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작도(虎鵲圖)
호작도에는 새해의 기쁨과 복된 미래를 기대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이 그림에는 까치와 호랑이가 등장하고 있고, 현재 이런 종류의 민화가 꽤 많이 남아 있다. 옛 서민들은 왜 이런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또 생활 속에서 어떤 용도로 애호하였을까 그 이유를 살펴본다.
한국인과 호랑이 전통적으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호랑이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어떤 때는 호랑이가 사람과 가축을 해치는 포악한 맹수로서 퇴치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작은 동물로부터 놀림을 당하는 우둔한 동물이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편에 서서 사악한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주재자로 군림하기도 하고, 사람이 호랑이의 어려운 처지를 도왔기 때문에 은혜를 갚거나, 사람의 행위에 감동되어 스스로 인간을 돕는 구원자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호랑이 담배 먹는 이야기처럼 효행의 상징으로 대접받기도 하였다. 이렇듯 호랑이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동시에 가진 동물이었다.
민화의 호랑이 호랑이의 여러 가지 유형 가운데서 민화의 주제로 다루어지는 것은 주로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능력자, 즉 벽사의 주재자로서의 호랑이였다. 때로는 산신도(山神圖)에서 산신의 화신(化身)이나 산신의 종자로서 나타나기도 하고, 호작도의 주인공으로, 또는 사람이 효를 행하기 위해 변신한 담배 먹는 호랑이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벽사상으로서의 호랑이 과거에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을 비롯하여 일반 민가에서도 호랑이의 그림을 그려 대문에 붙여 사악한 것의 침입을 막는 풍속이 있었다. 《동국세시기》에서는 민가의 벽에 닭이나 호랑이 그림을 붙여 재앙과 역병을 물리치고자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벽사의 염원은 호랑이 삼재부적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삼재는 풍(風)·수(水)·화(火)에 의한 재난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정초의 세화(歲畵)나 부적에 호랑이가 등장하게 된 이유는 호랑이의 용맹성을 이용하여 벽사 행위의 완성을 꾀하려는 의도라고 생각된다. 대나무 숲과 함께 그려지는 호랑이도 벽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담문록 談聞錄》에 의하면 서방 산중에 인간에게 병을 주는 키가 큰 산귀가 살았는데, 대나무를 잘라 불 속에 던져 대나무가 터질 때 나는 큰 소리로 그 귀신을 쫓아 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폭죽(爆竹)의 연원이 되었지만, 어쨌든 민화 죽호도(竹虎圖)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사악한 존재를 물리치고 기쁨을 가져다주는 벽사의 주재자인 것이다.
효행상으로서의 호랑이 설화나 민담의 내용을 보면 사람이 호랑이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고, 호랑이가 인간으로 변신하는 경우로 있는데, 이 내용이 종종 민화의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그린 그림은 인간이 호랑이로 변신한 경우인데, 이것은 효자의 효행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게 된 내력은 이러하다. 옛날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사는 효자가 있었다. 아내를 얻자 어머니가 병이 들었다. 효자는 어머니의 병이 낫도록 치성을 드렸는데, 어떤 할머니가 와서 개 100마리를 잡아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하면서 개를 많이 잡을 수 있도록 호랑이로 변신하였다가 다시 사람을 되돌아 오게 하는 방법이 적힌 부적을 주고 갔다. 효자가 100번째 개를 잡으러 나가기 위하여 호랑이로 변신하는 것을 본 아내는 너무나 무서워서 그 부적을 없애 버렸다. 그래서 호랑이로 변한 효자는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 올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호랑이는 산 속에서 살다가 벼슬아치가 되어 호랑이를 잡으러 나온 어릴 적 친구를 만나 자신의 신세를 말하고 친구로부터 담배를 얻어 피운 것이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게 된 내력이라고 한다. 중국에도 이와 유사한 줄거리를 가진 호랑이 변신 이야기가 있으나,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 나라 경우와는 다르다. 즉, 인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된 호랑이가 분한 마음에 아내를 죽이고, 이를 본 어머니는 놀라 죽고, 호랑이는 포수에 잡혀 죽는 것으로 결말이 나 있다. 반면에 우리 나라 이야기 속의 호랑이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아내를 벌하기보다 담배 한 모금 피우면서 자신의 처지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모나지 않은 심성을 느껴 볼 수 있다.
신앙대상으로서의 호랑이 한편, 산신도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우리 민족 전래의 산악신앙 내지 산신신앙과 유대를 가지고 있다. 《후한서》 동이전 예(濊) 조에, 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한다. 산천에는 각기 부계(部界)가 있어서 함부로 서로 간섭할 수 없었다고 하고, 이 기록의 뒷부분에 호랑이에게 제사 드려서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는 조항이 있다. 후세에 호랑이를 산신과 동일시하여 숭앙한 원류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민속신앙에서 산악과 산신은 지역수호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이 경우 산신은 산신령, 신령 등으로 불리고 때로 노인으로 관념되거나 아니면 호랑이로 관념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호랑이는 단순히 산신의 심부름꾼 정도로 생각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산신도의 호랑이는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신격을 지니고 있는 호랑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호작도의 의미 그러나 〈호작도〉의 호랑이는 경우가 좀 다르다. 일반적으로 호랑이 그림은 산신도를 제외하고는 호랑이 단독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경우는 까치와 호랑이가 함께 등장하고 있다. 그림을 보면 까치가 호랑이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고, 호랑이는 그 까치를 쳐다보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맹수라기보다 어딘가 얼이 빠진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호작도〉가 산신도나 무화(巫畵)처럼 신당(神堂)에 모셔졌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더구나 까치와 함께 하고 있는 이 그림의 호랑이는 숭배의 대상이라고 보기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호작도〉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림인가? 민화의 경우, 소재 자체의 상징성과는 상관이 없이 단순히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길상의 상징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험상궂고 징그러운 형상에도 불구하고 박쥐가 복을 상징하게 된 것은 박쥐의 한자말인 편복의 복이 복(福)의 발음과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원숭이가 관계(官界) 등용을 상징하게 된 것은 원숭이의 한자말인 후가 제후(帝侯)의 후(侯)의 발음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로 호랑이는 보답한다는 보(報)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까치, 즉 희조(喜鳥)와 결합하여 기쁨으로 보답한다는 희보(喜報)의 뜻을 가지게 된 것이다.
호작도의 원형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보(報)는 표(豹 표범)의 발음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지 호(虎)와는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작도의 의미를 희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호작도의 원형이 표범과 까치를 그린 표작도(豹鵲圖)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호작도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그림 중에는 주인공이 얼룩무늬가 아닌 점박이 무늬를 하고 있는 것이 꽤 많이 있다. 점박이 무늬를 한 호랑이는 없으며, 그것은 표범 모습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그림에 등장하는 표범은 어떤 상징성을 지녔다기 보다 단순한 문자회(文字繪)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본다면 화면의 표범은 결코 예경의 대상이 아니며, 또한 신체(神體)가 아님이 판명된다. 또 한편으로 표범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표범은 광명과 문채(文采)의 상징성을 지니기도 하는데,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그 연원을 찾아 볼 수 있다. 《주역 周易》 혁괘(革卦) 구오(九五)의 효사(爻辭)에 대인이 범처럼 변한다. 점을 치기도 전에 성실함이 있다(大人虎變 未占有孚) 또, 같은 책 상육(上六)의 효사에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 소인이 안색을 고친다. 가면 흉하고 바른데 있으면 길할 것이다(君子豹變 小人革面 征凶 居貞吉)라는 말이 있다. 이 효사에 연유하여 대인호변 군자표변 (大人虎變 君子豹變)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대인이 범같이 변한다 함은 문채가 빛난다는 것이며, 군자가 표범같이 변한다 함은 그 문채가 진한 빛이라는 것이요, 소인이 안색을 고친다 함은 순종해서 임금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에 연유하여 호랑이와 표범은 광명이 다가와서 정치를 개혁한다는 의미와 관련되어 길상적 의미를 지닌 동물로 간주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호작도의 배경 현존하는 우리 나라 민화의 까치호랑이 그림들을 보면 표범을 그린 것 보다 호랑이를 그린 것이 비교적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근거한다면 까치호랑이 그림의 원형은 표범과 까치를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치호랑이 그림에 표범보다 호랑이가 많이 그려진 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호랑이가 표범보다 더욱 친숙하고 영험한 동물로 이해되고 있었고, 호랑이의 보은설화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은혜를 베풀면 그 이상의 보답을 해준다고 생각하였던 동물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표범과 호랑이의 상징성이 은연중에 혼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한가지 상정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은 정식으로 화업(畵業)을 닦은 화가가 아니고, 또 뚜렷한 화본(畵本)이 있어 그것을 표본으로 하여 그리지 않고 어떤 계기에 의해서 변형된 선례(先例)를 기준으로 하여 반복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옛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그림을 통하여 신년의 기쁨과 복된 미래를 기대해 보는데 있어 그림의 소재가 표범이든 호랑이든 간에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