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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길 곤지바위길(곤지암역 ~ 신둔도예촌역)
언제:2023년 12월 9일 토요일
날씨:구름 많음 기온:5/14도C
어디를:경기옛길 봉화길 제4길 곤지바위길 <순방향 걷기>
곤지암역-봉현정-이천의병전적비-신둔도예촌역 (약11.2km)
동행:아내와 둘이서
트레킹시간:3시간 41분
갈때:김포공항역,9호선급행-신논현역,신분당선-판교역,경강선-곤지암역착
올때: 신둔도예촌역-판교역-신논현 9호선-김포공항-골드라인
제4길곤지바위길(곤지암역 ~ 신둔도예촌역)
곤지암에 깃든 이야기, 역사의 위인을 찾아 가는 길‘곤지암’의 어원은, 옛날 이 마을 뒷산
끝자락에 연못이 있는 곳에 바위가 있다고 하여, ‘뫼 곤(崑)’ ‘못 지(池)’ ‘바위 암(巖)’자를 써서
곤지암이라고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이곳을 거쳐가는 사람들 로 가득했고, 이 때문에 곤지암 주막촌과 5일장이 유명했습니다.
광주에서 곤지암 까지 가기 위해서는 대쌍령과 소쌍령이라 불리는 두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신립장군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신립장군의 혼이 두 개로 쪼갰다는 넋고개 전설과 벼락이 쳐서 바위가 갈라졌고,
지금도 그 바위 위에서 향나무가 약 400년 넘게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의 명장인 신립 장군을 기리며, 곤지암 바위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곤지바위
트랭글 기록과 괴적
신립장군과 곤지암의 유래
곤지암의 지명 유래에 대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임금 선조는 자신만만했다.
당시 조선에는 신립이라는 명장이 있어 왜군이 한양으로 올라오는 걸 신립 장군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립은 걱정이 많았다.
보유하고 있는 병사의 수도 적고 제대로 훈련을 받은 자는 더더욱 적어서 최후의 수단으로
배수진을 치게 된다.
도망칠 곳이 없어야 결사항전을 한다고 생각하고 배수진을 친 것이다. 신립 장군의 부대 핵심은
기병부대였는데 전투 당시 비가 엄청 왔고 결국 참패하게 된다.
장군은 조정에 알리는 글을 남기고 투신하는데 겨우 목숨을 부지한 군사들이 장군의 시신을 광주로
옮겨서 제사를 지내게 된다.
그런데 그 이후 계속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신립 장군의 묘지 근처에 고양이를 닮은 묘바위가 있었는데 그곳을 지날 때마다 말굽이 전쟁
상황처럼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한 선비가 신립의 묘소를 찾아가서 왜 죽었는데 사람들을 괴롭히느냐 라고 호통을 쳤더니
그 묘바위 위로 천둥이 친 후에 큰 연못이 생겨났고 그 연못이 있었던 곳을 곤지암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 후로 말굽이 붙는 일이 사라졌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곤지암역 안에 만들어 놓은 크리스마스 트리
곤지암 1번 출구로 나가 왼쪽으로 바로 옆 경강선 철길 아래를 지나 저 정류소를 위에 횡단보도를
건너 계속 98번 차도따라 직진, 2번 출구로 나가 우측으로 나가도 된다.
곤지암 읍사무소를 지나고
맞은편에 119 광주 소방서
공사중인 이곳을 건너 반대차선으로 건너가야 함..
게이트볼장앞을 지나 이정표 봉현리쪽 우측으로
우측이 열미어린이집 앞을지나고, 봉화길은 좌측 지게차 옆 흙길로
남산애견 간판을 지나면 천변에서 좌측으로, 달려있는 리본이 비에 젖어도 서로 달라붙지 않고
잘 보이게 매듭을 지어주고 간다.
이른 아침에 한껏 멋을 부려보는 겨울 나목의 반영
우리목장 한우들 건강들 하거라..조심조심 지나갑니다.
광주- 원주간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제2영동고속도로
저 데크길을 따라가야 한다.
하오향1교
곤지암천을 건너
곤지암천을 끝내고,우측길로
거위 요놈들 어찌나 시끄럽게 울어 대던지ㅠ
부항교를 건너
스산한 느기쁨의 교회
마을길을 지나면 차도가 나온다.
봉현1리 빗돌..마을길을 벗어나면 차도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봉현리 마을
우측 저 광고 간판앞으로..저 멀리 첫번째 스템프함이 있는 봉현정 느티나무가 보인다.
저 파란 의자에 앉아 한참을 쉬어간다.그런데 의자가 넘 흔들거려 좀 불안하고,
※바로 조치는 있어야 겠습니다. 둘이 앉으면 벤치가 불안할 정도..스탬프북도 비어있네요.
곤지암역에서 여기까지 6.65km, 앉아 쉴 곳이 없어 여기까지 와서 처음으로 쉬어간다.
느티나무 수령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4-5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마을의 수호신 인데,
저 다리 건너
봉현마을 회관앞에서 번호도 없는 농어촌 버스가 서 있고, 차 안에서 촌로들이 창밖으로 지나가는
도보객들을 쳐다 본다.아마도 봉화길 개통으로 도보객들이 어느날부터 갑자기
많이 지나 가는게 신기한 모양이다.
봉화길은 다리건너우측으로 이지아트 앞 길로
봉현육교위에서 내려다 본 고속도로 모습..정개터널..
저 고개를 넘으면 이천 땅이겠지? 조금 가파른 길.헉헉..많이 접했던 평화누리,반가워서 찰칵..
신촌리 마을
장호원 이천방향으로
넋고개 앞 정류소
동원대학교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사립 전문대학이다. 이름과 다르게 동원그룹과 큰 관련이 없다.
동원학원의 대학교로 같은 재단 아래에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한영중학교, 한영고등학교,
한영외국어고등학교, 한영중고병설한영유치원이 있다.
효암관
게시판 옆에서 우측으로 90도 꺾여 아래로 내려간다.맞은편에 동원대 정류소
순수한 겨울나목들의 모습..저렇게 발가벗겨져도 부끄럽지 않게 당당히 서 있는
모습에 한 수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고개를 넘어오면 만나는 이천의병 전적비
이천 의병 전적비는 의병들이 1896년 1월 17일 이천 광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광현은 지금의 넋 고개 근처라고 한다.
한편 을미의병은 동학농민운동 이후 구한말 최초의 항일 의병운동으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큰 사건이다.
당시 일본은 청일전쟁 중에 경복궁을 불법 점거하고 동학농민군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뒤, 명성황후를
극악무도하게 살해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대한제국 정부의 실권을 잡고 단발령을 내렸고 이에 분노한 구연영, 김하락 등이 이천으로
내려와 이천의 무장 방춘식과 함께 의병을 모집해서 ‘이천수창의소’를 결성해 일본에 대항했다.
1896년 1월 18일 새벽, 일본군 수비대 100여 명이 공격해와 광현(신둔면 수광리 넋고개)에서 매복하고
있던 이천의병들과 첫 전투가 벌어졌는데 새벽부터 시작된 전투는 하루 종일 계속 돼 해가
저물도록 그칠 줄 몰랐고, 이날 밤 일본군이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하고 수십 명이나 되는
전사자들을 남겨둔 채 도주했다. 이에 이원회는 의병열사들의 고귀한 충절을 귀감으로
삼고 그 충혼을 길이 추모하고자 이천의병전적비를 건립했다.
전적비에서 내려오면 전선에 저 높이 달린 리본, 어떻게 달았을까?
사다리로도 높이가 부족했을 텐데...봉사하신 분들 고생 많으셨어요.
우측으로 신둔도예촌역
다..왔다..
이천의 명물인 도자기를 빚는 조형물이 역 광장에 세워져 있다.
한 때는 蘭과 도자기에 구매에 빠져 이천 여주를 자주 드나들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추억속으로...
수 십여년전 그 시절에 구입한 도자기 몇 점은 아직도 거실에서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지명의 유래를 찾아 곤지암으로.. 그러나 곤지암은 만나지 못했다.
요즘은 날씨가 4월 초순의 기온으로 길나섬하기 너무 좋은 날..
오늘은 원래 제2길을 걸어야 하는데 몸의 컨디션이 엉망이라 거리가 짧은 제4길을 택한다.
개통날 3코스 걸으면서 초월역까지만 걸어서 곤지암역까지 오지 못했는데 드뎌 와 보네요.
일단 선답자분들로 인해 많은 도움을 얻어 곤지암역 1번 출구로 나가 바로 경강선 선로 아래로
정류소를 지나면 신호건너 차도따라 직진이다.
곤지암읍사무소도 지나고 자동차종합검사소도 지나 길 건너 광주소방서도 보이네요.
GS 칼텍스 주유소앞에서부터 한창 차도 공사중인데 공사장을 지나서 맞은편쪽으로 건너
곤지암게이트볼장 휀스를 따라가다 이정표와 임시버스정류소에서 봉현리 가는 방향으로
우틀하면 우측이 열미어린이 집이고,봉화길은 좌측으로 가다 남산애견센타 간판을 지나면
천변을 만나 좌측으로 간다.
이른 아침에 겨울 나목의 멋스런 자태가 곤지암천에 그 모습 반영하여 지나는 이방인 눈요기
시켜주는 길에 우리목장 한우농장이 있는데 아주 조심스럽게 지나 광주- 원주간 고속도로 다리
아래를 지나 우측으로 하오향1교를 건너 데크따라 걷다 우측으로 곤지암천을 건너 고운농장 간판을
따라 우측으로 가다보면 거위들의 합창을 들으며<너무 시끄러움>부향교를 건너 농로로 이어진
그길에 기쁨의 교회 뒤로 이어지는 길..
마을길을 따라 내려서면 차도를 만나 횡단하면 드뎌 봉현1리 빗돌을 따라 봉현리로 접어들어 웃개마을
다리를 건너 봉현마을 따라 광고간판쪽 우측으로 들면 저 멀리 봉현정 느티나무가 손짓한다.
몇백년의 느티나무가 몇그루 서 있는 봉현정,그 수령에 대한 설명판은 없지만 오랜 세월 봉현마을 보호수로
견디고 살아 온 느티나무에 세월의 무게를 느끼며 쉴곳이 없어 달려온 길에 쉼자리 만나 한참을 쉬어간다.
막 일어서려는데 같은 길을 걷는 한분을 만나니 반가웠는데 휙하고 인증만 하고 바삐 가시는 분..
봉현정 언젠가 또 만날 기회를 부여하고 작은 다리 건너 봉현리 마을회관앞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보며
이지아트 공장앞 다리를 건너 봉현육교위를 건너 가파른 시멘트길을 따라 신촌리 마을로 접어들어
마을회관을 지나 장호원 이천 이정표 따라간다
넋고개 정류소를 지나면 저 멀리 동원대학교가 내려다 보고,봉화길은 동원대학교 정문을 통과해
정류장 맞은편으로 건너 효암관 바로위 우측으로 넋고개 임도를 내려서면 이천의병전적비로
내려선다.
그 힘들던 시절,명,청의 전쟁을 지나 조선 말기에 일본의 침략으로 피폐해진 우리나라
의병들의 활약으로 큰 힘이 되었던 의병들, 나라 사랑으로 지금의 이 나라가 지탱하고 있는데
개인의 영달이 아닌 나라를 위한 정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잠시 가져보는 시간...
그렇게 언제나 마음 찡한 의병들의 활략을 볼 때마다 나라 없는 설움이 얼마나 큰지를 잠시나마
일깨워 주는 순간이다.
그렇게 의병전적비를 둘러보고 마지막 인증 날인하고,그리 멀지 않은 신둔도예촌역으로 가는 길..
저 머리위로 높다랗게 달려있는 길라잡이 리본이 바람에 펄럭이는데 저 높은 위치에다 어찌 달았을꼬..
사다리도 모자랐을텐데 정말 애 많이 쓰셨네요.
그렇게 오늘도 수고하신 분들로 인해 그닥 헤매지 않고 잘 도착한 도예촌역..
역앞 조형물을 인증하고 이른 시간 11시 43분 전철로 여정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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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길은 언제나 설렘으로 다가 오는데 요즘 시골은 그 옛날 시골이 아닌 많은 공장들이
들어와 시골이 시골 아닌 반농이 되어진지 오래다.
그래서 자랄때의 정취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도심을 벗어나 낯선곳의 풍경은 다른 의미이기에
힘들게 만들어 주신 길위에서 옛 추억을 되짚어 가며 걸어본다.
가을 걷이 끝난 논배미에 하얀 마시멜로가 뒹굴고,삭막한 겨울 풍경에 내년을 기약하는 자연의
순환..
그리고 광주에서 시작해 장호원에서 마무리 되는 봉화길..
생각지 못한 곳에서의 유람.. 짧은 시간이지만 이천의 시골길..
천변과 농로,보여주는 곳곳의 풍경들에 눈 호사하고 가는 길에 오늘도 그 길을 이어주신
분들에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며 또 하나의 길을 마무리 한다.
2023년 12월 9일.
첫댓글 일찍 시작하셨군요.
12시도 채 안된 시간에 마치셨으니~~
해는 짧고~
가는길은 집에서 멀고~~
어느코스를 먼저 해야하나
궁리가 참많네요.ㅎ
여러가지 전설도 전해지는길~~
세세히 적여놓으셔서
수차례 오르내리며
읽고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울철이라 해가 짧아 접근이 먼 길은 망서려지지요.
컨디션이 안 좋아 일찍 걷고, 집에 와서 쉬려고
일찍 시작했습니다.
겨울철 길나섬은 날씨와 거리 등등을 고려하여 코스를 결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이지요.
성원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비그치고 나면 많이 추워진다니 건강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두분이 곤지바위길을 다녀오셨네요
곤지암역이 있는줄은 이제 알았네요
요즘은 날씨가 포근해서 걷기에 좋은것 같아요
이번주말부터 추워진다니 건강 유의 하십시요
미답지라 언제한번 다녀와야겠어요
멋진후기 즐감하고 갑니다
곤지암하면 산골, 소머리국밥, 몹씨 추운 지역으로만 알고 있었지요.
판교에서 여주까지 전철 경강선이 생기며 역이 생겼지요.
저도 예전에 보았던 곤지암이 이니고 많이 변했더군요.
그날도 날씨가 포근해서 걷기 좋은 날 이였습니다.
이번 비가 그치면 많이 추워진다니 건강 조심하시고
남은 한해 즐겁게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