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더 가까운 최북단 섬 백령도를 가다
선창(船窓) 바깥 사납게 요동치는 너울 위로 대오(隊伍)에서 떨어져 나는 새 한 마리가 마치 이 섬을 닮았다. 백령도. 인천에서 228㎞, 황해도 장연군에서 17㎞ 떨어진, 남보다 북이 더 가까운 서해상 최북단 섬(동경 124도53분 북위 37도52분)은 비극과 희망의 교차점이다. 특별취재팀은 지난해 9월 첫 취재 이래 지난 3월 천안함 비극의 여파가 전국을 울릴 때까지 바닷길·하늘길로 흰 따오기의 날갯짓처럼 생긴 섬(白翎島)을 수차례 왕복했다.
◆'돌격머리'로 攻勢임무 수행
월드컵의 붉은 물결도 이 섬을 완전히 도취시키진 못한다. "북한은 2002년 6월 제2 연평해전, 2006년 7월 동해상 미사일 시험 발사에서 보듯 월드컵 기간에도 야욕을 드러냈다. 이 섬은 언제든 비상상황이다"라고 해병대 김모 상사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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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령도를 지키는 해병대원들이 지난겨울 혹한기 훈련을 하고 있다. 서해상 최북단이란 지정학적 긴요함에 걸맞게 섬전체는 요새 같았고 주민들의 안보의식이 단단했다.(Canon 1D MarkⅣ , EF70~200㎜ 1/60 F8 ISO200 촬영). /DMZ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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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지키는 해병대 훈련 강도는 듣던 대로다. 사격훈련장에서 본 대원들은 갈대숲과 도랑과 장애물이 듬성듬성 펼쳐진 100·200·250m 사로를 번갈아 질주하며 사격 연습을 하느라 숨이 턱에 받쳤다. 임모 중령은 "전투란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면서 총을 쏘는 게 아니다. 적의 총탄 세례 속에 아군 사상자를 후송하는 상황을 상정해, 무거운 장비를 들고 갈 지(之)자 모양으로 뛰어가는 사격훈련을 한다"고 설명했다.
옆·뒷머리는 삭발하고 앞부분만 조금 남긴 해병대 특유의 '상륙돌격 머리'는 '공세적 임무 완수'라는 사명감과 자존심의 표현이다. 두려움 없이 돌격하고 그 과정에서 다쳐도 외과(外科) 수술을 금세 받을 수 있는 헤어스타일이란 것이다.
낙조가 물드는 섬 서쪽의 한 부대, 대원들이 해안을 따라 감시투입 작전을 벌인다. 철조망을 따라 적의 침투흔적과 이상징후를 점검하는 순찰로에 1999년 4월 지뢰가 발견됐다는 경고문이 써 있다. 해가 이내 졌다. 하늘 가득 별이 쏟아질 듯 빛나고 반딧불이 불춤을 춘다. 사랑을 나누기 딱 좋을 곳에서 총을 든 청춘이 작전을 계속한다.
연꽃바위가 보이는 남쪽 해안에 군가 '팔각모 사나이' '귀신 잡는 해병'이 울려 퍼진다. 까나리액젓 향이 뭍에서 온 취재진의 온순한 코를 쏘아붙인다. 국내에서 가장 긴 97m 외줄타기, 200m 길이의 로프를 타고 해상 보트로 하강하기…. 이들의 유격훈련은 유별나다. 12.5m 높이 레펠 하강 훈련을 마친 박모 중위는 "유격 훈련에 장교·병사 구분이 따로 없다. 빨리 마쳐야겠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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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령도 해변의 용치(龍齒). 적함의 접안을 막는 시설이다. /DMZ 특별취재팀
◆自衛 위한 섬 전체의 요새화
백령도는 섬 전체가 요새(要塞)요, 갱도(坑道)다. 군이 몇 달간 버틸 거점과 민간인 대피소가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OP는 미로 같은 갱도를 지하에 담고, 식수대·화장실·탄약·병력대피호를 안에 갖춰 놓았다. "1970년대 (해병대) 선배들이 완성했다"는 지하 요새는 DMZ 특별취재팀에게 잠시 공개됐으나, 촬영은 허락되지 않았다. 두무진 기암절경이 펼쳐진 서쪽 해안 바위 틈에도 독수리 요새 같은 초소가 숨어 있다.
북동쪽 하늬해변엔 콘크리트 밑받침에 쇠막대를 60~70도 경사로 꽂은 용치(dragon teeth)가 깔려 있다. 적 군함이 접안하지 못하게 해 아군이 응사할 시간을 벌어주는 이 침투방지시설에 조개·굴 껍데기가 덕지덕지 붙어 흘러간 세월을 말해준다.
섬 내 사곶해변은 나폴리 해변(이탈리아)과 함께 세계 두 개뿐인 천연비행장(천연기념물 제391호)이다. 곱게 다져진 규조토로 과거엔 실제로 비행기가 이착륙했다고 한다.
◆전쟁의 기억과 흔적이 곳곳에
"1950년 6월 27일 괴뢰군이 이 섬 동(용기포)·서(연화리) 두 곳으로 나눠 쳐들어 왔어요. 그때 경찰 4명이 가진 칼빈소총 말고 무기라곤 하나도 없었으니 아주 맘 놓고 들어왔지. 석 달 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도망하는 북한군이 나를 포박한 채 바다에 밀어놓고 총을 쐈는데 다행히 총알이 빗나갔고 나는 밀물에 밀려 들어와 이빨로 포승줄 풀고 기어나와 살았다오." 주민 김원리(金元利·83)씨는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진촌리 군부대 안에는 옛 동키부대 막사가 남아 있다. 1951년 1월 황해도 피란민 청년 1000명을 모아 미군 지휘를 받도록 한 무장의용대로, 고향 탈환을 위해 결사적 유격전을 펼쳤다고 한다. 섬 곳곳에 세워진 반공유격전적비·반공희생자합동위령비에도 전흔이 남아 있다.
해병대의 야외 농구장, 6명씩 편을 가른 이들이 경기를 즐긴다. 그 뒤엔 'fight tonight'(오늘밤이라도 싸울 수 있다) '공세적 서북도서 방어'라는 글귀가 담벼락에 큼지막이 써 있다.
▲취재 유용원 군사전문기자(정치부), 박영석 차장대우(사회부), 최수현 기자(사회정책부)
▲영상 총감독 박종우 객원기자
2010.06.2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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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단 OP가 우리중대 소속이라 조별과업,석별과업때 구보에다,,, 자주 올라다녔는데,
상황실에서 보던 25년전의 그 바다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