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7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두려움에 가득 찬 세상
우리가 살면서 두려움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느낄 수 있는데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일 것이고 경외심에서 나오는 두려움도 있고 갑자기 당한 일에 대한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설렘도 작은 두려움이며, 합격과 불합격에 대한 두려움과 기쁨도 있습니다. 그 두려움에 때로는 가슴 졸이기도 하고,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도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밤이면 작은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18 년 전 잠을 자다가 가슴이 심하게 아파서 호흡이 되지 않아 죽을 뻔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수술도 하고 약도 먹고 나아졌는데도 그 뒤로 매일 그런 증세가 일어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해서 잠을 청할 시간이면 두려움이 밀려오고, 잠이 오지 않으면 날을 꼬박 샐 텐 데 하는 두려움이 늘었습니다.
우리는 천재지변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서 폭풍우나 지진이 그 예입니다. 아마 지진이나 화산폭발은 엄청난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에 가장 큰 두려움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큰 지진을 겪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인도네시아의 지진이나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해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입니다. 이들 모두가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폭력이나 무력에 대한 두려움도 정말 견디기 힘든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어릴 적 귀신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는데 그땐 정말 무서웠습니다. 시험을 잘 못 보아서 성적이 떨어질지에 대한 두려움도 아주 큰 것입니다. 질병으로 인한 두려움도 또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큰 두려움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전 세계에 3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염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생활이 말 할 수도 없이 피폐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몹시 두려워합니다. 배에 물이 들어오는데 마냥 태평스런 예수님이 원망스럽고 "왜 겁을 내느냐?"하시는 예수님이 말씀이 야속하고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에서 겁을 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고 우리 나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겁을 먹는 우리의 모습이 하느님에게 귀엽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그런 인간적인 모습에 대하여 당연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두렵지만 일단은 배에 타고 있고, 예수님이 같이 계시고, 배에 물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가라앉지만 않는다면 겁을 낼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배는 교회공동체를 상징하고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공동체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있고 풍랑이 치고, 물이 들어오고, 죽음에 앞서서 모두 두려워 할 만 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침묵하시고 누워서 주무시는 듯이 보일 것입니다. 우리도 살면서 이처럼 숱한 이들이 목숨을 잃고, 겁에 질려 서로 배신하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믿지 못해서 배를 떠나갔고 떠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변명으로 죽게 생겨서 배를 지킬 수 없었다고 두려워서 그랬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은 "왜 겁을 내느냐?"하시고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그것은 생명이신 주님과 같이 있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겁을 내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믿음입니다. 완전한 믿음으로 배를 구하고, 우리의 생명도 구하고, 교회 공동체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모든 법칙을 정하신 주님의 권능을 의심하며 살고 있습니다. 온전히 의탁하지 못하는 우리의 나약한 믿음을 반성하면서 이제는 의심 없이 주님과 세상을 사랑하는데 더욱 전진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2,1-7ㄷ.10-17
그 무렵 1 주님께서 나탄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나탄이 다윗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2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매우 많았으나,
3 가난한 이에게는 자기가 산 작은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는 이 암양을 길렀는데, 암양은 그의 집에서 자식들과 함께 자라면서,
그의 음식을 나누어 먹고 그의 잔을 나누어 마시며
그의 품 안에서 자곤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이 암양이 딸과 같았습니다.
4 그런데 부자에게 길손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하려고
자기 양과 소 가운데에서 하나를 잡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잡아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대접하였습니다.”
5 다윗은 그 부자에 대하여 몹시 화를 내며 나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6 그는 그런 짓을 하고 동정심도 없었으니, 그 암양을 네 곱절로 갚아야 한다.”
7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
11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거슬러 너의 집안에서 재앙이 일어나게 하겠다.
네가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너의 아내들을 데려다 이웃에게 넘겨주리니,
저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너의 아내들과 잠자리를 같이할 것이다.
12 너는 그 짓을 은밀하게 하였지만, 나는 이 일을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앞에서,
그리고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할 것이다.’”
13 그때 다윗이 나탄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14 다만 임금님께서 이 일로 주님을 몹시 업신여기셨으니,
임금님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반드시 죽고 말 것입니다.”
15 그러고 나서 나탄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께서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아 준 아이를 치시니,
아이가 큰 병이 들었다.
16 다윗은 그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호소하였다. 다윗은 단식하며 방에 와서도 바닥에 누워 밤을 지냈다.
17 그의 궁 원로들이 그의 곁에 서서 그를 바닥에서 일으키려 하였으나,
그는 마다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축일1월 27일 성녀 안젤라 메리치 (Angela Merici)
신분 : 동정녀, 3회원, 설립자
활동 지역 : 브레시아(Brescia)
활동 연도 : 1470/1474-1540년
같은 이름 : 앤젤라, 엔젤라
성녀 안젤라 메리치는 이탈리아 북부의 가르다(Garda) 호수 남쪽 데센자노(Desenzano)에서 태어나 경건한 신앙인으로 교육받았다. 어려서부터 성인전을 즐겨 읽었고, 성인들의 금욕 생활에 감명을 받아 금욕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13세 때 첫영성체를 한 후 평생 동안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는데, 쌍둥이 같이 자라던 15세의 언니와 브레시아 시민이라는 귀족 작위와 넓은 땅을 가진 영주였던 아버지 조반니(Giovanni Merici)와 어머니를 연달아 여의고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5년간 휴양지로 유명한 살로(Salo)에서 살게 되었다.
그 후 성녀 안젤라는 작은 형제회 재속회(3회)에 입회하여 기도와 가난, 극기의 생활을 철저히 실천하며 자신을 이웃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부모처럼 돌보아주던 외삼촌의 사망 후 고향 데센자노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았는데, 특히 주위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기도와 신앙생활을 지도하였다. 1516년 안젤라는 두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브레시아의 귀족 파텐골라(Patengola) 가족을 위로하러 브레시아에 갔다가 그들의 청으로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이곳에서 성녀 안젤라는 죄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속죄와 금욕생활을 하는 한편 고향에서와 같이 청소년들에게 종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1524년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다음 해 로마를 순례한 뒤 그녀는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에게 동정녀들의 모임을 시작하고자 하는 뜻이 있음을 밝히고 허가를 받아 브레시아로 돌아왔다. 카알 5세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1528년 브레시아가 점령당하자 크레모나(Cremona)로 피난을 간 그녀는 그곳에서 심한 병을 앓다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였다. 1530년 전쟁이 끝나 브레시아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뜻을 같이 하는 12명의 동정녀들과 함께 이듬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1535년 11월 25일 28명의 동정녀들은 브레시아의 성 아프라(Afra) 성당에서 영성체를 하고 성녀 안젤라가 만든 규칙에 따라 청빈, 정결, 순명을 지키는 회원이 될 것을 서명함으로써 '우르술라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고, 1537년 성녀 안젤라가 초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들은 특히 소녀들의 교육에 투신하고자 하였다. 가톨릭 여성 교육을 표방한 수녀회는 우르술라회가 첫 번째이다. 초기에 그들은 가족을 떠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수도복이 아닌 단순한 복장으로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에게 봉사하였다. 성녀 안젤라는 1540년 1월 27일 사망하여 성 아프라 성당에 묻혔고, 1768년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안젤라 메리치 (Angela Merici)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