로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살아 가는 것은 아니며,
더불어서 문자에 나만큼 가치를 메기는 것이 꼭 올바른 것도 아니고, 그것이 올바를 필요도 없다는 것을 느꼈
다. 그리고 지금까지 혼자서 화냈던 일에 대한 반성과 그리고 그분들 나름대로 열심히 나에게 반응 해주었던
것이었구나 하는 고마움을 느끼면서 그동안 ‘문자’늦게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오해를 다소 해결할 수 있었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진행 시키는 사이에, 내가 경험했던 또 다른 것은 상담자님의 태도였다. 상담자
님께서는 분명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모든 이야기를 웃으면서수
용 해주셨다는 것이다. 나는 수용 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면, 멈짓 할 텐데, 상담자 님께서는 그 상황을 밝
은 웃음과 수용적인 언어 톤과 언어로 승화시키셨다. ‘아~ 정말요?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면서 말
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끊기지 않았었던 것 같다.
한 예로, 내 이야기가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내용은 고등학교에서 절친한 한 친구가 내가 하는 일이 부러
워, 내가 하는 것은뭐든 따라 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결국 내 전 남자친구와 사귀기도 했었다는 것과
그 이후로, 서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의 절친한 친구를 잃어서 마음
이 아프다라고 진행해 나갔다. 이 이야기는 솔직히 내자신이 그다지 공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생각하
면 그다지 유쾌하지 않기도 하지만, 아직도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를 계속 진
행해 나갔던 이유는 상담자님의 끝없는 ‘수용’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 누군가는 나를
이해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계속 이야기 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나온 이야기들 때문에 후에 조금은 마음이 뜨끔하긴 했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과거의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었고, 마음 속에 뭉쳐 두었던, 이 일을 한번쯤
은 꺼내어 봐서 나에게 일어난 일이 정말로 내가 아파해야 할 일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일을 풀어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조금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 수용 그리고 이해.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이번 회기에 내가 느낀 점을 적으라면, 저 세가지 단어로 축약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 받길 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해 받기 위해서, 아니 보다 더 잘 이해 받
기 위해서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그리고 여러 가지다양한 기법을 사용 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을 이해 받는다’라는 거, ‘나’ 자신도 스스로에게 이해 받는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상담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문제가 ‘Here & now’에서 나 자신에게 어떤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는지 그리
고 그것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고 있는지를 알게 알기 위해서 상담을 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의 일들은 내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어서 더욱더 객관적으로 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
리고 우리는 나의 일을 좀더 객관적으로 보아야 하고, 그것을 위해선 분명 타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
정을 통해서 나는 나 자신을 좀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된다. 이 모든 일들을 하기 위한 첫 걸음
으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수용 받기’가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 된다. 내가 여기에서 수용 받는다고 느끼
지 못하는 이상 내 이야기를 진행 해나가기도, 나 자신을 이 사람에게 공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필요 한 것은, 내 이야기에 대한 ‘상대방의 공감’이다. 상대가 공감하지 않는 다면, 마치 ‘제 이상
한 소리 하네?’라는 식의 듣는이의 판단이 먼저 들어 가게되면, 누군가에게 내가 판단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게 되어서 말하는 자가 이야기를 속 쉬원하게 풀어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판단을 먼저 하기보
다는 수용하고 때로는 그 이야기에 대해서 공감하는 자세로 들어야, 말하는 이로 하여금, 이 세상에 나와 같
은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감을 공감에서만 그치지 말고, ‘내가 이해 받고있다는 상황’으로의 전개가 필요하다.
자신도 나를 이해 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은데, 타인이 나를 이해 해준다는 것, 완전하게 나를 이해 해준다는
것, 그것은 내가 ‘완전한 나’가 될 수 있는 하나의 시발점과 같다고 생각 된다. ‘나 자신이 이해 받지못하다’는
것.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다’는 것이, ‘나는 이 세상에 이해 받을 수 없는 존재’로 각인 되어,자신
을 계속해서 부정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결국, 스스로에게 솔직하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가식
적인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으로 내담자가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 세가지 요소는 상담에서 가
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 한다.
연세대학교 상담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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