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집을 내면서...
첫 소설집을 내면서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봅니다.
만 세 살 반쯤 되었을 때 어머니와 단 둘이 외가에 가던 길에
기차의 창밖을 달리는 말떼를 보았던 것이 생애 첫 기억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특별히 글을 쓰겠다는 생각도 없이 덜컥
문예반에 들어갔던 것도 아마 그런 영향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중3 무렵에는 벌써 주변에 시나 소설을 잘 써서 장차 훌륭한
문학인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친구들도 몇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
그들에 비해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국어
선생님이 교지에 난 내 창작 소품(초단편)을 보고 대단히 칭찬을
하시기도 했지만, 그 뒤로도 나는 글쓰기에 별 열정을 쏟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음악 쪽으로 끌려갔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부터는 주로 슈베르트의 연가곡,
특히 <겨울나그네>의 악보를 부둥켜안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독학에 무반주로 혼자 노래를 불렀지요. 그 과정에 이따금
짧은 가곡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노래를 짓는 것이 시를 쓰거나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보다 더 즐거웠습니다.
그런 경향이 대학교 때까지도 이어졌지요.
그렇다고 그동안 글쓰기 자체를 아주 내던진 것은 아니고, 창작을
많이 안 하는 대신 일기쓰기만은 줄곧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의 학교생활 이야기나 사춘기의 고민들을 낱낱이 기록하느라고
아마 하루에 두 시간은 일기에 할애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 때에는 노래도 더 많이 부르고 일기도 더 길게 쓰면서 간간이
정성을 들여 편지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또, 전에는 별로 쓰지 않았던
시를 자주 쓰게 되었지요. 모두가 연애 때문이었습니다.
시를 쓰고 노래를 짓고 편지와 일기를 쓰며 연애를 하던 그 때가 당시에는
항상 즐겁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때로는 괴로워서 죽고 싶기까지도 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한 마디로 그처럼 행복했던 시절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예술로 채워졌던 대학시절이 끝나면서,
행복했던 청춘도 일시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결혼, 아내, 아이, 돈, 일... 그런
힘겨운 현실의 과제들로 대체되는 생활 속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살아오느라고, 이제 나는 늙었습니다.
그러나 내 나이에 대해 크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늙은 덕에 옛날처럼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일기를 쓰지는 않지만,
그 대신 블로그에 이런저런 일상사를 담은 수필도 올리고, 여행사진도 올리고,
꿈꾼 이야기도 올리고...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시도 쓰고 노래도 짓고...
아아, 그리고 놀랍게도 소설마저 쓰게 되었군요.
그 옛날 중3 때, 처음 쓴 창작 소품에 대해 선생님으로부터 과도한 칭찬을
들었을 때, 왜 거침없이 소설가가 되겠다는 욕망 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모처럼 대학교 때 신춘문예에 소설을 보냈다가 떨어졌을 때, 왜 나는
소질이 없나보다고 바보같이 실망하고 말았던가, 그것이 크게 후회될 만큼
나는 지금 소설을 쓰면서 행복합니다. 정말,
소설을 쓰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 몰랐었습니다!
이제 뒤늦은 문단 등단으로부터도 4년이나 되어 생애 첫 소설집을 내면서,
한편으로는 읽는 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실까봐 걱정이 되지만,
또 훌륭하신 분들께서 좋은 쓴소리들을 해주시면 고맙게 받겠다는 각오도
하고 있지만, 마음속 결론은 행복 쪽으로 되돌아오는군요. 이 첫 소설집이
아무리 혹평을 받고 외면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다음에는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미리 말해 두겠습니다.
이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기까지 용기도 주고 채근도 해 주신 모든 분들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그 속에는 내 아내도 들어 있군요. 그리고,
등단의 문이 되어 주셨던 계간 <문학과 의식>, 특히 안혜숙, 정소성, 두 선배
문인들께도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2012년 5월
서빙고 집, 컴퓨터 방에서
곽명규
첫댓글 축하합니다. 정말로.
나는 세번째 장편소설 가칭<말 이야기>를 7월말까지 끝내지만 퇴고는 뒤로 미루고 일단 갈무리해 놓기로 했습니다. 8월부터 또 다른 장편소설을 써야 하니까요.
감사합니다.
권형의 인생은 그야말로 장편인생입니다그려.
새로 쓸 장편은 주제가 무엇인지요?
다시 한번 곽형의 소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제 다음의 장편소설은 한국 내지 동북아의 근대사를 재조명함으로써, 민족혼을 일깨워 통일로 이어가는 이야기를 엮어갈 작정입니다. 아내가 제주대 도서관에서 참고서적을 빌려다 대고 있어 한결 도움이 됩니다.
훌륭하십니다. 부럽습니다. 건필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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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동문의 글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체도 힘차고 시원스러워 늘 읽기가 좋더군요. 저는 사실 쓰고 싶을 때만 쓰는 데다가 소설 아닌 분야에도 아직 관심이 많아서 전업 작가라고는 할 수 없죠. 그래서 더 보내주신 격려를 고맙게 여기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첫 창착집 출간을 축하합니다. 기대가 아주 큽니다. 단편 한편과 장편 한편이 쓰는데 들어가는 문학적 어려움은 비슷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간에 너무나 큰 고생을 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들 많이들 모여서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김숙자 시인께서 우리들이 그렇게 듣기를 원하는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을 불러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두가 정 회장의 인도와 격려 덕입니다. 작년말 송년회 이후로, 병원 몇 군데를 순례(?)하느라고--크게 아픈 데는 없이, 목(물리치료), 눈, 귀, 경동맥, 이빨 등을 손보러--동문님들을 못 만났는데 반년 만에 <막걸리와 두부> 모임을 갖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